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2세 - 전예원세계문학선 셰익스피어 전집 1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199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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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황금 왕관은 깊은 우물과 같소. 두개의 두레박은 교대로 물을 퍼올리며 빈쪽은 공중 높이 올라가지만 가라앉은 쪽은 눈에 띄지도 않고 물만 가득 차 있소. 밑에 가라앉아 슬픔을 마셔 눈물만 가득 찬 두레박이 나요, 물론 높은 곳에 떠 있는 두레박은 그대고. -p116, 4막 1장, 리처드  

  셰익스피어 역사극 중에서 영국 사극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영국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면, 그의 작품 중에서 쉽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는 작품들이 바로 <리처드 2세>와 같은 영국 사극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리처드 2세는 1377년에서 1399년까지 재위한 플랜태저넷 왕가의 잉글랜드 8번째 왕으로, 이 작품의 다른 주인공인 랭카스터 공작 고온트의 존의 아들인 헨리 볼링부르크 (헤리포드 공작, 후의 헨리 4세)에 의해서 축출된 인물입니다. 이 작품에서 볼링부르크가 반란을 일으킨 표면적인 이유는 그의 아버지 고온트의 존이 죽자 리처드 2세가 모든 유산을 몰수해 버린 것에 대한 반발 -은혜로우신 폐하, 신은 신의 것을 되찾기 위해 이곳에 왔을 뿐입니다-로 표현되지만, 실제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다면 리처드 2세의 의회파에 대한 숙청과 추방에 반발한 의회파의 역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작품속에서 리처드 2세의 유산 몰수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등장시키고, 반역이 일어나자 대부분의 리처드의 신하들이 반란군에 투항하고, 민중들이 등을 돌리는 모습을 통해서, 리처드 2세가 통치에서 성공적이지 못한 군주였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입을 통하여 거만한 통치자 -1막에서 볼링부르크를 비난하는 대사 중 "..... 그자가 평민들에게 인사하는 것을 눈여겨 보지 않았던가. 공손하고 친절히 허리를 굽히는 꼴이 마치 그들 가슴 속으로 파고들며 노예들에게까지 경의를 표하고 가난한 기능공들에게도미소를 만들어 보내며 비위를 맞추고...." -였고, '정치와 시의를 맞추지 못'한 군주였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좀더 깊이있게 들여다 보는 방법은 역시 군주였던 리처드 2세의 몰락 과정을 통해서 표현되는 한 인간의 현실적인 권력에서의 몰락뿐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동반되는 인간 내면 와해, 나약함, 부귀의 헛됨 등에 대한 일깨움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 한가지 어느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했던 모습이겠지만, 권력과 시류에 따라 변하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 -하지만 새봄이 왔으니 넌 봄을 따라야 되느니라. 그렇지 않으면 꽃이 피기도 전에 꺽일지 몰라.-과 권력의 주류가 된 사람들에게 굴하지 않는 충직(?)스런 이의 모습- 본인은 신하로서 신하인 여러분에게 신의 뜻에 따라 신이 정하신 왕을 위해 감히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왕이라 칭하는 이 헤리포드 공은 방자한 그의 왕에 대해서는 간악한 역적입니다.-을 그린 장면은 짧지만 강렬하게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입니다.   

  ..... 하늘이 수정처럼 청하하고 맑으면 맑을수록 떠도는 구름은 한층 더 초라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p22, 1막 1장, 볼링부르크  

 태양이 솟아오르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현자에게는 항구요 행복한 안식처다..... 불행이라는 것은 지탱하는 힘이 약해 보일 때 더욱 무겁게 짓누르는 법이니라..... 아무리 미친개같이 으르렁대는 슬픔이라도 그 슬픔을 조롱하며 대수롭지 않는 사람들을 물어뜯지는 못하느니라. -p42-43, 1막 3장, 고온트 

 아, 아무리 꽁꽁 얼어붙은 코카서스의 산을 상상한다고 손에 불을 켤 순 없는일. 진수성찬에 배가 찼다고 상상하는 것으로 에이는 듯한 굶주림을 참을 수 있나요? 모진 삼복더위를 생각한다고 해서 동지 섣달 눈발 속에 얼음장 위를 알몸으로 뒹굴 수가 있나요? ..... 좋은 것을 상상하면 할수록 고초는 더욱 몸에 파고들뿜, 종기는 잔인한 슬픔의 이빨로 물어뜯어 차라리 물고를 내는 편이 낫지 섣불리 손을 대면 더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p43, 1막 3장, 볼링부르크 

 ..... 서산에 기우는 해나 음악의 종장은 단맛도 마지막 한 숟갈이 진짜 꿀맛이듯이 끝판에 가서 가장 아름다운 것. 마지막 순간의 말이야말로 과거의 어느 말보다도 깊이 새겨지는 법..... -p54, 2막 1장, 고온트 

 현자는 앉아서 불행을 한탄하지 않고 비탄의 의연한 뿌리를 의연히 뽑아버리옵니다. 적을 두여워하심은 두려움이 솟아나는 힘을 꺾어버리고 자신을 나약하게 하며 적에게 힘을 보태주는 것입니다. 그런 어리석음은 자신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또한 비겁은 죽음을 부릅니다. 싸운다는 건 죽음 이상의 것이 아니옵니다. 싸우다 죽는 건 죽음으로 죽음을 파멸시키는 것이며, 죽음을 두려워하며 죽음의 노예가 될 뿐이옵니다. -p89, 3막 2장, 칼라일 

 울지마오 아름다운 여인이여, 슬픔과 손을 잡고 나의 최후를 보채지 마오. 오, 착한 님이여, 지난 날의 영화는 일장춘몽이었다고 생각하구려..... -p125-126, 5막 1장, 리처드 

 ..... 음악이 들리는 구나. (음악) 으음! 박자가 맞지 않는다 - 감미로운 음악도 박자가 틀리고 가락이 깨지면 불쾌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이라고 하는 음악도 마찬가지다. 이 옥중에서 조율이 잘 안돼서 화음이 맞지 않는 것들을 가려낼 수 있는 섬세한 청각을 나는 가졌다. 그러나 난 왕으로서 정치와 시의를 맞추지 못하였고 국정의 가락이 흐트러진 것을 인식할 만한 멋진 청각도 없었다. 나는 시간만 낭비했고 이젠 시간이 나의 여생을 낭비하고 있다..... -p145, 5막 5장, 리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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