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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원고
트래비스 홀랜드 지음, 정병선 옮김 / 난장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문학의 힘은 독자의 정서에 울림을 주는 파도와도 같은 것이다. 미국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 가를 가르친다.' 라고 말했다. 문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고 엄청난 위력과 파급효과를 내는지 이 말이 잘 말해준다. 전제군주시대, 혹은 독재정권이 권력을 휘두르던 시대에 가장 먼저 처해지는 일이 바로 문학의 검열과 작가들에 대한 탄압임을 역사적으로도 우리는 피부로 느껴오기도 했다. 1939년 스탈린 시대의 러시아, 70년을 넘어서는 시간적 공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탄압받고 일부 문학인들이 정치 선전의 도구로 이용되는 2009년 대한민국! 지금을 사는 우리는 왜 그 시대를 자꾸 떠올리게 될까?

 

[사라진 원고]는 스탈린 시대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다. 실존했던 러시아의 유대인 작가 이삭 바벨의 숙청과 그의 사라져버린 작품들을 모티브로, 악명 높았다던 루뱐카 교도소를 배경으로 그려진다. 키로프 아카데미에서 문학을 가르치다가 학교에서 쫓겨나 공문서관리인으로 일하는 파벨 두브로프라는 이름을 가진 상상의 인물을 더해서 KGB 문서국이 행했던 암울한 시대의 어두운 면면들과 그 속에서 갈등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낯선 이름들과 익숙치 않은 시대 분위기에 책에 몰입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작품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사회, 문학의 순수성은 사라지고 정치적인 색채를 띈 작품들과 작가들은 처단되는 어둠의 시대. 문학을 가르치다 문학을 불태워버리는 일을 맡게 된 한 남자의 비애가 그려진다. 모함으로 학교에서 쫓겨나고 열차사고로 아내를 잃고, 어머니는 치매 증세가 날로 악화된다. 거기에다 자신이 존경하는 작가를 가두고 그의 작품들을 소각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파벨의 말못할 고뇌와 급기야 양심에 자극받아 작가의 작품을 비밀 장소로 숨기게된다.

 



[사라진 원고]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스산하다. 회색빛 차가운 시대를 그려낸 표지그림이 그렇듯... 특별할 것 없이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는 이야기는 리듬이나 강약이 없다. 자신과 관련된 일들과 그 시대의 어둠속에서 최선이랄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행동과 심리에 촛점이 맞춰진다. 어둠의 시대에 희망의 빛이 보일리 만무하지만 작가는 파벨의 작지만 용기있는 행동을 통해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을 그려내고 있다.

 

'시대는 그걸 요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이든 숨겨야만 했다. 그렇게 지하실 벽이 파벨의 내면세계를 담는 그릇이 되었다.'  -  P. 376

 

루뱐카에서 파벨의 임무는 젊은 장교가 문서 보관소에서 아무렇게나 추려내는 파일을 폐기처분, 소각하는 일이다. 누군가는 그걸 '잡초 뽑기'라로 쉽게 부른다. 잡초 뽑기!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것들은 쉽게 왜곡하고 없애는 그들의 행태가 바로 잡초 뽑기인 것이다. 다시 우리 시대로 돌아와본다. 소통이 사라진 사회에서 우리에게도 이런 잡초 뽑기가 자행되고 있지는 않은가? 얼마전 신종플루 홍보에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M모 방송국에 광고를 주지 않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기자들의 이메일을 압수하고 쉽게 공개하는 언론플레이가 횡횡하고, 협조적이지 않은 시민단체의 지원금을 중단한 정부... 잡초 뽑기는 이런 것이 아닐까?

 

역사는 언제나 멈추어 서있지 않는다. 책속에 그려진 시대는 아주 오래전 이데올로기가 상존한 시대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속에 그 믿기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레드 컴플렉스가 부활하고, 7~80년대 독재권력의 모습을 바라보는듯한 느낌이 비단 몇몇 깨어있는 자들의 시선에 담긴것 뿐일까? 이 정권,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이든 숨겨야만 했다'는 소설속 주인공 파벨의 모습이란 말인가?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 가를 가르친다.'라는 말이 다시한번 떠오른다. [사라진 원고] 조금은 낯설기도 했던 스탈린시대의 특별한 이야기가 우리가, 문학이 나아갈 미래의 길을 제시해주는 빛이 되어준다. 정치적 노리개와 선동의 도구가 아닌 문학이 가진 진정한 힘과 올바른 주장이 어둠속에 허우적대는 수많은 깨어있는 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선물할거라 기대해본다. 잠시의 어둠때문에, 우리 시대에 요구되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숨길것이 아니라 떳떳하고 당당하게 용기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사라진 원고]를 통해 문학이 가진 진정한 힘과 용기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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