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개의 봄 -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
김기협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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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는 분들에게 읽어달라고 책으로 내면서 이것 하나만은 꼭 강조하고 싶다. 가까운 사람끼리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괴로움도 함께 나눈다는 사실. 운명이 주는 괴로움은 아끼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가장 통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운명에 대한 원망이 아끼는 사람에 대한 원망으로 모습을 바꿔서 나타나기 쉬운 것이다. 어떤 고통 앞에서도 주어지 인연을 등지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 p11, <엄마찾아 60년> 중에서 

 노년에 이르러 쓰러진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병간호하는, 역시 노년에 이르러가는 아들 사이의 훈훈한 이야기..... 처음 책소개를 보면서, 저자가 역사학자라는 사실에 따라붙는 여러 기대는 차치하고, 딱 그 정도 만큼만 바랐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도 노년에 이른 부모를 둔 자식으로서, 마음 속에서 마저 흐려져가는 부모에 대한 자식된 도리를 조금이나마 다잡을 수 있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를 효자가 못된다고 되뇌이면서, 그리고 살아온 동안 어머니와의 갈등을 숨기지 않으면서, 저자는그렇게 쓰러진 어머니가 조금씩 회복해 가는 과정을 담아 주변 사람들에게 읽혔던 글을 이리 책으로 엮어 미지의 독자들에게 내보이고 있습니다. 기력을 회복하고, 식욕이 좀더 늘고, 말을 좀더 조리있게 하고, 농담과 욕을 섞어 교감하기 시작하고..... 아들의 글에는 노년의 어머니가 보이는 이런 작은 변화와 회복에도 감사할 줄 알고 감탄할 줄도 아는 순전함과 훈훈함이 담겨 있습니다.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저자의 어머니를 향한 그런 순전함과 함께, 병원에 모신 어머니를 미련스럽게 찾아가는 아들의 또 하루의 기대를 담았던 발걸음이 먼저 눈앞에 밟히기도 합니다. 요즈음 같은 시대에 많은 이들은 좋은 시설에 부모를 모시는 것만으로도, 자식으로서의 짐을 덜어 버리는데..... 분명 저자의 간병 모습은 요즈음의 세태를 돌아보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물질에 앞서는 가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자식된 도리에 대해서 소홀하게 생각하며 살았던 것들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합니다.

  '가족', 저자의 생각처럼 너무 가깝기 때문에 언제든지 스스럼없이 손내밀고 도움을 요청하고 감싸안을 수 있는 울타리이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누구보다 더 싸우고 갈등을 일으키는 아픔을 담은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운명이 주는 괴로움을 가장 통렬하게 함께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거기에서 오는 원망과 갈등도 고스란히 서로 짊어져야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의 간병의 시작도 바로 그런 어머니와의 갈등과 원망이라는 바탕에서 시작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쓰러지고 간병이 시작된 뒤로 씌여진 글들에는 그러한 갈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갈등이, 서운함이 있었다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노모에게 자신의 도움과 관심과 사랑이 필요함을 잘 아는 자식에겐 지난 날에 담겨 흘러가는 그런 감정은 중요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갈등에 대한 기억들이 노모를 더 이해하고 감쌀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하니, 좀 과한 표현일지 몰라도, 노모가 쓰러진 것은 이 두 모자가 화해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하늘이 준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몸으로 부대끼며 적은 2년여의 일기속에 담긴 저자와 노모가 나눈 시시콜콜한(?) 대화와 교감의 모습은 삶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늙어서도 생생하게 피어오를 수 있는 삶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런 모습은 다른 어떤 거창한 생각이나 사상보다도 더 가슴에 가득 차오르는 벅찬 감정을 느끼게 만듭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섬세한 섬김을 통해 화해와 사랑을 담아놓은 이 책속에, 저자의 마음속에 박혀있는 따가운 가시가 언뜻언뜻 느껴지는 내용이 여과없이 함께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나 자신의 정치관에 대한 강단있는 표현은 그나마 저자의 개성에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2010년 4월 22일 일기의 처음 페이지에 담긴 모병원에 대한 감정을 정화시키지 않은 표현 -예를 들면 '년놈들'-은 이 책이 담은 내용과는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불편함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는 그야말로 시병일기로서만 머물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알지 못하는 미지의 독자들까지를 대상으로 하여 출간되는 것이라면 표현이 좀더 순화되거나 에둘러서 표현하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단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습니다. 불쾌했던 대우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거친(?) 표현의 이면에서는 독자에 대한 배려없음도 함께 느껴지기도 하고, 훈훈한 인간적인 정과 사랑을 담은 책 전체 내용에 대한 불편한 시선마저 문득 일게 된다면 너무 과한 반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출판과정에서 걸러져야 했을 문제일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욕을 들어야 했던 '년놈'들만이 아니라 무심코 읽던 '분'들 중에도 기분좋게 넘어가지 못한 이들이 있을테니 말입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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