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빛>을 리뷰해주세요.
검은 빛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해운대'라는 영화가 쓰나미처럼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자연재해가 만들어낸 거대한 공포, 한없이 나약한 존재인 인간이 만들어내는 따스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여름극장가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은 것이다. 2004년  인도네시아 아체주에서 발생한 강력한 쓰나미(tsunami)로 약 23만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다른 나라들을 포함한다면 당시 쓰나미로 30만명이상의 인명이 무참하게 자연앞에 굴복하고야 말았다. 인간들은 이런 자연재해를 이제 단순히 천재지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자연파괴가 불러온 부메랑처럼 자연은 더이상 우리에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듯 그들의 야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연이 쏟아내는 수많은 위험, 폭력속에서 새롭게 빚어지는 또 다른 폭력의 계속되는 굴레를 작가 미우라 시온은 <검은빛>을 통해서 우리에게 여과없이 보여준다. 미하마 섬에서 평범한 일상을 지내던 아이들에게 찾아온 예기치 못한 검은빛이 다가온다. 중학생인 노부유키, 그리고 미카는 서로의 몸에 탐닉하는 시간을 보내고 노부유키를 따르는 다스쿠는 그의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린다. 방갈로 손님 야마나카는 미카에게 음흉한 시선을 던지고 그렇게 섹스와 폭력이란 조합속에서도 미하마 섬의 시계를 평범한 일상속에 흐른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만의 밀회를 즐기기위해 신사를 찾은 노부유키와 미카, 그리고 그들을 따라온 다스쿠.그들이 마을을 떠난 사이 작은 섬마을을 공격한 쓰나미는 그들과 세명의 어른들만을 남겨둔채 섬을 삼켜버린다. 다스쿠가 그토록 미워하던 아버지, 미카를 주시하던 야마나카, 그리고 등대지기 할아버지... 평범한 일상을 살던 그들에게 그날의 악몽은 전혀 다른 삶의 시간을 던져준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어느날, 섬을 떠난 노부유키는 아내와 딸아이를 둔 아빠로, 미카는 유명한 여배우로, 다스쿠는 프레스공장에서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한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안식의 땅은 없다. 폭력에 상처 입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것이다.' [P. 263]

 

미하마 섬에서 노부유키의 시선, 노부유키의 아내 나미코의 시선, 다스쿠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전해진다. 자연이라는 폭력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던 그들과 그로인해 새롭게 전해지는 또 다른 폭력의 그림자들을 미우라 시온의 잔잔한 시선속에 담겨진다. 살인사건, 폭력, 섹스, 불륜, 아동성범죄 등 정말이지 끔찍한, 인간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어색한 이야기들을 쏟아놓으면서도 작가는 잔잔한 파도처럼 작은 일렁임만을 내보인다. 거대한 쓰나미와 같은 감정의 동요나 사건의 긴장감은 없지만 평범한 일상속에 숨겨진 폭력의 잔인함이 그 일렁임속에서 쓰나미보다 커다란 충격을 전해준다.





 

미우라 시온은 인터뷰에서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은 사람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이 작품을 시작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쓰나미 라는 자연의 폭력, 어린시절부터 이어진 다스쿠 아버지의 폭력,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의해 저질러진 살인이라는 폭력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계속해서 폭력을 낳게 된다. 그리고 결국 헤어날 수 없는 검은 빛에 휩싸이게 된다. 폭력이라는 검은빛은 희망과 사랑 모두를 그들에게서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고 만다. 미우라 시온은 폭력이라는 검은빛이 가진 연속적인 굴레를 거대한 임팩트없이 잔잔하면서도 밀도 깊게 써내려가고 있다.

 

"소리도 없이 거대한 파도가 밀려와 모든 것을 삼키고 어딘가로 휩쓸어가버렸다.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을. 내 안에 어렴풋이 남아 가까스로 나를 지탱해 온 희망과 기대와 사랑을."   [P. 316]

 

<검은빛>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게 검은빛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노부유키의 검은빛은 바로 폭력과 살인이다. 사랑앞에 눈먼 그에게 이미 세상은 검게 변해버리고 만다. 미카의 검은빛은 바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자비하게 다른이를 이용하는 어두운 마음이다. 노부유키에 대해서도 야마나카에 대해서도 그렇다. 다스쿠에게는 비뚤어지고 어긋난 사랑이 바로 검은빛이다.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면서 겪었던 고통을 누군가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그였지만 결국 그 검은 빛으로 인해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검은빛>의 원제는 단지 빛(光) 이였다고 한다. 물론 영문 타이틀은 다크 라이트(The Dark Light)이지만 '빛' 보다는 '검은 빛'이라는 이중적인 이미지와 느낌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내주고 있는듯 보인다. 미우라 시온이란 작가의 작품은 사실 처음이다. 이전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기에 작가가 드러내는 작품의 색깔이 어떤지 잘은 모르지만 매 작품마다 새로운 색깔과 분위기를 가진 작가라니 그의 이전 다른 작품들도 한번 만나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만든다.

 

폭력에 휩쓸린 인간, 그 인간들이 낳은 또 다른 폭력들, 그리고 그 폭력에 대응하는 그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폭력의 벗어버릴 수 없는 연속적 굴레에 놀라움을 느끼기고 하고 그런 폭력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게도 된다. 미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는 사람은 인간 세계에 더이상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몰라'(P. 238) 라는... 폭력앞에 놓인 잔인한 인간의 본성, 폭력에 대응하는 모습속에서 삶을 살아갈 수많은 고민과 다양한 변화를 모색해보게 된다. 잔잔하면서도 평범한 일상의 모습들이 미우라 시온의 펜끝을 통해서 검은 빛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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