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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3 - 세상을 울린 칠레 광부 33인의 위대한 희망
조나단 프랭클린 지음, 이원경 옮김, 유영만 해설 / 월드김영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2010년 8월 5일 칠레 북부에 있는 산호세 광산에서 광부 33명이 지하 700m 아래에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나자 땅위에 있던 그들의 가족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33명의 광부들이 죽은 줄만 알았다. 그러나 땅속에 있던 광부들은 살아 있었고, 지하 대피소에서 적은 식량으로 연명하며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칠레 정부는 광부들의 생사여부에 관계없이 빠르게 구조작업을 시작했고, 구조작업 17일 만에 33명의 광부들이 지하 대피소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희대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끝날 것 같았던 광산사고가, 칠레와 전 세계의 관심과 집중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사고 69일 만에 광부들은 땅속에서 나와 땅위를 밟았다. 69일 동안의 땅위와 땅속은 급박한 상황이었고 그들의 구조작업은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했다.
나는 실제로 2010년 10월 14일에 미국 CNN Live에서 그들의 구출장면을 잠시 보았는데, 작은 캡슐에서 구조된 광부가 걸어 나오고,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 구조대원들, 정부관계자들, 기자들이 기뻐하며 축하해주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33명 모두 구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다시 보아서는 안 될 감동적인 구조였다.
나는 이 사고에 관련된 책이나 영화가 나올 것이라는 예감을 했지만, 이렇게 빨리 제작될지는 몰랐다. 2011년에 책을 받아보니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불과 6개월이 지나지 않은 생생한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있었다.
고메스가 내다보는 버스 차창 밖으로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비록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사막이지만, 꾸벅꾸벅 졸고 있는 광부들이 들어갈 땅속에 비하면 생기가 넘쳤다. 산호세 광산은 이 지역에서 가장 위험한 광산이기 때문에 보수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굴착 기사가 뚫어놓은 구멍에 하루 종일 다이너마이트 봉을 채워 넣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어디 가서 그렇게 후한 임금을 받겠는가? 그들이 받는 임금 지급표를 보면 스스로를 ‘가미카제’라고 부르면서도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이 광산에서 군말 없이 일하는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광부들은 매번 위험과 돈을 놓고 냉정하게 계산했고, 그때마다 결국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항상 돈이 이겼다. <15p>
칠레 북부에 위치한 광산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 생산지로, 사막지대에 광산이 있다. 광산업은 칠레의 대표적인 수출산업으로,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들이 운영하는 광산들에 고용된 광부들은 칠레 수출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특히 산호세 광산은 다른 광산들보다 30%임금이 더 비쌌는데, 그만큼 고역이었다. 7일간의 중노동과 7일간의 휴식, 환기시설과 복지시설이 구비되지 않은 광산 현장은, 가난한 광부들에게 있어서 오직 조금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막장인생’을 살게 했다. 물론 결정적인 문제로 광산 소유주의 ‘저임금 고효율’의 썩은 기업가 정신도 한몫했다.
광부들은 ‘33인’을 ‘34인’이라고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주님이 그들과 함께 있었고, 그분이 서른네 번째 광부였다. 어느덧 무신론자들까지 기도하기 시작했다. <110p>
매몰사고가 나자 33명의 광부들은 동요했다. 대피소의 작은 등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어두웠고, 죽음의 기운이 어느 때보다 짙게 느껴졌기에, 광부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매순간 다수결로 의견을 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자신들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책에서 이 부분을 읽을 때 죽음을 목전에 둔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살기 위한 의지로 한 곳에 모여서 신께 예배하고 종교가 있든 없든 기도하는 것은, “신이 있다, 없다”를 말하기 이전에 종교성을 가진 인간과 극한 상황에서 보이는 인간의 반응만으로, “신이 존재 한다”는 타당성을 갖게 한다.
이 무렵 광부들의 단결은 개개인의 서로 다른 관심사와 잠, 조별 근무 때문에 위태위태했다. 여전히 날마다 정오에 모여 기도를 했지만, 참가자의 수는 훨씬 줄었다. 구조대가 제공하는 갖가지 구호품 때문에 생존의 절박함도 이제는 누그러졌다. 하지만 검열 거부처럼 중대한 문제가 걸린 순간에는 변함없이 한 목소리를 냈다. <187p>
땅속에서 69일을 버틴 그들의 첫날부터 구출되는 날까지를 살펴보면 위태로운 순간이 매일 발생했다. 처음 광부들은 다수결로 의견을 정하면서 서로를 의지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떨어진 식량으로 인해 심약한 동료의 인육을 먹으려고 주전자와 톱을 준비했고, 갱도 내를 뒤지면서 먹을 수 있는, 마실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찾아 다녔다. 그들은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했고, 이성적인 말과 행동보다는 본능적인 모습을 더 많이 보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광부들을 통제할 리더가 있었다는 점이다. 세풀베다는 죽음과 동료들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 속에서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았고, 베테랑 광부 고메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했다. 의학에 관심이 많았던 조니는 광부들의 임시 주치의 역할을 맡았고, 우르수아는 세풀베다와 함께 광부들의 말과 행동을 통제하는 리더로 활약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호품과 한결 나아진 생활을 하게 되자, 광부들의 생활은 무료한 생활로 바뀌었다. 담배를 포함한 마리화나를 피었고, 작은 텔레비전을 보며 구조대에서 제안한 일과를 등한시했다. 또한 광부와 가족들 간의 편지가 검열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자, 구조대와 광부들 간의 불신이 싹텄고 이로 인해 갈등의 사건들이 계속되었다.
매몰사고에 대한 두려움으로 멀어지자 광부들은 단결보다는 개인주의로 행동을 전환했고, 구조대와 일부 광부들은 이런 광부들의 모습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자칫 매몰사고보다 구조작업이 진행 되는 중에 광부들의 안일한 삶의 태도가 더 큰 참사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고, 어디까지나 그들은 700m 땅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광부들이 아직 땅속에 갇혀 있는데, 그들이 겪은 사고를 다룬 영화가 이미 제작되고 있었다. 근처 폐광에서 칠레와 멕시코의 배우들이 참사를 재연하고 있었다. 하지만 광부들의 일상에 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서 상당 부분 각색된 내용이었다. 칠레 영화감독 레오나르도 바레라도 땅속에 갇힌 광부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포르노 영화 제작 발표회를 열었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대규모 난교 파티’가 아니라 광부들과 ‘미나’의 섹스를 다룬 감동적인 영화가 될 거라고 주장했다. (‘미나’는 섹시한 여자를 일컫는 칠레 속어다.) 광부들은 어둡고 축축한 땅속 세상에서 나오자마자 할리우드 촬영장으로 끌려갈 신세였다. 지상에 적응할 시간 따위는 없을 듯싶었다. <212p~213p>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하는 일에는 항상 불순한 자들의 욕심과 이익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구조작업이 계속되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기자들과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저마다 광부들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상업적 목적의 이벤트를 추진했다. 당연히 광부들은 그들에 대해 거부감을 표했고, 가족들도 곤혹스러웠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인간이 가진 탐욕스러움을 엿볼 수 있었다. 아무리 자신들의 직업상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하더라도, 아직 구조되지 않은 광부들을 대상으로 그런 작태를 벌이다니! 광부들과 그의 가족들을 가난하고 불우하다고 생각하여 금전적으로 유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분노를 느꼈다.
삶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몸소 겪은 그는 이렇게 충고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교훈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 말이에요. 인간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장점을 키워 나가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2분 만에 끝날 수도 있어요. 살아 있지 못하다면 금은보화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저를 보세요. 저는 행복합니다. 두 달 동안 땡전 한 푼 없었지만 지금 행복해요.”
그는 파도와 하늘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이게 삶입니다.” <296p>
구조된 광부들은 새로운 삶을 살았다. 한순간에 조국 칠레의 유명인사가 되었고, 해외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나 광부들은 그것들을 원치 않았고, 구조된 광부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보다는 집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평안과 안식이었다. 누구의 관심과 주시 없이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을 원했고, 개인의 사생활을 즐기기 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고 되찾았다. 죽음의 목전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에게 삶은 신의 선물이었다.
칠레 광부 구조는 9·11에 항거하는 사건이었다. 박애와 형제애, 이타주의의 토대 위에 세워진 지구촌의 의미를 똑똑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칠레 광부 이야기에 쏠린 전 세계 매스컴의 관심은 전쟁과 학살, 기상이변 뉴스로 점철된 일상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한순간의 꿈이었을까? 아니면 이 세상을 위한 일을 벌일 때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거대한 선의의 보물창고를 살짝 들여다본 것일까? <302p>
칠레 구조대원부터 미 항공 우주국의 관계자들까지 구조대에 참여한 지상 최대의 구조작업. 매몰된 광부들 중 최연소인 19세 지미 산체스와 63세 최고령 마리오 고메스까지 광부들은 69일간의 긴 땅속생활을 마치고 전 세계인들의 환영을 받으며 구조되었다. 끔찍한 조난 사고 이후 몇 일만에 소수의 사람들이 구출되는 경우는 있었어도, 33명이 69일 만에 구조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최초가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책의 말처럼 정말 신선한 사건이었다. 지금도 끊이지 않는 세계 각처의 시위와 전쟁, 기상이변 등등.. 불안과 공포의 나날 속에서 칠레 광부들의 구조는 인종과 민족을 뛰어넘는 인류애의 생존을 확인하고 가족을 넘어선 간절함이 어우러진 화합의 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고와 구조작업으로 인한 생존자 구조는 감동적인 휴먼 다큐멘터리지만 앞으로는 더 보고 싶진 않다. 사고는 예방해야하고, 구조작업은 긴 휴업을 맞이해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런 극적인 상황을 보고 감동보다는 매순간 살아있다는 것에 감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자인 조나단 프랭클린은 <가디언>지의 기자답게 책 뒤에는 생생한 사진들과 자세한 설명을 수록하였고, 책 디자인은 깔끔하며 내용은 쉽고 자세하다. 앞으로 이와 관련된 책과 영화들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이 책은 그것들의 교과서적 역할을 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