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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시대 ㅣ 크로노스 총서 11
프랭크 커모드 지음, 한은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성직자들은 매년 예수의 수난에 일어났던 일들을 그대로 따라 했고 평신도들 역시 자신들이 직접 만든 연극으로 이를 표현했다. 예컨대 성 요한이 그리스도의 의복이 찢어졌다고 선언하면 제단에서 적절한 순간에 리넨천 두 조각이 들춰진다. 그 후 미리 마련된 석관에 그리스도의 성체가 경건하게 안치된다..... 이런 표현 행위는 전문 연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유사 연극의 전통이 이어졌다는 견지에서 주목되어야 한다. 16세기 후반에 이르자 전문 연극인들이 교회의 연극 행위를 흡수하고 대중화했다. 그들은 연극을 정적이고 헌신적인 근원에서 끌어내어 런던의 여인숙과 극장으로 옮겨놓았다. 연극이 상업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전례로 규정되던 세계가 이제 자본과 노동에 좀더 연관이 있는 세계로 대체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전례의 세계에서 시간 자체는 다른 의미를 지녔었다. - p18, <종교개혁과 왕위 계승의 문제> 중에서
영국의 역사에서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튜더 시대 (1456~1603) 말기로부터 '스튜어트 시대' (1603~1688) 초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1564년 4월 23일(?)에 태어나 1616년 4월 23일 사망하였고, 그가 태어나기 6년전인 1558년에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하여 44년간 영국을 통치하였고 1603년 제임스1세가 왕위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지상에서의 52년의 삶의 대부분은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발전해가는 시기였던 엘리자베스 1세의 시대였고, 생애 후반부의 10여년은 제임스 1세 초기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엘리자베스 시대 -이 용어는 편의상 제임스 1세 초까지 망라하기도 한다고 하니-와 동일한 시기로 인식되고는 하는 듯 합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기 약 70여년 전인 1492년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에 도착하면서 신대륙이 발견되었고, 그 이후 100여년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에 의해 식민지가 건설(?) 되던 시기였고, 셰익스피어가 살던 엘리자베스의 시대는 영국과 프랑스로 식민지 건설의 주도권이 옮겨지고 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종교적인 면에서는 공식으로 공표된 영국 국교회에 의해 카톨릭이 억압을 받던 시기였고, 공식적인 결혼을 하지 않은 엘리자베스 1세의 왕위 계승 문제가 제위내내 국가적인 문제가 되고 있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책 제목이 <셰익스피어의 시대>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앞 문단의 간략한 서술은 역사적인 사실들에 대한 서술이기는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시대에 대한 간단한 정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중심을 엘리자베스 1세라는 제왕을 중심으로 그 사회가 움직이던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의미에서 엘리자베스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고, 셰익스피어는 그 시대의 일부로서 그려질 수는 있지만, 중심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제목 <셰익스피어의 시대 The age of Shakespeare>가 암시하는 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즉 저자는 이 책의 주된 흐름을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을 좀더 중심에 놓고 그가 살았던 시대 상황뿐만 아니라, 그가 주변에 끼친 영향이나 그의 작품이 가지는 의미, 인간 관계 등에 대해서 서술하겠다는 의도를 담은 것이라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저자 커머드는 셰익스피어의 런던 입성을 시작으로 작가이자 극장의 소유자로서의 셰익스피어의 여정을 따라가며,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공연 순서에 따라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작품의 사회적 배경과 의미, '당시의 작가와 후원자간의 의존관계', 공연했던 극장이나 무대에 대한 기록 등과 함께 그가 살던 엘리자베스 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연극에 미친 영향들에 대해서도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말하는 셰익스피어의에 대한 많은 부분은 -셰익스피의 작품의 저작 순서에 대한 일치된 의견이 아직 없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실제에 살을 많이 붙인 추론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저자 나름의 합리성을 발휘하여 가장 그럴듯한 경로를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는 하겠지만 사실보다는 저자가 해석한 셰익스피어의 삶과 작품에 대한 견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에 대해 미숙한 독자로서 -특히 셰익스피어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고 그의 작품을 모두 읽고 어느 정도 이해하고있는 독자가 아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분석한 내용들에서 느끼는 어려움이 상당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옮긴이도 언급한 것처럼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이중적이고 여러가지 함의를 담은 것들인 것처럼, 저자 커머드의 서술 방법도 주제에 직접적으로 달려들지 않고 빙빙 돌리는 듯한 경로를 밟기 때문일 듯 싶은데, 한편으로는 자신의 넘치는 지식이나 하고 싶은 말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내 뱉은 결과물은 아닌지 하는 불편한 시선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이 책을 읽는다면, 머리가 좀 아프겠지만 시간을 많이 들여서 세심하게 읽든지, 이해가 될 때까지 여러번 반복해서 읽든지, 아니면 좀더 많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이해의 지평을 넓힌 다음에 느긋하게 읽는 것-개인적으로는 이 방법이 제일 좋을 듯-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