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이삭 1 - 미지의 세계를 찾아서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크리스토프 블랭 지음, 김이정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네가 만화를 알어?' 책을 집어든 내게 책이 건네는 말입니다. 내가 만화에 대해서 알까? 만화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한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생각하는 만화라는 게 어린시절 즐겼던 그런 만화 아니면 어른이 보는 만화라면 빨간책(?)류의 만화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녀석을 집어들고 어른이 보는 만화에 대해서 좀 알아볼 요량입니다. 일단 대답은 ' 알기는 하는데 유럽의 성인 만화라는 네 녀석을 알고싶어!'

 이삭은 화가입니다. 파리의 뒷골목(?)에서 그림을 그리며 그의 약혼녀 알리사와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가는 가난한 화가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거금을 들여 그가 존경하는 화가의 그림 습작을 사들이는 걸 보면 분명 예술가로서의 숨은 기질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냥 마지못해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부류는 아닌듯 합니다. 그런 그 앞에 나타난 외과의사 앙리 드묄랭과의 우연한 만남은 남자들의 숨어있는 야성의 세계(?)로 그가 휩쓸려 들어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배를 타고 떠난 항해, 해적선장 장과의 만남, 적과의 목숨을 건 싸움, 이국에서 약혼자가 아닌 다른 여인들과의 만남, 혼자 남은 알리사의 고단한 삶, 그런 그녀앞에 나타나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남자 필립, 그리고 선장 장의 야심찬 극지방 탐험과 신대륙 발견을 위해 떠나느  항해, 이 모든 모험을 간직한 이삭의 화첩....... 순진한 해적들이 펭귄을 신기해 하며 뒤뚱이라 부르고, 극지방의 오로라 현상이 불길한 징조가 아닌지 무서워 하는 모습이 무지했던 원시적 인간본연의 모습을 생각하게도 하고, 총독의 집에서 만난 여자들과 일을 꾸미는 남자들의 모습에서 남자라는 존재의 어쩔수 없는 바람기(?)를, 그리고 빙산에 자기 이름을 붙이기를 거부하고 서로 더 좋은 섬이나 대륙이 나타나면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겠다고 우기는 모습에서는 명예에 죽고 살수 있는 야성적인 남성을 만나게도 됩니다. 

 이렇게 내용만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면 만화 - 아니 그림소설-을 본 느낌이 못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잠시 내용은 뒤로 하고 그림과 형식을 살펴봅니다. 우선 한페이지에 4단으로-때로는 3단이나 5단이기도-나눈 구획선이 여백의 시원함보다는 빽빽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글씨가 조금 작아져서 신경을 써야 되는 부분도 예전 어린시절 만화의 느낌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그게 다 나쁜건 아닙니다. 좀더 집중하고 생각하게 하는 역할도 하니까요. 그리고 그려진 한컷, 한컷은 따로 떼어놓는다면 하나의 작품이 될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만큼 펜끝이 많이 가고 손이 많이 간 모습입니다. 그림의 배경도 그리고 각 인물의 모습도 그냥 적당히 처리하지 않고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고, 특히 인물의 모습은 모두 나름의 감정과 느낌을 그대로 얼굴과 몸짓에 담고 있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글에 집중하느라고 못본 건데 확실히 그림만으로도 글이라면 몇줄에 걸쳐 묘사했을 것들을 간단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인물의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과장된 부분이 있어 낯설기는 하지만 보다보니 이게 바로 만화로서의 특징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예로 외과의사 앙리의 코는 상당히 크다기 보다는 깁니다. 그래서 소설이라면 매부리코니 코가 길다니 하고 표현하겠지만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도 그림속의 앙리만큼 멋지고 큰 코를 상상하지는 못할 듯 하니까요. 그런다고 앙리의 코는 길이가 10cm 이었다는 식으로 표현할 멋진(?) 작가는 없을것 같구요.

  아이들이 한참 책을 좋아하기 시작하던 때에 '못말리는 종이괴물'이라는 그림책-처음에는 그리 생각하고 구입했습니다-을 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받아서 내용을 살펴보니 형식이 분명 이상하다 싶어 이리저리 살펴보고 나서 이것이 만화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용도 형식도 전혀 아닌 듯 한데, 칸을 나누어 이야기를 구성하여 가는 형식이 분명 만화였습니다. 하지만 부모로서 거부감 없이 아니 시리즈를 전부 다 사줄 정도로 아끼고 정감을 줄수 있는 좋은 책들이었습니다.  오늘 이 해적이삭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문득 듭니다. 의식 저편에, 특히 독서를 좀 한다는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을 만화에 대한 거부감(?)이 이 정도의 스토리와 품격과 정성이 들어간 책이라면 괜한 허영심이 되겠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분명 이 정도라면 만화보다는 그림소설이라고 굳이 표현한 출판사의 의견에 동조해 줄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을 내어 가볍게 읽고, 의미없이 시간을 죽였다는 자조감은 분명 들지 않을 만한 좋은 이야기 그림책이었으니까요.

 이러다가 정말 그림소설도 좋아지면 어떡하지요? 아직도 이거 말고도 읽어야 할 책은 너무 많은데... 하지만 세상의 한 구석에 묻힌 내가 모르고 무시했던 영역을 다시 긍정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즐거움이 내게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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