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서아 가비>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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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커피는 끝나지 않은 당신의 이야기이다.
어떤 사물하나, 어떤 풍경하나, 어떤 작은 대상하나에도 여러가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커피! 학창시절 졸음을 쫓아보려고 줄기차게 마셔대던 진한향의 커피, 차가운 겨울 군대에서 마시던 따스하고 달콤했던 커피의 추억, 떠나가는 첫사랑을 붙잡지도 못하고 홀로 우두커니 앉아 멍한 표정으로 마시던 쓰디쓴 커피, 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하는 향기로운 모닝커피 한잔... 이렇듯 커피한잔에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묻어있다. 커피와 사기꾼, 그리고 이야기가 만났다. 김탁환의 영혼을 타고...
[노서아 가비]란 제목을 만났을 때 이것이 주인공의 이름겠거니 생각 했었다.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이야기라는 책소개로 말미암아 책 표지에도 있듯 외국인 여성과 조선 왕실, 고종과의 특별하고 색다른 이야기겠거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간다. 물론 바리스타 이야기도, 커피 이야기도 맞지만 외국인으로 생각했던 표지모델?이자 책의 주인공은 바로 사기꾼? 이었다. 조선말엽에서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 격랑의 삶을 살았던 그녀, 그들의 커피색 흐릿한 시대를 그려낸다.
빼쩨르부르그 사람들은 특별히 주장한다. 사상보다도 예술보다도 돈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지독한 액체, 그것이 바로 커피라고. [P. 14]
역관집안의 딸이였지만 청나라 연행길에서 돌아오는 중 조선 국왕을 위한 천자의 하사품을 빼돌려 달아나다 절벽에서 떨어져 즉사했다는 아버지에 대한 비보를 듣게 된 따냐. 하루아침에 대역죄인의 딸이 된 그녀는 국경을 넘게된다. 아버지의 옛 친구들, 그림위조 사기꾼 칭 할아범, 그리고 얼음여우 무리를 만나는 여정속에서 그녀는 사기꾼의 면모?를 갖추어 간다. 그리고 그녀에게 운명처럼 나타난 사랑, 또 한명의 사기꾼 이반이 등장한다. 사랑과 함께 그녀와 그는 새로움 사업?을 추진해간다.
이반의 부모는 관아의 노비였다. 두만강을 넘어 새로운 삶을 꿈꾸던 그들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어머니와 여동생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지금의 삶으로 던져진 이반이었다. 그러던중 러시아 황제 리꼴라이 2세의 대관신에 참석한 조선사신들과 인연이 되어 역관으로 조선에 먼저 가게된 이반, 그리고 그를 뒤따라간 따냐에게 전혀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고종의 바리스타로 과거를 잊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따냐 그리고 역관 이반. 그들 앞에 대한제국의 어두운 그림자가 고스란히 드리워진다. 그리고 밝혀지는 또 다른 음모와 비밀들...

발자크에게, 뿌쉬킨에게, 고종에게, 하여 당신에게 커피는 무엇인지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곳에서부터 전부라는 곳까지. [ P. 236 , 작가의 말 ]
커피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김탁환은 그 답을 내어 놓는다. 목차를 가만히 지켜보면 대한제국시대를 배경으로한 이 소설은 어느새 커피의 속성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실제 고종과 연관된 독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커피와 사기꾼이라는 독특한 두가지 소재로 재미를 더해준다. 커피가 가진 속성을 역사적 배경과 사람들이 가진 속성과 잘 연결지어 새롭게 창조해내었다는 사실이 대단히 흥미롭다. 김탁환! 어쩌면 그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를일이다.
얼마전 김탁환의 [천년습작千年習作]과 마주했었다. 그 책속에 이런 말이 들어있다. '처음에 글은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감(感)하고 동(動)하면서 글은 느끼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 작자는 읽고 느끼고 품는 자라고 확신합니다.' 커피와 사기꾼, 그리고 고종. 우리는 읽지만 저자는 이야기를 품어낸다. 시대적 아픔을 품어낸다. 재미를 품어낸다. 지금까지 우리가 맛보지 못했던 커피의 특별한 맛을 김탁환은 그렇게 품어내고 있다.
무당은 떠도는 영혼에 몸을 빌려주지만, 소설가 김탁환은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가 상상력의 평원을 말을 타고 떠도는 동안 자신의 영혼을 빌려준다. - P.243 , 작품해설 문화비평가 강심호 -
너무 마음에 드는 말이다. 자신의 영혼을 빌려준다.... 너무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낄 수 있도록 멋지게 품어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영혼을 빌려주는 그를 이 작품을 통해서 다시 만나게 된다. 오랫만에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찾았다. 사기꾼의 자세를 잃지 않는, 무겁지 않지만 깊이가 있는, 어떤 얽메임 없이 자신의 길을 찾는, 특별한 매력을 가진 사기꾼 따냐! 영화로도 이 작품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따냐의 역할을 누가 맡게 될 지 또 하나의 즐거운 기대를 갖게 만든다.
[노서아 가비]는 진한 커피색의 표지를 벗기면 빠알간 그 속살이 드러난다. 커피의 짙은 향속에 사랑보다 지독한 이야기가 담겨진다. [노서아 가비]는 이야기를 품고 자신의 영혼마저 건네주는 김탁환 작가만의 색깔과 향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당신에게 커피는 무엇인지요?' 책을 내려놓으면서도 아직 작가의 그 질문에 쉽게 답할수가 없다. 커피는 내게 무엇일까? 커피는 끝나지 않고 계속될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