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클리스 - 전예원 세계 문학선 325 셰익스피어 전집 325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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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야 말로 인간의 지배자다. 시간은 인간의 어버이도 되고, 무덤도 되고, 주고 싶은 사람에겐 마음대로 무엇이든 주지만, 이쪽에서 바라는 것은 전혀 주지도 않는다. -p65, 2막 3장, 페리클리스 

  셰익스피어의 후기 작품에 속하는 이 극은 1607년에서 1608년 사이에 쓰여졌다고 알려져 있으며, <심벌린>, <겨울 이야기>, <템페스트>와 더불어 후기 낭만극 -로망스-로 불립니다. '로망스 극의 특징은, 첫째로 내용이 동화처럼 현실감이 떨어지며, 둘째로 전반은 비극적이고 후반은 희극적이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며 -그래서 희비극(Tragi-comedy)라고도 함-, 셋째로 죽은 줄 알았던 이들이 기적적으로 살아나 가족이나 연인가 재회하는 내용이 많다' -권오숙의 <그림으로 셰익스피어 읽기>, p415-고 합니다. 이 극도 이러한 낭만극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고 충실히 따르면서 페리클리스라는 인물의 기구한 운명과 그러한 운명의 반전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대부분이 원전을 가지고 있듯이, 이 작품도 중세 영국의 시인 가워의 <연인의 고백 (Confessio Amantis)>에 수록된 '타이어의 아폴로니어스 (Apollonius of Tyre)' 이야기를 극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타이어의 영주인 페리클리스는 출중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앤티어크의 공주에게 청혼하러 갔다가 앤티어크의 왕 앤타이어커스와 공주가 근친상간에 빠져있다는 비밀을 알게 되고, 그 순간부터 페리클리스는 기구한 운명의 수레바퀴에 깊이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그는 비밀을 들킨 앤타이크 왕의 강력한 보복이 두려워 자신이 다스리던 타이어의 통치를 충신 헬리케이너스에게 맡기고 유랑의 길에 나섭니다. 처음 도착한 곳은 굶주림에 몰락해가는 타서스인데, 거기서 양식을 나눠주면 머물던 그의 일행은 다시 앤티어크 왕의 추격이 두려워 모험에 나서게 되지만, 도중에 폭풍을 만나 배가 파선하게 되고, 페리클리스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 펜태폴리스 해안에 표류하게 됩니다. 여기서 가혹하던 운명이 그에게 잠시 따스한 손길을 베푸는 듯하여, 그는 펜태폴리스의 왕 시머니디스의 딸 타이사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이내 운명의 따스한 손길은 더 가혹한 시련으로 그의 앞길을 내리쳐 버립니다. 헬리케이너스로부터 앤티어크 왕의 죽음과 왕을 요구하는 타이어 백성들의 급박한 소식을 접한 그는 임신한 타이사와 함께 귀국길에 오르지만, 운명은 다시 그의 배를 폭풍속에서 표류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딸 마리나를 출산하던 타이사가 죽어 -나중에 세리먼에 의해 회생하여 다이애나 신전의 여사제가 되지만-  수장하게 되고, 이전에 들렀던 타서스에 상륙하여 타서스의 왕과 왕비에게 어린 딸 마리나의 양육을 부탁하고 홀로 타이어로 귀국합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여기서도 가혹한 장난(?)을 멈추지 않고 타서스 왕비의 질투심을 부추겨 마리나를 죽음으로 내몰고 -실제로는 죽임을 당하기 전에 극적으로 해적들에게 구출(?)되어 미틸리니의 사창가에 팔려갑니다- 자신의 성장한 딸을 만나러 타서스에 온 페리클리스는 딸의 무덤을 보며 자신의 기구한 운명 앞에서 말을 잃고 맙니다. 살아있는 마리나 역시 운명의 장난 앞에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지만 페리클리스와는 달리 미틸리니에서 현명하게 자신의 운명을 헤쳐가던 중, 미틸리니에 도착한 페리클리스와 극적으로 상봉하면서 운명의 반전이 시작됩니다. 이제까지 운명의 여신이 이런 기쁨을 위해서 페리클리스와 그 가족을 시련으로 몰아넣었다는 듯이 페리클리스와 마리나의 극적인 만남에 뒤이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부인 타이사까지 에페서스에서 찾게 되면서, 페리클리스의 기구한 운명에서 불행의 고통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됩니다. 이 작품에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의지로 움직이는 세상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굴레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고, 행복에 잠기게도 하고, 불행이 쌓여 행복이 되기도 하고, 행복이라고 생각한 것이 더 큰 불행의 시작일 수도 있는 운명-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한 그것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것이 감상의 한 축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자신의 운명을 견디며 고군분투하는 영웅적인 주인공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 속의 페리클리스는 햄릿이나 오셀로, 리어왕이나 맥베스와 같이 극의 중심을 형성하며 강렬한 의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능동적인 사람이라기 보다는 운명에 등을 떠밀려 표류하게 되고 그 안에서 맞이하게 되는 고난을 수동적으로 견디는 중에 운명적으로 행복을 맞이하는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패륜의 생활도 길들어지고 습관이 되어버리니 죄의식도 사라졌습니다. -p22, 1막 서사1, 가워 

 왕에게 아첨하는 자는 오히려 왕에게 환난을 줍니다. 아첨은 죄악을 불러일으키는 풀무이며, 아첨 받은 자가 작은 죄악의 불꽃에 불과하다 해도 바람을 보내주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되게 합니다. 그 대신 충절하고 올바른 간언은 왕에게 약이 됩니다. 왕도 인간인 이상 과오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시뇨르 아첨이 간언을 막고 평화를 선언할 땐 전하의 목숨을 노려 전쟁을 걸어오는 것입니다. -p33~34, 1막 2장, 헬리케이너스 

 불행은 단독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뒤따르는 자를 데리고 오는 법. -p43, 1막 4장, 클리언 

 성난 하늘의 별들이여! 바람이여, 비여, 천둥이여, 이 지상의 인간은 도저히 너희들을 꺾을 힘이 없다. 그러니까 나도 본성 그대로 너희들에게 머리를 숙인다. -p52, 2막 1장 페리클리스 

 고래는 돈 많은 욕심쟁이와 같다고 할까. 뒹굴며 놀며 작은 물고기들을 장난조로 몰고 다니다가 결국엔 한입에 꿀컥 삼켜 버리거든. 그런 고래는 육지에도 있다구. 그놈은 마을의 교구든, 교회든, 뾰족탑이든, 종이든, 모두 통째로 삼켜 버리기 전에는 절대로 아가릴 다물지 않는다구. -p53, 2막 1장, 어부1 

 복장의 겉모습으로 사람의 속을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p62, 2막 2장, 시머니디스 

 난 평소부터 미덕과 재능을 신분이나 재물보다 더 귀하다고 여겨왔소. 뒤의 두 가지는 그 계승자가 탕아라면 신분은 더럽혀지고, 재물은 낭비될지 모르지. 하지만 미덕과 재능은 불멸하는 것이며 그 둘을 몸에 지니면 인간을 신과도 같게 하지요. -p89, 3막 2장, 세리먼 

 당신은 믿음이 있는 척 하는 위선자예요. 파리를 죽여놓고도 겨울의 추위 때문에 죽었다고 신들에게 호소하는 사람 같아요. 아무리 그래봤자 당신은 반드시 내 뜻대로 할 사람이에요. -p116, 4막 3장, 다이어나이자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향기롭고 가장 멋진 한송이 꽃이 인생의 봄철에 시들어, 여기 잠들었도다. 타이어 왕의 공주는 슬프게도 죽음으로 행복스런 생의 막을 내렸도다. 이름은 마리나이며, 태어날 때는 바다의 여신 데티스가 오만하게도 지구 한쪽을 삼킬 듯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대지는 바다의 범람을 두려워했고 데티스가 낳은 아이를 하늘로 보냈도다. 그리하여 바다의 여신은 노하여 거친 파도를 보내며 해안의 바위를 내리치기만 하도다. -p118, 4막 4장 무언극 중 마리나의 묘비 비문 

 자 얘기해보렴. 네가 참아온 슬픔이 나의 슬픔의 천분의 일만 된다하여도 넌 훌륭한 대장부같이 참아 왔으며 난 한낱 아녀자 같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넌 왕들의 무덤을 지켜보는 참을성을 보이면서도 미소로서 이겨내고 있으니 모든 절망도 시들 것이다. -p142, 5막 1장 페리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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