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구마가야시의 변두리 마을에서 한
여성이 흉기에 찔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살해되고 몇 일이 지난 상태, 구더기가 끓고 있는 시신 옆 벽에는 피로 쓴
'네메시스'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네메시스... 신화속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역할은 종종 천벌의
집행자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누가봐도 자신의 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낸 범인의 짓임이 명백해 보인다. 와타세 경부와 신참형사 고테가와가 이 특별해
보이는 사건을 맡게 된다.
어느새 두번째 만남이다. 지난 7월 우리의 와타세 경부 시리즈의 시작인 '테미스의 검'을 함께 했고, 이제 그 두번째 이야기
<네메시스의 사자>로 반가운 인사를 대신한다. 와타세 경부는 숨진 60대 여성이 10여년전 일어났던 '우라와역 묻지마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는 인물임을 알아낸다. 당시 사건의 범인이었던 가루베라는 남자의 어머니가 바로 이번 사건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
가상공간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던 가루베, 하지만 그는 유명한 교육 평론가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살과도 같은 교통사고로 숨졌고, 그의 어머니는 본래 자신의 성(姓)으로 돌아가 숨어 살다시피 삶을
살아가던 상태였다가 살해를 당한 것이었다. 첫번째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얼마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피해자는 또 다른 중대범죄를 저지른 범인의 가족이었다. 첫번째 사건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범행 현장, 그리고 또 다시 남겨진 피로 쓰여진
'네메시스'라는 글자! 범인을 정말 처절한 응징자를 자처한 것일까?
중대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가족이 살해되고, 사건 현장에 남아있는 '네메시스'라는 글자를 남기는 범인은 점차 대중들에게 영웅처럼
떠받들여진다. 복수의 사도! 네메시스의 사자는 사형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대중들의 공감을 얻음으로서 다시한번 사형제도의 폐지를 포함한 사법부의
온정주의적 사법판단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네미시스의 사자는 단순 복수를 위한 사분(私憤)을 폭발하는 자(者)인가, 아니면
사법제도에 테러를 가하는 의분(義憤)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 역시 사형제도와 관련해서 다양한 의견이 대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1997년 이후 사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질적인 사형제도 폐지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개인적으로도 사형제도의 폐지에 마음을 두고 있기는 하다.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어쩌면 너무나도 쉬운 사적인 죽임 보다는 사회와 평생 격리시키고 힘겨운 삶을 유지시켜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고뇌하는 긴 시간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아무 죄 없는 사람을 둘이나 죽이고 반성 따위 하지
않는 인간을 왜 사형에 처하지 않는 걸까요. 이 나라에는 엄연히 사형제도가 존재하는데 일개 재판관의 심증 여하로 어떻게 그것을 회피할 수 있는
걸까요. ... 범죄자가 사형을 면하면 피해자는 두 번 죽습니다. ... 피해자와 그 가족은 대체 얼마나 더 고통받아야 하는 걸까요...
피해자와 가족들은 무시당하는 상황, 이게 법치 국가의 바람직한 모습입니까?" - P. 412 -
이번에도 와타세와 고테가와는 무난하게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네메시스'라는 이 단어를 통해서 어쩌면 사건의 방향과 범인의 존재에 대한
너무나도 커다란 단서가 제공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사건과 범인의 존재가 너무나 단순하고 평면적이지 않기에 조금은 다행이지만
말이다. 미사키 검사나 스미 검시관, 미쓰자키 교수 같이 '나카야마 월드'속에서 교차하듯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의 모습을 살짝 살짝 만나는 재미
역시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이 담아내는 독특함이다.
어쩌면 와타세 경부가 그랬듯, 지금은 신참인 고테가와 형사가 앞으로 단독으로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는 그런 모습을 볼 날도 머지 않을것
같다. 최근 국내에서도 굉장한 이슈가 되고 있는 심신미약자 범죄 의무 감형조항과 더불어 끊임없이 이슈가 되고 있는 사형제도 문제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원죄를 기반으로 한 나카야마 시치리의 세계관이 점점 치열해지고 묵직해지는 느낌을 갖는다. 그의 다양한 시선을 통해
우리는 조금더 이 사회에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아니 존재하지만 고민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조금더 신중히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수
있을것 같다. 이야기 장인, 반전의 제왕! 언제나 즐거운 나카야마 시치리와의 만남을 아쉬움속에 뒤로 해야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