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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연발 - 전예원세계문학선 308 ㅣ 셰익스피어 전집 8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1990년 12월
평점 :
우린 서로 다른 하인을 만난 거예요. 사람들도 쭉 우리들을 잘못 보았던 겁니다. 그래서 이런 실수연발이 된 게 아니겠습니까. -p113, 5막 1장, 앤티폴러스(동생)
이 작품은 1590년대 초반에 씌여진 셰익스피어의 초기작품으로 원전은 플라우투스의 <메내크미>로 알려져 있고, 장르는 상황 희극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상황 희극이라는 용어가 낯설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이 용어가 의미하는 바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의 희극적인 성격은 주인공과 등장 인물들의 성격이나 대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쌍둥이 주인과 쌍둥이 하인에 대한 사람들의 착각 때문에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으로 인해서 나타나는데, 바로 등장 인물의 말이나 성격에서가 아니라 극을 꾸미는 상황이 이 희극의 웃음의 핵심이라는 의미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두쌍의 '쌍둥이를 착각해서 형성되는 상황, 쉽게 말해서 쌍둥이들의 용모와 행동, 그리고 어투가 친부모까지도 구별하기 어렵도록 흡사하다는 상황 자체가 웃음을 빚어내는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관객들이 웃음짓게 된다는 면에서 셰익스피어의 후기 희극이나 위대한 비극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등장인물의 성격 표현이나 대사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면이 부족하다거나 필요성이 덜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이 작품 속의 대사들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중간중간에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섬세한 표현들이 담겨 있습니다.
시러큐스의 상인 이지언과 이밀리어는 에피담넘에서 쌍둥이 앤티폴러스를 낳았고, 같은 시기에 태어난 다른 가난한 집안의 쌍둥이 형제 드로미오를 이들의 몸종으로 삼게 됩니다. 이밀리어가 고향으로 가서 자식들을 자랑하고 싶어해서 가족들이 귀향하던 중, 폭풍을 만나 이지언과 동생 앤티폴로스와 동생 드로미오, 그리고 어머니 이밀리어와 형 앤티폴로스와 형 드로미오가 각기 다른 배의 구조를 받아 헤어지게 되고, 이밀리어와 두 아이들은 코린스 어부들의 습격을 받아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이런 비극적인 가족사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형을 찾아나선 동생 앤티폴러스가 동생 드로미오가 형이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에페서스에 나타나면서 한바탕의 소동이 벌어집니다. 작품 안에서 쌍둥이 앤티폴로스 형제와 쌍둥이 드로미오 형제는 어느 누구도 외모나 행동을 가지고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판박이입니다. 이지언이나 이밀리어도 자신의 아들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앤티폴러스 형제는 누가 자신의 몸종인 드로미오인지 역으로 드로미오 형제는 누가 자신의 주인인 앤티폴러스인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또한 형 앤티폴로스의 부인인 애드리아너도 동생 앤티폴로스와 자신의 남편을 구분하지 못하고 헛갈립니다. 이렇게 극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두 쌍둥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게 되고, 이 네 사람사이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뒤엉키면서 갈등이 고조되는데, 이 극을 바라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갈등의 고조가 심각한 위험으로 느껴지기 보다는 웃음의 원천이 되는 느낌입니다. 극의 등장 인물 모두가 실수연발로 인해 종일 욕을 보지만, 그 모습을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실수연발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그들의 모습이 유쾌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작품입니다.
나야말로 이 광활한 세계에서 하나의 물방울이 망망한 큰 바다에 떨어져 그 동료들 중의 한 방울을 찾으려는 것과 같다. 동료를 찾기 위해 대해에 뛰어들었지만 눈에 뛰지 않는 것을 찾아 헤매다가 끝내는 내 자신마저 잃어버리구 말 거다. -p20, 1막 2장, 앤티폴러스(동생)
남자란 자유엔 주인이고 시간에 머슴인걸. 그러니 시간이 되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데 뭐. -p27, 2막 1장, 루시아너
자유를 지나치게 탐내다간 불행이란 난장을 맞게 돼요. 하늘 아래 있는 것들은 땅의 것이나 바다의 것이나 공중의 것이나 모두 제 분수에 알맞게 살고 있어요. -p27~28, 2막 1장, 루시아너
당신은 느릅나무고 전 덩굴이에요. 심약한 저도 강한 당신과 살을 섞는 부부니 당신의 힘을 받아 강해지는 거예요. 이렇게 소중한 당신을 어느 누가 제게서 뺏어간다면 그 잔 인간의 허접쓰레기요, 도둑놈의 심보인 덩굴이요, 찔레요, 쓸모없는 이끼 같은 것들일 거예요. -p41, 2막 2장, 애드리아너
비방이란 놈은 자꾸 새끼를 치는 거예요. 그러다가 아주 자리잡고 누워버린답니다. -p64, 3막 1장, 밸더자
아아, 불쌍한 건 여자예요! 귀가 너무도 여리니까 말예요. 제발 입에 발린 빈말이라도 사랑한다고 곧이듣게 하세요..... 약간 허풍을 떠는 것은 신성한 유희가 되기도 하죠. 달콤한 아침의 숨길이 싸움을 수그러지게 하니까요. -p56, 3막 2장, 루시아너
당신이 더 좋다구요. 오 인어 아가씨, 당신의 노래로 나를 꼬여서 언니의 눈물의 바다 속으로 유인하여 익사하지 않도록 가르쳐 바다의 요정이여, 당신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부르세요. 그러면 내 그 속에 빠질 것이오. 은빛 물결 위에 당신의 황금빛 머리떨를 펼치세요. 난 그것을 침대삼아 눕겠습니다. 거기서 화려한 환상에 묻힌 채 그렇게 죽는다면 저는 여한이 없겠습니다. 사랑은 가벼운 것이라고 하지만 가라앉을 수만 있다면 날 빠져죽게 해주십시오! -p67, 3막 2장, 앤티폴러스(동생)
내 혀가 저주는 하지만 마음으로는 그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거야. -p74, 4막 2장, 애드리아너
상상에 짓눌려 가슴이 빠개지는 것 같다. 상상이란 위안도 주지만 고통을 주기도 하는구나. -p76, 4막 3장, 애드리아너
이러나 저러나 소인은 당나귀 팔자인 걸요-기다란 귀가 말해줍니다. 전 태어날 떄부터 이때까지 나리께 봉사해 왔지만 그 대가로 매만 맞아왔지 뭡니까. 추워할 때에는 덥게 해주었고, 더울 때에는 때려서 덜덜 떨게 해 주었습죠. -p83, 4막 4장, 드로미오(형)
시샘하는 여자의 독기 찬 푸념은 미친 개의 이빨보다도 더 무섭답니다. 부인의 앙칼진 푸념 때문에 남편께서는 잠을 편히 못 잤으니 자연히 머리가 혼미해질 수 밖에요. 식사 때 잔소리로 양념을 쳤다고 했는데, 식사란 불편한 마음으로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는 법입니다. -p99, 5막 1장, 수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