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마음>을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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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마음 - 시인 문태준 첫 산문집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칼럼 속에서 이런 글을 읽게 되었다. '우리 조상들에게 부채는 느림의 미학이자 한지의 과학이었으며, 바람의 여유이자 삶의 지혜였으며, 소통의 공간이자 예술의 극치였다.' 이 글은 부채와 한지가 주는 우리 조상대대로 내려온 느림의 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느림의 미학은 삶의 여유와 맞닿아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춰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가끔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 가까운 곳도 둘러보고 먼곳의 풍경도 바라보던 아름다운 정취가 느림의 미학속에 담겨져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삶의 여유를 내동댕이 쳐버리고 말았다.
<느림보 마음>은 우리가 잊고 있던 '느림'이란 것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문태준 시인이 써내려간 이 에세이집은 '느린 마음으로 살때 청량해 집니다.'라는 말로 그 시작을 알린다. 작가가 살아오면서 사랑했던 시간들은 누군가의 말을 가만히 들어줄때, 뒤로 물러설 때, 작은 자연이 되어 천천히 걸어갈 때였다고 말한다. 내가 나를 거울로 들여다 볼때, 용서를 빌때, 그럴때 세계가 한층 맑아지고 청량해진다고 말하며 느림이 우리 생활에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자신의 생활을 들어 '느림'을 예찬한다.
느린마음, 느린 열애, 느린 닿음, 그리고 느린 걸음으로 구성된 <느림보 마음>은 작가 자신이 그려가고 있는 삶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아 느림의 미학을 그려내는 즐거운 작업과도 같이 생각된다. 4장에 걸친 느린보 마음을 담아낸 이야기들은 제목 그 자체로 한편의 시어들이 된다. '시원하고 푸른 한 바가지 우물물 같은 휴식', '물고기가 달을 읽는 소리를 듣다', '깊은 강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등 하나하나가 영롱한 시어 들로 가꾸어진듯하다.
'입은 날카로운 도끼와 같아서 그 몸을 스스로 깬다고 했습니다. 입으로 여러가지 악한 말을 하면 도리어 그 도끼의 말로써 스스로 몸을 해치고 말 것입니다. 말을 할때가 있는가 하면 침묵을 지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적절한 침묵은 우레와 같다고 하지 않았는지요.' - P. 21 -
'느린 마음'에서 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가장 먼저 드러난다. 말이 적으면 지혜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 적절한 침묵, 자신의 말만을 쏟아내는 현대사회에서 누군가의 말에 귀를 열고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해보인다. 입에서 말을 덜어내고, 마음속에서 욕심을 덜어내는 일이 가장 번창하는 일임을 작가는 전한다. 사람을 마중나가는 마음, 지금은 정말 낯선 장면이지만 얼마전까지만해도 익숙했던 이 모습속에서 사랑을 알게된다는 말도 참 가슴속에 와 닿는다. 빠름이 익숙한 현대사회 속에서 잊고 있던 느림의 미학, 삶의 여유를 잊혀지지 않는 단어로 작가는 소리친다.

'느린 열애'속에는 쓰다듬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쓰다듬는다는 것은 '내 마음이 좀 그렇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차마 잘라 말할 수 없지만 애절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이보다 더 멋진 표현이 있을까? 쉽게 표현하고 쉽게 사랑하고 쉽게 이별하는 초스피드식 사랑에 익숙한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이런 모습들에 대한 사랑을 되새기게 만든다. '느린 닿음'과 '느린 걸음'속에서는 자연과 가족, 관계 속에서의 느림의 미학을 전해준다. 타샤 튜더가 말한 행복의 조건, 아이의 호기심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작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들, 가족이라는 구성원이 주는 따스함을 잊고 살았던 우리에게 기억을 되돌려준다.
문태준 시인의 <느림보 마음>속에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과 함께 또 다른 시인들의 감미로운 시(詩)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성선 시인의 [기도], 천상변 시인의 [날개], 박목월 시인의 [소찬] 등 가슴 따뜻하면서 화려하지 않은 작품들이 작가가 말하려는 '느림'이 주는 미학과 신선한 충격을 배가시켜준다. 문태준 시인이 던져주는 이야기들은 회색빛으로 덫칠해졌던 삶의 수많은 여백들에서 탁한 빛깔들을 걷어내고 느림으로, 여유로, 여백의 미를 깨닫게 하는데 더없이 큰 힘을 내어주고 있다.
'인생은 오늘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단 한 번뿐인 오늘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영원답게 살아야 합니다. 증기기관차의 화통 같은 열정이 우리의 내일을 가꿉니다. 있는 힘을 다하는 당신이라면 나는 당신의 맨발을 손수 씻어주고 싶습니다.' - P. 230 -
연속된 오늘을 살아가기에 하루하루 쉴 수 조차 없는 현대인들, 그 소중한 하루를 살아갈 열정과 우리가 말하는 빠름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쉴 새없이 내뱉는 말들, 흘린 땀이 마를 새도 없이 걷는 두 발, 귀는 꼭 막아둔 채, 눈은 정면만을 바라보며 걷고 뛰어가던 우리들에게 시인은 잠시 쉬어갈 여유와 꽉꽉 채우지 않아도 아름다운 삶의 여백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시원하고 푸른 한바가지 우물물과 같은, 우리 삶에 잠깐의 휴식과 여유를 전해주는 <느림보 마음>이 지치고 야윈 현대인들의 가슴을 따스하게 쓰다듬어 줄것이다. 내동댕이 쳐버린 '여유와 여백'을 잠시 들어 우리 곁에 두고 함께 걸어갈 새로운 시작과 삶의 지혜를 <느림보 마음>은 살며시 건네주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해오던 시간들을 더 사랑 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