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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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오 선생, 여러 차례 여러번/ 당신께선 내 돈과 고리에 대하여/ 리알토 안에서 날 꾸짖었지요./ 그래도 난 그걸 묵묵히 떨치며 참았어요/..... /당신은 날 오신자, 무자비한 개라 하고/ 내 유대인 저고리에 가래침을 뱉었는데/ 그 모두가 내 것을 사용하는 대가였죠./ 근데 이젠 내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오./ 아, 그래서 당신은 내게 와서 말하기를/ "샤일록, 돈이 좀 필요하오."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침을 내 수염에 쏟아 놨던 당신께서,/ 이 몸을 낯선 개 내차듯이 문지방 너머로/ 발길질한 당신께서 돈을 간청합니다./ 뭐라고 답할까요? 이런 말은 안 될까요?/ "개가 돈이 있나요? 개가 삼천 다카트를/ 꿔 주는 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아니면/ 몸을 낮게 구부리고 노예 같은 어조로/ 숨소리를 죽이고 겸손하게 속삭이며/ 이렇게 말할까요?/ "선생께선 지난번 수요일 제게 침을 뱉었고/ 어느 날은 저를 발로 찼으며 또 한번은/ 개라고 부르셨죠. 그러한 예우의 대가로/ 이만큼 돈을 빌려 드립니다." 라고요? - 1막 3장 106-130행, 샤일록 

  자신의 수염에 침을 뱉고, 개처럼 내차던 사람이 돈을 빌려 달라고 나타난 장면에서 나오는 샤일록의 이 대사에는 그동안 안토니오와 그의 동료들-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이자 고리대금업자인 자신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한 고발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사를 바로 맞받아치는 안토니오의 대사 -난 너를 다시 한 번 그렇게 부르겠다. 다시 한 번 침을 뱉고 차기도 하겠다. 이 돈을 빌려 줄 거라면 친구에게 빌려 주진 마라. 우정이 그 언제 친구에게 불모의 쇠를 주고 새끼 쳐서 받았더냐? 그보다는 차라리 적에게 빌려 줘라, 그가 만약 어기면 더 편한 얼굴로 벌금을 강제할 수 있을 테니-를 보면 샤일록의 말들이 과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런 갈등의 배경 속에서 샤일록은 안토니오와 '정한 기한에 돈을 되갚지 못할 경우에 벌칙으로 안토니오의 살 일파운드를 도려내겠다'는 계약을 맺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의 눈으로 보면, 상대의 신체에 상해를 가하는 계약의 내용에 문제가 있으므로 이러한 계약 자체가 성립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상해를 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계약 자체는 이 작품 전체를 통해서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됩니다. 결국 안토니오는 배가 파선함으로 인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샤일록은 복수심에 사로잡혀 어떠한 타협안도 거부하고 계약대로 하자고 주장하면서 이야기는 갈등을 향해 치달아 갑니다. 공작과 바사니오 등의 회유와 타협안에도 미동도 않는 샤일록의 굳은 마음은 법정에서 안토니오의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부위로 살 일파운드를 떼어내고자 하고, 안토니오도 체념한 듯 계약을 이행하려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알듯이- 이야기의 반전은 그러한 계약 내용의 문자적인 헛점을 파고드는 포셔의 명철함 속에서 이루어 집니다. 잠깐만 멈추시오, 다른 게 있소이다 - 계약서는 당신에게 피 한 방울 주지 않소. 명시된 문구는 "살덩이 일 파운드"요. 그러니 계약대로 살덩이 일 파운드 가지시오. 하나 그걸 잘라 낼 때 기독교인 핏물을 한 방울만 흘려도 당신 땅과 재물은 베니스 국법에 의하여 베니스 정부로 몰수될 것이오. 언제 읽어도 이 장면에서의 극적 반전은 안토니오의 환호와 샤일록의 당혹감을 생생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법리적으로는 이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피를 흘리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기에 차가운 법의 심장으로 판단한다면 이 판결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고, 상해를 가하고자 하는 계약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파기하는 것이 더 옳을 듯 하지만, 이 작품에 몰입해 있는 독자나 관객의 입장에서는 복수의 일념으로 굳어진 샤일록의 마음과 문자적으로 적시된 살덩이 일 파운드라는 문구의 견고함을 유연하게 헤집고 그 허점을 파고든 포셔의 판결문에 더욱 큰 공감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법리적으로는 명확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분명 문학적으로는 유쾌한 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에는 안토니오와 샤일록의 갈등과 포셔의 개입으로 인한 극적 반전이라는 줄거리 외에도,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우정, 포셔가 남편을 고르는 과정, 바사니오와 포셔의 결혼, 반지를 통한 사랑의 재확인, 샤일록의 딸 제시카와 로렌초와의 사랑 등과 같은 이야기들도 나름의 무게를 가지고 이 작품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면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포셔가 남편을 고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종차별적인 대사,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동성애에 대한 의심, 앞에서 언급한 포셔가 재판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 여부와 판결 내용의 법리적인 타당성 등에 대한 논란이 있는 듯 합니다. 또한 작품 자체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논란으로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유대인이 적어도 법적으로는 영국에 존재할 수가 없었다는 주장과 함께 유대인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차별적인 시각을 반영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주요한 주인공이 되는 샤일록이 자신과 자신의 동족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차별에 대해 정당하게 가질만한 분노를 안토니오와의 계약을 통해서 분출하고 법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분노의 이면에 있을 복수를 위해서 살인마저도 개념치 않겠다는 냉철한 마음에는 결코 공감하거나 동의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안토니오와 그의 동료들을 편드는 감정이 가지는 불편함이 남아 있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분명 살인을 감수하고서라도 복수를 행하겠다는 샤일록의 자세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포샤의 판결 뒤에 더해지는 샤일록의 재산 몰수와 기독교로의 개종에 대한 판결과정, 그리고 판결전에 안토니오를 구하기 위해서 샤일록을 회유하는 바사니오 등의 감정섞인 비난 속에는 자신들이 샤일록을 향해 가했던 횡포(?)에 대한 사과나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고, 오히려 자기 입장의 정당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또 다른 굳어진 마음의 일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남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금궤에는 다음 글이 적혔군요./ "선택하면 다수가 원하는 걸 얻으리라."/ 두 번째 은궤의 약속은 다음과 같군요./ "선택하면 너 자신의 가치만큼 얻으리라."/ 세 번째 둔한 납은 퉁명스레 경고하길/ "선택하면 다 내놓고 위험 감수해야 한다"/.... -p56, 2막 7장, 4-9행, 모로코 왕  

 ..... 그러므로 화려한 금이여,/ 미다스의 굳은 음식, 난 네게 뜻이 없고/ 인간들 사이의 창백한 천한 일꾼/ 네게도 뜻이 없다. 하나 너, 초라한 납이여,/ 무엇을 약속하기보다는 협박하는/ 창백한 네 모습은 웅변보다 더 감동적이다./ 난 이걸 선택한다. 기쁜 결과 있기를! -p77, 3막 2장, 101-107행, 바사니오 

 낚시밥 하지요. - 그게 아무짝에도 쓸모없어도 내 복수에 쓸모가 있을 거요. 그는 날 망신시켰고 내가 오십만 정도를 못 벌게 했으며, 내 손실을 비웃고 이득을 조롱했으며, 내 나라를 모욕하고 내 거래에 훼방을 놓았으며, 내 친구들은 냉담하게 적들은 흥분하게 만들었소. 이유가 뭐냐고요? 내가 유대인이란 겁니다. 유대인은 눈이 없어요? 유대인은 손도 기관도 신체도 감각도 감정도 정열도 없냐고요? 기독교인과 같은 음식 먹고 같은 무기로 상처를 입으며,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방법으로 치유되며, 여름과 겨울에도 같이 덥고 같이 춥지 않느냐고요? 당신들이 우리를 찌르면 피 안 나요? 간지럼을 태우면 안 웃어요? 독약을 먹이면 안 죽어요? 그런데 당신들이 우리에게 잘못하면 우리가 복수를 안 해요? 우리가  나머지 부분에서 당신들과 같다면 그 점도 닮을 거요. 유대인이 기독교인에게 잘못하면 그는 겸손하게 뭘 하지요? 복수하죠. 기독교인이 유대인에게 잘못하면 그는 기독교인을 본받아 인내하며 뭘 해야 하지요? 그야, 복수해야죠. 당신들이 가르쳐 준 비열한 짓을 난 실행할 겁니다. 그리고 어렵긴 하겠지만 교육받은 것보다 더 잘할 겁니다. -p69, 3막 1장, 52-73행, 샤일록 

 욕설로 계약서의 도장을 지울 수 없다면/ 큰소리 쳐 봤자 네 허파만 상하지./ 젊은이여, 불치의 파멸로 안 떨어지려거든/ 머리나 좀 고치게. 난 법을 기다리네. -p103, 4막 1장 140-143행, 샤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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