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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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참으로 드문 환영을 보았어. 꿈을 꾸었는데, 인간의 머리로는 그게 무슨 꿈인지 말 못해. 그 꿈을 설명하려 든다면 인간은 나귀 같은 바보일 뿐이야. 내 생각엔 내가 - 누구도 그게 뭔지 말 못해. 내 생각엔 내가 그리고 내 생각엔 내게 - 하지만 인간은 얼룩옷 입은 바보일 뿐이야, 내게 있던 걸 말해 주려 한다면 말이야. 내 꿈이 뭐였는지는 인간의 눈으로 듣지도, 인간의 귀로 보지도, 인간의 손으로 맛볼 수도, 혀로 이해할 수도, 마음으로 말할 수도 없어. 피터 퀸스에게 이 꿈으로 가요 하나를 짓도록 해야겠어. 제목은 '바틈의 꿈'이 될 거야, 왜냐하면 거기에 바틈은 없으니까..... 4막 1장, 203~215행, '바틈'의 대사 중에서  

 문득 장자의 호접몽을 생각하게 하는 4막에서의 바틈의 대사를 보면서, 이 연극에서 가장 꿈다운 꿈을 꾼 인물이 바로 바틈이라는 생각에 듭니다. 나귀의 머리를 하고서도-요정 퍽의 장난에 의한 것- 우연에 의한 것이지만, 요정의 여왕 타타니아의 사랑을 받게 되었으니, 불행이라기 보다는 행복한 시간이었고, 정말로 꿈같은 밤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숲속에서의 꿈같은 하룻밤을 통해서 맺어지는 허미아와 라이샌더, 헬레나와 드미트리우스는 요정의 왕 오베론과 퍽의 실수-또는 간섭-으로 인해서 실제 사랑하는 대상이 바뀌는 관계의 변화를 경험하지만, 결국은 테세우스와 히폴리타의 결혼식에 초청되어 함께 결혼식을 올리고 위태롭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들의 사랑이 숲속에서의 혼란스런 꿈을 낳았고 그 꿈은 더 아름다운 현실을 낳았다고 할 수 있으니, 그들은 꿈같은 현실을 경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타타니아의 사랑을 받은 바틈은 그야말로 신비로운 사랑의 약초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었던 일장춘몽을 꾼 셈입니다. 진짜 바틈은 없고, 나귀 머리를 한 꿈속의 바틈과 현실 속에서는 영원히 사라져버린 타타니아와 요정들이 만들어 낸 '바틈의 꿈'......  그것은 현실에서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꿈같은 이야기라서 꿈같은 노래 가락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나마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바틈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꿈과 현실이 서로를 넘나드는 이야기의 전개 속에서 아마도 셰익스피어가 말하고자 했던 것 중의 하나는 우리가 겪는 사랑의 여러 모습과 실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바틈과 그 동료들이 테세우스의 결혼식에서 보여주기 위해 연습했던 '피라무스와 디스비'-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와 비슷한-의 이야기 같은 비극적인 사랑,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떠나서까지 사랑을 이루려고 한 허미아와 라이샌더의 사랑, 변심한 드미트리우스를 떠나지 못하고 그 주위를 맴도는 헬레나의 사랑, 드미트리우스에게 비굴할 정도로 사랑을 호소하는 헬레나의 모습을 보고 정상적인 사랑을 이루어 주겠다고 나서는 요정의 왕 오베론 식의 사랑, 신비한 약초 또는 큐피드의 화살로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나귀 바틈과 타타니아 사이의 꿈같은 사랑 등..... 많은 사람들은 바틈의 꿈같은 사랑보다는 허미아와 라이샌더의 강렬한 사랑을 부러워하겠지만, 그러한 사랑 안에도 아픔이 담겨 있을 수 있음을, 오베론의 숲속에서의 하룻 밤사이의 배신과 악몽을 통해서 멋지게 표현한 것은 아닐는지..... 아뭏든 연극은 요정의 숲속에서 겪은 꿈같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바틈은 바틈대로,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그들대로, 그리고 헬레나는 또 그녀대로, 이런 저런 모습으로 만족스럽게 마무리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즐겁게 웃을 수 있는 멋진 이야기입니다.  

 강력한 상상력은 속임수가 뛰어나서 / 그 어떤 기쁨을 감지만 하여도 / 그 기쁨의 원인이나 제공자를 떠올리오. / 또는 밤에 무언가가 두렵다고 상상하면 / 덤불은 얼마나 쉽사리 곰으로 보입니까! - 5막 1장, 18~22행, 테세우스 

 저희 그림자들이 언짢으셨다면 / 이러한 영상들이 보였을 때 / 잠들어 있었을 뿐이라고 / 생각만 고치시면 다 괜찮죠. / 그리고 가볍고 시시하며 / 꿈처럼 헛것 같은 이 주제를 / 나무라지 마십시오, 여러분. - 5막 1장, 422~428행,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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