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 Vicky Cristina 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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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알렌(Woody Allen)의 영화들을 보면, 

'사랑' 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위대한 단어인지 알 수 있다.

모성애, 불륜, 짝사랑, 로맨스 등등...

그가 영화에서 표현하는 '사랑'은 대담하기도 하고 치열하며, 때론 귀엽다.

어떻게 보면, 그의 영화들은 

아직 '사랑'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와 같고,

그 '사랑'을 한번쯤은 경험하고픈 충동을 들게 한다.

 

나는 오늘 <매치포인트>이후 오랜만에 그의 영화를 보았다.

원제는 <Vicky Cristina Barcelona>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기괴한 제목으로 번역됐다.

개인적으로 원제가 더 마음에 들고,

우리나라의 제목을 보는 순간 상술이라고 느껴져서 

영화 포스터도 해외판 포스터로 올렸다.

 



 

"어때서? 인생은 짧고, 인생은 따분하고 괴로운 것인데

 아주 좋은 기회지." 
 

 

사랑에 대해 현실주의자인 비키와  낭만주의자인 크리스티나는

여름 휴가를 스페인에서 함께 보내게 된다.

둘은 우연히 레스토랑에서 남성미 넘치는

이혼남 화가 후안 안토니오 곤잘로를 만나게 되고,

주말에 오비에도로 놀러가자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약혼자가 있었던 비키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크리스티나의 적극적인 행동에 어쩔 수 없이 동행했고, 

여행 중에 둘은 곤잘로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물론 각자 다른 방식으로, 비키는 내적인 감정 변화를 겪었고

크리스티나는 적극적인 애정표현으로 곤잘로의 연인이 되었다.

 



  

"우리의 사랑은 영원히 갈꺼야. 영원토록 기우뚱 거리면서..

 그래서 로맨틱 하지. 완전하질 않으니까."

 

크리스티나와 곤잘로는 정열적인 사랑을 하게 되고,

비키는 약혼자를 떠올리며 감정을 절제하지만

곤잘로에 대한 연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곤잘로는 전 부인이던 마리아 엘레나가

자살시도를 했다는 연락을 받게 되고,

걱정된 곤잘로는 전 부인을 데려와 자신의 집에 살게 한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크리스티나는 화가 나지만 곤잘로의 말에 설득되고,

시간이 흐르자 비슷한 성격의 엘레나와 크리스티나는 격정적으로 친해진다. 

결국 이상한 관계를 유지하며, 한 집에서 셋은 한동안 조화롭게 살아간다.

 



 

 "고질적인 불만족, 바로 그거야. 고질적인 불만족. 큰 병이지."

 

시간이 흐르자 크리스티나는 채워지지 않는 감정에 싫증을 느끼고,

곤잘로와의 이별을 뜻하는 프랑스 여행을 혼자 떠난다.

크리스티나가 떠나자 곤잘로와 엘레나는 이혼의 원인이 되었던

격한 성격차이를 드러나게 되고,

결국 엘레나는 곤잘로의 집을 나온다.

한편, 유부녀가 된 비키는 곤잘로에 대한 연정이 아직 정리가 안되어

남편과의 부부생활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다시 혼자가 된 곤잘로는 이런 비키의 마음을 눈치채고 

비키에게 은밀한 약속을 청한다.

 



 

"저 끌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뒤흔들릴 정도는 아니고,

 사실 당신은 장래를 기약할만한 타입은 아니예요."

 

영화를 보는 내내, 내게는 문화적 차이가 조금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영화에서 표현되는 불륜과 로맨스가 존재하지만 

이질감을 느끼는지라,

나로서는 공감의 어려움이 있었다.

이건 사고가 보수적인거나 개방적인 것을 떠나서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과 접하는 문화의 차이에 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본 후 다시 생각해보니

우디 알렌이 이 영화를 통해서 말하려는 의도를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불륜, 양다리, 부부의 금지된 사랑 등을 소재로 드라마가

몇 편 제작되어 네티즌들로부터 흔히 '막장 드라마' 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는 '막장 드라마' 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은근히 시청률도 높다.

사람들은 금지된 사랑을 비난하면서도 왜 그런 사랑에 관심을 두는 것일까?

그것은 고질적인 불만족에 시달리는 인간 심리에 있다.

서로를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처음에 가졌던 감정을 토대로 

정열적인 사랑을 지속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결혼이라는 계약을 체결한다면

이건 뭐 더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

언젠가 서태지가 자신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TV에서 말했는데,

"연애는 하겠지만 결혼은 서로를 구속하는 것이라 싫다." 라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남자든 여자든(남자보다는 덜하지만) 밀려오는 사랑의 감정에 늘 흔들린다.

항상 부패되어가는 감정으로부터 새로운 감정을 요구하고

반복된 패턴 속의 싫증보다는 신선함과 놀라움을 원한다.

 

그래서 사랑은 IT제품과도 같다.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이전 제품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관심 밖으로 멀어나게 된다.

물론 새로운 제품도 시간이 지나면 더 새로운 제품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한다.   

인간이 느끼는 사랑의 심리도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고질적인 불만족은 새로운 사랑에 늘 목마르다. 

 

고령임에도 매년 한편 이상 영화를 제작하는 우디 알렌은 

이질감이 느껴지는 소재를 코믹하게 표현함으로써 

'사랑'에 관련한 인간 심리를 잘 드러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Javier Bardem)은

남성미가 느껴지는 정력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son)은 우디 알렌 영화에 고정 출연하고 있으며

이번에도 도발적인 연기를 보였으나 이제 그런 캐릭터는 질린다.

페넬로페 크루즈(Penelope Cruz)는 개성적인 연기를 보여주었고

그의 보상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레베카 홀(Rebecca Hall)은 쟁쟁한 배우들 앞에서 

전혀 밀리지 않은 연기를 보였고,

개인적으로는 신선함을 느꼈다.  

 

끝으로 하비에르 바르뎀과 페넬로페 크루즈는 스페인 출생으로

극중 의미있는 스페인어 대화를 보였고,

스칼렛 요한슨의 귀여운 중국어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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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2월 4주

   

1. <아버지의 깃발> -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스토리를 보아도 단순한 전쟁영화는 아니다. 게다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이라면 더더욱 영화는 단순하지 않다. 명배우이자 명감독이라는 두개의 탑(?)을 쌓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단 한장의 사진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냉철한 시각으로 심리적이면서 극적으로 표현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비효과' 라는 단어가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승리의 상징으로 정상에 성조기를 꽂았지만 해군사령관의 개념없는 행동과 대대장의 자부심 넘친 판단으로 승리의 깃발이라는 의미와 함께 어부지리로 영웅이 된 사진 속 주인공들은 전우들의 공로를 가로챘다는 죄책감과 만인의 영웅이라는 유혹 속에 갈등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영웅은 필요로 의해 만들어져야 했고,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났다. 

  이번 영화에서도 클린트는 <미스틱 리버>처럼 한순간의 일로 인해 겪는 인간의 내, 외면적인 모습과 인간관계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근데 약간 다른면이 있다면 개개의 작은 스토리들이 묶여져 있고 두서없이 산발적으로 등장한다. 기존의 클린트 영화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새로운 시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집중력이 떨어져 산만하고 복잡한 느낌이 든다. 또한 이오지마 상륙전투신은 스필버그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 제작자로 참여한 스필버그는,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오프닝 같은 이오지마 상륙전투로 유유하게 흘러갈 것 같던 클린트의 영화에 좀더 오락성이 가미되었다.    

 

  

2. <트로이> - 볼프강 피터젠 감독  

  <트로이>의 분위기는 남자들의 세계이다. 세계의 전쟁사에 빠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남자들의 야망과 여자이다. 특히 여자는 그 당시 전쟁의 전리품이자, 승리의 상징이고 지켜야 되는 전쟁을 하는 큰 이유였다. 

   사람이 가장 고독해지고 자신을 잘 알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극한이 있고 피가 넘실대는 전쟁터이다. 그 안에서 남자들만의 의리와 사랑의 교감은 상대의 영웅을 알아보는 겸손일 것이다. 많은 이해관계와 복잡한 이유가 전쟁 속에 있다. 병사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왕들은 더 많은 영토와 패권을 위해, 영웅들은 그 이름을 남기기 위하여 전쟁 속에서 그들은 점차 동화에 되어지고 미쳐간다. 그런 면에서 <트로이>는 남자의 본능 속에 있는 영웅주의와 의리, 파괴적인 본능을 자극한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싶어한다. 그리고 영웅이 되고 싶어한다. 이름을 남기고 영웅이 된다는 것은 같은 곳에 공존한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나라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옛적부터 지금까지 싸워왔다. 그 중 기억되는 것은 영웅들과 왕들의 이름뿐이다. 하지만 영웅이나 왕이라서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이름은 그들을 위해 죽어간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내가 무언가 되고 싶다면, 나를 돕고 따르는 자들을 축복하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내 영웅론의 핵심이자, 이 영화가 내게 준 감명이다.  
 

  

  

3. <메가 마인드> - 톰 맥그라스 감독  

  영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미 외모지상주의나 엘리트, 특권주의는DreamWorks가 매우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영웅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선택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메트로맨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많은 사람들의 영웅으로 사는 것에 익숙했고, 악당 메가마인드는 그런 메트로맨을 보며 질투와 승부욕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메트로맨의 속내는 더이상 영웅으로 살고 싶지 않았고, 음악을 즐기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영웅으로서의 충분한 자질과 뛰어난 능력을 가졌고,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영웅이었지만 자신이 원하던 삶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에 메가마인드는 어릴 때부터 원치 않게 악당의 역할을 맡아야 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악당의 운명을 받아 들여 메트로맨과 대립한다. 그리고 결국은 메트로맨을 제압하여 메트로 시티를 지배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허무함이 찾아 오고 몸과 마음이 근질근질하다. 그러던 중 메트로맨과 똑같은 능력을 가진 타이탄을 만들어 내어, 다시 악당 메가마인드로 살아가려 했지만, 영웅이 될 줄 알았던 타이탄은 도리어 자신보다 더 악랄한 악당이 된다. 보다 못한 메가마인드는 자신이 만든 타이탄을 제압하려 들고, 이 과정 속에서 메가마인드는 깨닫는다. 즉, 영웅과 악당은 시대나 상황,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삶을 선택하여 영웅이 되고 악당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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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3 - 세상을 울린 칠레 광부 33인의 위대한 희망
조나단 프랭클린 지음, 이원경 옮김, 유영만 해설 / 월드김영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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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85일 칠레 북부에 있는 산호세 광산에서 광부 33명이 지하 700m 아래에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나자 땅위에 있던 그들의 가족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33명의 광부들이 죽은 줄만 알았다. 그러나 땅속에 있던 광부들은 살아 있었고, 지하 대피소에서 적은 식량으로 연명하며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칠레 정부는 광부들의 생사여부에 관계없이 빠르게 구조작업을 시작했고, 구조작업 17일 만에 33명의 광부들이 지하 대피소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희대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끝날 것 같았던 광산사고가, 칠레와 전 세계의 관심과 집중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사고 69일 만에 광부들은 땅속에서 나와 땅위를 밟았다. 69일 동안의 땅위와 땅속은 급박한 상황이었고 그들의 구조작업은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했다.

 

  나는 실제로 20101014일에 미국 CNN Live에서 그들의 구출장면을 잠시 보았는데, 작은 캡슐에서 구조된 광부가 걸어 나오고,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 구조대원들, 정부관계자들, 기자들이 기뻐하며 축하해주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33명 모두 구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다시 보아서는 안 될 감동적인 구조였다.

 

  나는 이 사고에 관련된 책이나 영화가 나올 것이라는 예감을 했지만, 이렇게 빨리 제작될지는 몰랐다. 2011년에 책을 받아보니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불과 6개월이 지나지 않은 생생한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있었다.

 

 

  고메스가 내다보는 버스 차창 밖으로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비록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사막이지만, 꾸벅꾸벅 졸고 있는 광부들이 들어갈 땅속에 비하면 생기가 넘쳤다. 산호세 광산은 이 지역에서 가장 위험한 광산이기 때문에 보수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굴착 기사가 뚫어놓은 구멍에 하루 종일 다이너마이트 봉을 채워 넣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어디 가서 그렇게 후한 임금을 받겠는가? 그들이 받는 임금 지급표를 보면 스스로를 가미카제라고 부르면서도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이 광산에서 군말 없이 일하는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광부들은 매번 위험과 돈을 놓고 냉정하게 계산했고, 그때마다 결국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항상 돈이 이겼다. <15p>

 

  칠레 북부에 위치한 광산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 생산지로, 사막지대에 광산이 있다. 광산업은 칠레의 대표적인 수출산업으로,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들이 운영하는 광산들에 고용된 광부들은 칠레 수출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특히 산호세 광산은 다른 광산들보다 30%임금이 더 비쌌는데, 그만큼 고역이었다. 7일간의 중노동과 7일간의 휴식, 환기시설과 복지시설이 구비되지 않은 광산 현장은, 가난한 광부들에게 있어서 오직 조금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막장인생을 살게 했다. 물론 결정적인 문제로 광산 소유주의 저임금 고효율의 썩은 기업가 정신도 한몫했다.

 

 

  광부들은 ‘33‘34이라고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주님이 그들과 함께 있었고, 그분이 서른네 번째 광부였다. 어느덧 무신론자들까지 기도하기 시작했다. <110p>

 

  매몰사고가 나자 33명의 광부들은 동요했다. 대피소의 작은 등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어두웠고, 죽음의 기운이 어느 때보다 짙게 느껴졌기에, 광부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매순간 다수결로 의견을 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자신들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책에서 이 부분을 읽을 때 죽음을 목전에 둔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살기 위한 의지로 한 곳에 모여서 신께 예배하고 종교가 있든 없든 기도하는 것은, “신이 있다, 없다를 말하기 이전에 종교성을 가진 인간과 극한 상황에서 보이는 인간의 반응만으로, “신이 존재 한다는 타당성을 갖게 한다.

 

 

  이 무렵 광부들의 단결은 개개인의 서로 다른 관심사와 잠, 조별 근무 때문에 위태위태했다. 여전히 날마다 정오에 모여 기도를 했지만, 참가자의 수는 훨씬 줄었다. 구조대가 제공하는 갖가지 구호품 때문에 생존의 절박함도 이제는 누그러졌다. 하지만 검열 거부처럼 중대한 문제가 걸린 순간에는 변함없이 한 목소리를 냈다. <187p>

 

  땅속에서 69일을 버틴 그들의 첫날부터 구출되는 날까지를 살펴보면 위태로운 순간이 매일 발생했다. 처음 광부들은 다수결로 의견을 정하면서 서로를 의지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떨어진 식량으로 인해 심약한 동료의 인육을 먹으려고 주전자와 톱을 준비했고, 갱도 내를 뒤지면서 먹을 수 있는, 마실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찾아 다녔다. 그들은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했고, 이성적인 말과 행동보다는 본능적인 모습을 더 많이 보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광부들을 통제할 리더가 있었다는 점이다. 세풀베다는 죽음과 동료들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 속에서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았고, 베테랑 광부 고메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했다. 의학에 관심이 많았던 조니는 광부들의 임시 주치의 역할을 맡았고, 우르수아는 세풀베다와 함께 광부들의 말과 행동을 통제하는 리더로 활약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호품과 한결 나아진 생활을 하게 되자, 광부들의 생활은 무료한 생활로 바뀌었다. 담배를 포함한 마리화나를 피었고, 작은 텔레비전을 보며 구조대에서 제안한 일과를 등한시했다. 또한 광부와 가족들 간의 편지가 검열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자, 구조대와 광부들 간의 불신이 싹텄고 이로 인해 갈등의 사건들이 계속되었다.

 

  매몰사고에 대한 두려움으로 멀어지자 광부들은 단결보다는 개인주의로 행동을 전환했고, 구조대와 일부 광부들은 이런 광부들의 모습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자칫 매몰사고보다 구조작업이 진행 되는 중에 광부들의 안일한 삶의 태도가 더 큰 참사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고, 어디까지나 그들은 700m 땅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광부들이 아직 땅속에 갇혀 있는데, 그들이 겪은 사고를 다룬 영화가 이미 제작되고 있었다. 근처 폐광에서 칠레와 멕시코의 배우들이 참사를 재연하고 있었다. 하지만 광부들의 일상에 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서 상당 부분 각색된 내용이었다. 칠레 영화감독 레오나르도 바레라도 땅속에 갇힌 광부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포르노 영화 제작 발표회를 열었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대규모 난교 파티가 아니라 광부들과 미나의 섹스를 다룬 감동적인 영화가 될 거라고 주장했다. (‘미나는 섹시한 여자를 일컫는 칠레 속어다.) 광부들은 어둡고 축축한 땅속 세상에서 나오자마자 할리우드 촬영장으로 끌려갈 신세였다. 지상에 적응할 시간 따위는 없을 듯싶었다. <212p~213p>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하는 일에는 항상 불순한 자들의 욕심과 이익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구조작업이 계속되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기자들과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저마다 광부들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상업적 목적의 이벤트를 추진했다. 당연히 광부들은 그들에 대해 거부감을 표했고, 가족들도 곤혹스러웠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인간이 가진 탐욕스러움을 엿볼 수 있었다. 아무리 자신들의 직업상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하더라도, 아직 구조되지 않은 광부들을 대상으로 그런 작태를 벌이다니! 광부들과 그의 가족들을 가난하고 불우하다고 생각하여 금전적으로 유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분노를 느꼈다.

 

 



  삶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몸소 겪은 그는 이렇게 충고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교훈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 말이에요. 인간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장점을 키워 나가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2분 만에 끝날 수도 있어요. 살아 있지 못하다면 금은보화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저를 보세요. 저는 행복합니다. 두 달 동안 땡전 한 푼 없었지만 지금 행복해요.”

  그는 파도와 하늘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이게 삶입니다.” <296p>

 

  구조된 광부들은 새로운 삶을 살았다. 한순간에 조국 칠레의 유명인사가 되었고, 해외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나 광부들은 그것들을 원치 않았고, 구조된 광부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보다는 집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평안과 안식이었다. 누구의 관심과 주시 없이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을 원했고, 개인의 사생활을 즐기기 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고 되찾았다. 죽음의 목전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에게 삶은 신의 선물이었다.

 



 

  칠레 광부 구조는 9·11에 항거하는 사건이었다. 박애와 형제애, 이타주의의 토대 위에 세워진 지구촌의 의미를 똑똑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칠레 광부 이야기에 쏠린 전 세계 매스컴의 관심은 전쟁과 학살, 기상이변 뉴스로 점철된 일상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한순간의 꿈이었을까? 아니면 이 세상을 위한 일을 벌일 때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거대한 선의의 보물창고를 살짝 들여다본 것일까? <302p>

 

  칠레 구조대원부터 미 항공 우주국의 관계자들까지 구조대에 참여한 지상 최대의 구조작업. 매몰된 광부들 중 최연소인 19세 지미 산체스와 63세 최고령 마리오 고메스까지 광부들은 69일간의 긴 땅속생활을 마치고 전 세계인들의 환영을 받으며 구조되었다. 끔찍한 조난 사고 이후 몇 일만에 소수의 사람들이 구출되는 경우는 있었어도, 33명이 69일 만에 구조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최초가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책의 말처럼 정말 신선한 사건이었다. 지금도 끊이지 않는 세계 각처의 시위와 전쟁, 기상이변 등등.. 불안과 공포의 나날 속에서 칠레 광부들의 구조는 인종과 민족을 뛰어넘는 인류애의 생존을 확인하고 가족을 넘어선 간절함이 어우러진 화합의 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고와 구조작업으로 인한 생존자 구조는 감동적인 휴먼 다큐멘터리지만 앞으로는 더 보고 싶진 않다. 사고는 예방해야하고, 구조작업은 긴 휴업을 맞이해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런 극적인 상황을 보고 감동보다는 매순간 살아있다는 것에 감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자인 조나단 프랭클린은 <가디언>지의 기자답게 책 뒤에는 생생한 사진들과 자세한 설명을 수록하였고, 책 디자인은 깔끔하며 내용은 쉽고 자세하다. 앞으로 이와 관련된 책과 영화들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이 책은 그것들의 교과서적 역할을 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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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자 - The Excutio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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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범죄자들이 생기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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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자 - The Excutio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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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의 정당성에 관해서 묻는 영화는 많다.

<데드맨 위킹>,<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민감한 주제이다.

이런 영화들 속에는 몇 가지 질문들이 들어있는데,

하나는 '사람이 사람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것인가?' 와 '꼭 죽여야만 하는가?' 이다.

실시간적인 전쟁터나 총격전이 벌어지는 범죄현상에서는 두가지 질문의 답이 명확하다.

문제는 실시간적인 시간이 끝나고 정적인 시간이 찾아올 때다.

감정과 본능으로 붙잡았던 사악한 포로들과 용의자들은

어느새 한없는 약자가 되어 있고, 그들이 했던 행동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야. 이런 철장 있는 데는 세상에 두 군데 밖에 없다. 동물원, 그리고 여기."

 

교도관으로 취직한 재경은 그의 선임 종호의 도움으로 교도소 생활을 배워간다.

차츰 교도소 생활에 적응하고 교도관으로서 가져야할 마음가짐과 행동도 배웠지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고민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법무부에서 사형집행 명령이 내려오고,

3명의 사형수가 같은 날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도관 중 아무도 사형집행자로 나서지 않았고,

결국 제비뽑기로 종호와 재경 외 3명이 집행자로 선택됐다.

사형집행날짜가 다가올수록 교도소 전체 분위기는 차츰 긴장으로 치닫고, 

교도관들과 사형수들 간의 마찰은 심해져 가는데..

 



 

"짐승은 자기보다 쎈놈한테는 절대로 달려들지 않는다."

 

아이돌 출신의 연기자들의 연기를 보면 뭔가 어색한 면이 있는게 사실이다.

그건 순수 연기만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만 있어도 느껴지는 이상한 어색함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윤계상의 연기는 상당히 노력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점은 앞으로도 시나리오나 영화 선택에 있어서 많은 신경을 썼으면 한다.

아이돌 출신의 연기자들의 대부분의 특징은 빨리 스크린 데뷔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데,

사실 스크린에 데뷔할 수 있는 포스를 가진 아이돌이라면 여유를 갖고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시나리오와 영화를 선택 하는게 좋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조재현의 캐릭터는 초반과 중반의 분위기를 계속 주도한다.

개인적으로 종반에 조재현의 캐릭터는 초반과 중반에 보여줬던 모습과 상이한데,

급변하는 모습이 조금은 어색하고 이질감 있게 다가왔다.

그래도 그의 연기는 배테랑 답게 탁월했고, 맡은 역을 훌륭히 소화했다.

박인환은 중년남자의 어느 캐릭터든 소화할 수 있는 본좌급 배우다.

그의 연기는 더이상 재론할 것도 없는 명품연기이다.

<살인의 추억>, <연애>, <마더>의 전미선이 특별출연했다.

최진호 감독에게 이 영화는 그의 첫 장편이고 무난한 장편 데뷔를 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구경을 왜 니들만 해? 광화문 네거리에서 밴드도 부르고 폭죽도 쏘고 방송도 하고.."

 

사형제도의 존폐를 놓고 교육기관이나 방송, 언론 매체에서 몇 번의 토론과 글이 나왔지만,

대부분 폐지론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신창원, 유영철, 강호순, 조두순 등 파렴치한 인간의 백태를 보고 있자면

어느새 폐지론도 강경론쪽으로 일시적이지만 흘러가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사형제도는 법치주의 국가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법은 강제성을 가지고 있고 그 강제성은 생명 앞에서도 강력하게 작용해야 한다.

만약 법이 강제성과 더불어 관용까지 가지고 있다면 법은 더이상 그 역할을 하기 힘들다.

요즘에는 인권과 윤리, 융통성 등등 여러가지가 적용되어 법의 역할은 더욱 힘이 약화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사형제도 존폐의 논란은 법의 영양력이 약화된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사형수를 공개적으로 처형하며 사회의 기강을 세웠던 지난 날과 달리,

지금의 사형집행은 극도로 폐쇄적이며 사형수의 인권까지 생각해준다.

시대가 변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변했다.  

 



 

"난 이제 못 죽이지만, 니들은 계속 더 죽이겠지."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나는 사형제도의 폐지를 원한다.

그러나 법의 역할도 마땅히 강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은 없다.

특수한 경우 그 권한은 외부의 상황과 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한편, 법의 역할은 마땅히 강력해야 한다.

사회질서와 치안 유지는 법과 윤리가 강력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법이 누구도 지키지 않으며 불법이 만연한 사회가 된다면,

법은 유명무실일 뿐이고, 무법한 사회는 파멸을 이끌 것이다.

따라서 나는 법의 강력한 시행과 이에 따른 윤리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 범죄자들이 생기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다.

나는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다' 는 것을 믿는데,

선한 인간이 악해지는 것은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과 상황이다.

법은 그런 악한 인간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그들의 행동에 따라 처벌하고

다시는 그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역할을 하지만,

법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도 범죄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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