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 박홍규의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박홍규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대단한 고급 교양물'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만' 취급하는 점에 있다. 적어도 셰익스피어 당시에는 그 작품이 대중물이었고, 지금도 영미권에서는 수많은 영화로 만들어지는 대중물인데,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대중물과 고급물의 차이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임을 주의해야 한다. 말하자면 대중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고급이 아니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 여하튼 셰익스피어가 고급이냐 아니냐는 나의 관심거리가 아니다. 나의 관심은 그의 작품이 대영제국이 시작되는 시기에 씌어졌고, 따라서 당연히 그 제국주의를 표상하는 것이므로 그런 관점에서 셰익스피어를 재검토하자는 것이다. -p31 

 삐딱하게 읽는다는 말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긴 것이 사실이지만, 이 책은 아주 대놓고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을 몰아붙이는 면이 있어서,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또는 영문학이나 문학에 대한 전공자가 아닌 일반적인 독자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자지 못한 사람인지라 저자가 펴는 논지를 무조건 동의만 할 수도, 그렇다고 딱히 정색을 하며 반박할 능력도 없는 묘한 처지를 느끼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셰익스피어 읽기를 삐딱하게 읽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나 자신은 저자보다는 주류의 입장에 더 동화된 한 사람일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564년에서 1616년의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와 그 뒤를 이은 제임스 1세가 다스렸던 시기입니다. 통상적으로 '엘리자베스의 시대' 일컫는 시기로, 정치적으로는 봉건주의 국가에서 절대주의 국가로의 이행 시기였고, 국가적으로는 대영제국이 기반을 잡아가면서 제국주의 시대로 접어드는 즈음이었습니다. 저자는 셰익스피어를 바로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배경하에서 그러한 체제에 순응하며 시대를 읽을 줄 알았던 유능한 대중작가이자 귀족들과 왕실의 비호를 받으면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한 어용작가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평가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위대한 문호라든가, 대단한 문학 작품을 써냈지만 일생의 많은 부분이 감춰진 미스터리한 작가가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에 맞게 처신하며 대중들과 권력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여 작품을 썼던 출세주의자이자 기회주의자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자가 당시 시대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셰익스피어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셰익스피어 작품에 담긴 위대함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밝히고 의견을 나누었던 위대한 셰익스피어 이면에 숨겨진 제국주의 시대를 살다간 제국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였던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고, 그런 관점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속에 담긴 제국주의적인 성향을 풀어놓은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저자가 제국주의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작품들은 '리처드 2세'를 비롯한 사극, '베니스의 상인'과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오델로', '리어왕', '맥베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그리고 '태풍'입니다. 

 제국주의자 셰익스피어. 또는 출세주의자, 기회주의자, 어용작가 등의 표현이 나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귀에 익숙한 표현도, 썩 듣기 좋은 의미도 아닐 뿐더러, 한편으로는 너무 과격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저자 자신이 부분을 너무 침소 봉대한다는 생각도 들 수 있겠고, 자신이 설정한 틀안에서만 셰익스피어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다고만 하는 것에 대해서 이리 조금을 삐딱한 시선을 작정하고 들이대서 읽어보는 것도 셰익스피어의 진정한 모습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우리가 대하는 위대한 셰익스피어는 400여년 전에 실존했던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아닌, 이런 저런 연구와 토론과 각색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셰익스피어임을 인정한다면, 저자와 같은 독자적인 셰익스피어 독법도 결국은 '그의 위대함을 손상하기보다는 그의 위대함을 더 공고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하튼 이 책의 '셰익스피어는 제국자의자'라는 논점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음을 떠나, 대부분의 사람이 '위대하다'고 치켜세우기에 바쁜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을 독자적인 관점에서 읽어내려고 한 저자의 노력에는 큰 박수를 보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모든 인물들은 자기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투의 가식이 많고 부자연스러운 언어로 말하고 있다..... 대사의 처음부터 과장이 엿보인다..... 저자는 그가 묘사하고 있는 사건을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극중 인물에 대해 무관심하기까지 하다. 그는 무대만을 의식하여 극중인물을 만들어냈고, 극중인물들에게 관중의 관심을 끌 말만 시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건이나 인물의 행동 또는 고통을 믿지 않는다. - p23, 톨스토이의 <셰익스피어와 드라마> 중에서 

 그의 많은 희곡은 동화에서 볼 수 있을 만큼의 신뢰성도 없다. 생계의 수단을 제외한 어떤 경우에도 그가 자기 희곡을 진지하게 간주했다는 증거는 없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작품이 기술적으로 완벽하고 미묘한 심리적 관찰로 가득 차 있으며, 일관성 있는 철학에 심오한 사상가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p24,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 중에서 

 내가 상상하는 셰익스피어는 시골의 중산 평민계층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난으로 인해 대학교육도 못 받고 지내다 18세라는 나이로 당시 신분 상승 방법의 하나인 돈 많은 집에 장가를 들었다가, 연기와 글쓰기에 재주가 있어 그것으로 열심히 노력해 출세한 젊은이, 그리고 당대 지배계급인 귀족들에게 잘 보여 당대 최고 인기 작가에까지 올랐다가 만년에 낙향하다 살다가 죽은 사람이다. / 말하자면 그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출세주의자이자 기회주의자였다..... / ..... 나는 그의 예술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해석을 낳은 이유의 근본은 그의 기회주의가 낳은 애매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피비린내 나는 경쟁사회에서 그는 인기를 끌기 위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작품을 써야 했다. 그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작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언제나 진보적인 목소리도 그의 희곡에 담아냈다. 그것도 아주 적당하게 말이다. / 그런데 그의 보수주의의 본질이 제국주의인 점은 모두가 제국주의자였던 당시는 물론,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점이 밝혀져야 한다..... - p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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