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미오와 줄리엣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 이러한 두 원수의 숙명적인 몸에서/ 별들이 훼방 놓은 두 연인이 태어났고/ 그들은 불운하고 불쌍하게 파멸하여/ 부모들의 싸움을 죽음으로 묻었도다./ 죽음표가 붙은 이 사랑의 두려운 여정과/ 계속되는 부모들의 격렬한 분노를/ 자식들의 최후밖엔 아무것도 못막는데.... -머리말/해설자
1599년에 출판된 제2사절판의 표지 제목으로 쓰였다는 '참으로 빼어나고 구슬픈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은 아마도 이 극을 읽거나 본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구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극의 처음에 해설자가 등장하여 읊는 머리말에 담긴 내용대로 원수의 집안이라는 숙명을 품에 안고 태어난 로미오와 줄리엣은, 별들의 훼방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마음의 열정과 영혼의 순전함을 다 불사르고자 하지만, 두 가문의 싸움속에서 발생하는 불운에 떠밀려서 불쌍하게 파멸하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두 가문의 원한은 화해의 악수로 바뀌게 되고, 두 사람의 사랑 또한 지고지순한 사랑의 본으로 우러러 보이게 되지만, 이 극을 대하는 독자 또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마음 한 구석에 사랑의 아련한 아픔이 남겨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감정일 것 같습니다. 빼어나고 아름답지만 구슬픈, 맑고 순수하지만 슬픔에 닿아있는 그러한 느낌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또한 그에 열광하게 만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아마도 그러한 감정은, 두 연인의 죽음이 없었다면, 죽음에 이르는 기대와 절망의 과정이 없었다면, 그리고 두 집안의 원한에 찬 적대적인 행위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마음 속에 생겨나지 못하고 말았을 것일지도 모르는 것들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극속에 담긴 아이러니는 저자가 해설을 통해서 역설하는 사랑의 '모순어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갓 열세 살이 되는 소녀와 그보다 많아야 두세 살이 위였을 소년의 사랑. 현대인의 시선으로 굳이 그들의 나이를 통해서 이 극의 전개과정을 되짚는다면 철부지들의 불장난 정도로 취급될 수도 있을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 순수한 사랑의 원형이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현실에서 이루어 보고픈 모델이 되었습니다. 친구 머큐쇼를 죽음으로 내몬 티볼트에 대한 성급한 결투와 살인, 줄리엣의 죽음의 소식에 신중하지 못하고 자살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로미오의 모습이 미숙한 젊은이의 감정 조절 실패라고 책망되지 않고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평가되고, 첫 눈에 반해 아무런 조건없이 사랑에 빠져 그 사랑을 지키려고 죽음도 불사하는 줄리엣의 모습을 세상 경험이 일천한 열세 살 꼬마 숙녀의 맹목적인 사랑으로 폄하하지 않고 순수한 사랑의 원형으로 우러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현실에서는 가질 수도, 이룰 수도 없는 사랑의 모습이기 때문은 아닐는지..... 정말로 줄리엣처럼 부모의 강력한 권유를 무시하고 파리스와 같은 멋진 신사를 내치고 첫사랑을 지키려던 사람의 이야기가 가끔씩은 들려오기도 하고, 자신의 사랑을 죽음으로 증명하려 한 젊은이의 이야기도 가끔씩 회자되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꿈으로만 담겨 있는 바람이기 때문인 것은 아닐는지..... 냉정하고 삭막한 평가처럼 보이지만, 정말로 많은 사람들은 현실로 돌아오면 그들의 사랑을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들의 철없는 사랑 이야기쯤으로 치부하지는 않을는지..... 하지만 다른 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요. 그들의 사랑을 아름답고 빼어난 구슬픈 이야기로 부르는 것에는.....
사랑의 가벼운 날개로 벽을 날아 넘었죠. 돌로 지은 장애물은 사랑은 못 내치고, 사랑은 할 수 있는 일이면 과감히 하니까요. -로미오, 2막 2장
오, 로미오, 로미오, 왜 그대는 로미오 인가요?.... -줄리엣, 2막 2장
아낌없는 내 마음을 바다처럼 끝이 없고, 사랑 또한 같이 깊어 더 많이 줄수록 더 많이 생겨나요. -줄리엣, 2막 2장
애통은 사랑의 표시지만, 지나치면 언제나 지각없단 표시란다. -캐풀렛 부인, 3막 5장
이 금은 네 것이다. 네가 아니 팔려했던 시시한 이 약보다 영혼에겐 더 나쁜 독이고 더 많은 살인을 이 역겨운 세상에 저지르지. 내가 독을 판 것이지, 넌 내게 판 게 없어..... 자, 독이 아닌 치료제여, 줄리엣의 무덤으로 함께가자. -로미오, 5막 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