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일기 - 절망의 수용소에서 쓴 웃음과 희망의 일기
조반니노 과레스키 지음, 윤소영 옮김 / 막내집게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  결국 나는 나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보다 낫거나 못한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이 전쟁에 말려들었다. 처음에는 독일의 동맹군인 이탈리아 군인이었지만, 마지막에는 독일군의 이탈리아 포로가 되어 버렸다. 1943년에는 영국군과 미군이 우리 집을 폭격하더니, 1945년에는 그들이 수용소에서 나를 풀어주고 깡통 우유와 통조림 수프를 선물로 주었다. 이게내 이야기의 전부이다. 흔해빠진 이야기 속에서, 나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 떨어진 개암 껍데기 같은 존재였다. 아무런 훈장이나 메달도 없이 전쟁에서 돌아왔지만, 나는 승리자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이 소용돌이를 헤쳐 나왔으니까.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친구인 나 자신을 재발견했으니까 말이다. -p9-10, <사용설명서> 중에서 

 조반니노 과레스끼의 <신부님, 우리 신부님> 시리즈나 <까칠한 가족>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 만의 독특한 유머와 웃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접하면서도, 비록 수용소에서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그런 기발한 웃음과 유머를 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자연스럽게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보여준 저자의 기질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도 같다는 성급한 기대가 앞서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역시나, 현실을 억누르는 수용소에서의 절망적인 상황은 자유로움이 보장되는 현실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하고, 또한 그 안에서 살아남는 다른 방식을 터득하도록 만드나 봅니다. 배고픔과 고립과 절망,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를 곁에 두고 살면서도 삶을 긍정하는 자세를 결코 잃지 않으려고 웃음과 유머를 찾고 있지만, 그런 삶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독자의 입장에서도 그러한 이야기 뒤에 담긴 어두움의 흔적들이 느껴지니 말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아무런 전리품도 없이 자신이 있어야 할 삶의 자리로 돌아왔지만, 절망속에서도 결코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더 소중한 자신을 찾은 승리자'의 모습을 독자로서 함께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다른 작품에서 우리에게 주었던 웃음과 즐거움보다 더 의미있는 것들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충분히 보고 느낄 만한 도량이 되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1945년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집에 돌아와서, 1943년 9월부터 1945년 4월까지 독일군의 포로 수용소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 공책에 '자신이 했던 일과 하지 못했던 일, 그리고 보고 생각한 모든 것'을 적은 방대한 메모에 살을 붙여 정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저자는 '하지만 그때 정리한 원본과 그 복사본을 모두 난로에 던져버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메모 일부를 그대로 정리한 것이 이 책이라면서 있는 그대로의 기록을 책으로 펴낼 수 있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 모습 속에서 작가로서의 저자의 고집스러운 면을 느끼게 됩니다. 처음 썼던 정리된 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저자는 자신의 삶의 어둡고 절망스런 순간을 헤쳐 나왔던 기록의 생생함에 더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대하는 독자의 자세는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자신과 동료들은 결코 짐승처럼 살지 않았다고, 야만의 현장에서 자신들은 문명을 세우고 민주주의를 건설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저자의 자부심의 근원에 한발 더 다가서서, 삶을 긍정하고 희망을 키우는 노력들에 박수를 보내고 자신의 삶의 일부로 기꺼이 받아들여보고자 하는 공감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배고파! 배고프다고! 나는 배가 고파!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소망들과 아침 풍경에, 내 위장이 품고 있는 소망과 아침 풍경이 더해진다.'-p79 / '시간의 흐름, 삶, 죽음, 저 철조망 너머 세상에서는 이 모든 것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길가 한 귀퉁이에 버려진 것만 같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이미 멀어져 도저히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p90 / '최소한의 음식과 담배꽁초로 이루어진 비참하고 의미없는 이런 날들 속에서 유일하고 활동적이고, 유일하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꿈일 것이다. 꿈을 꾸어야 한다. 꿈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잊고 있는 가치를 재발견하고, 몰랐던 가치를 찾아내고,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 미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p68/ '그들이 사흘에 한 번씩 쥐여주는 감자 몇 알에는 이제 벌레처럼 축축하고 잿빛이 도는 긴 싹이 나 있다. 봄이 왔나보다'-p67.... / '하지만 진리는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발견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 힘으로 생각하고, 의식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을 위해 생각해주고, 어떻게 자유로워져야 하는지 가르쳐줄 사람을 찾아봐야 소용없다...... 자갈길에서 튀어나온 돌멩이처럼, 집단적인 공동 사고에서 벗어나 개개인이 자기 안에서 양심을 찾아야 한 다. 그리고 도덕적 개념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그들이 하는 모든 말을 당신 자신이 지닌 의식의 체로 걸러내어 각각의 거짓을 가려내고, 진리를 찾아내야만 한다.'-p167-168 

 배고픔절망 속에서 을 잃지 않고 희망의 싹을 키우기 위해, 그리고 진리를 찾아 진정한 자유로움에 도달하기 위해, 내면의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가장 내밀한 이야기..... 바로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아무런 꾸밈없이 민낯으로 독자에게 다가서며 안겨주는 삶의 진짜 모습입니다. 저자가 겪은 18개월의 삶은, 똑같지는 않겠지만, 우리도 언젠가 한번쯤은 삶의 모퉁이에서 만나게 될,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놀라서 뒤로 물러설지도 모를 그런 악몽의 일부는 아닐는지..... 하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꿈과 희망, 진리와 자유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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