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베이컨을 식탁으로 가져왔을까 - 인류의 기원과 여성의 탄생
J. M. 애도배시오 외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극복해야 하는 인식 중 하나는, 전 세계적으로 천편일률적인 가부장제가 작심하고 여성들을 억압했다는 것이다. 수천 년 전 또는 수백만 년 전의 세상을 돌아보면, 남자도 여자도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눈이 멀어 있었기 때문에 실상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야 우리가 알게 된 또 하나의 확고한 사실은 여성과 여자가 인류의 등장과 성공을 이끈 동력으로서 남자보다 훨씬 중요했다고 할 수는 없을망정 남자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기록 속에서 여자들의 흔적을 찾아내려는 최근의 노력을 통해 고고학이 거둔 또 하나의 성과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남녀가 영원한 전쟁을 벌이면서도 서로를 받아들이고 협력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였다는 점이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p222 <결론: 결국 보이지 않는 성이 아니다> 중에서 

 알로 사우루스나 티라노 사우루스가 지구상에 존재하던 시절에, 가죽을 두른 인간이 공룡들 틈을 헤치고 다니며 동물들을 사냥하고, 무시무시한 공룡들을 혼내주기까지 하는 영웅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나 책을 아이들과 재미있게 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교양있는 어른들은 없을 것입니다. 지질학적인 근거에 의하면 공룡의 시대에는 아직 인류의 조그마한 흔적도 존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포유류의 존재도 아주 초기의 특징을 지닌 몇몇 종류가 있었을 뿐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일 수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인간은 영화나 이야기 속에서는 공룡과 함께 살며 그들을 지배하기까지는 않았더라도 그들에 억눌려 살지 않은 영웅적인 인간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즐기곤 합니다. 이것은 두뇌의 용량이 커지고 문명을 가꾸어온 인간의 놀라운 능력 덕분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들은 인간의 그러한 어처구니(?)없는 상상력이 선사시대 인류의 이야기 속에서도 사실인 것처럼 발휘되어 있다고 지적합니다. 돌로 만든 도구들이나 취락의 흔적 등 고고학적인 발굴을 통해서 만들어진 이야기들 속에도, 사실적인 설명을 담은 이야기보다는 공룡시대의 인간들의 이야기처럼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그럴법한 이야기들이 견고하게 그 자리를 차지하며 사실인 양 전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러한 이야기 속에는, 그때에도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겠지만, 능동적이고 활력있는 여성의 모습은 결코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현실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됩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창과 횃불을 든 남자들이 매머드에게 달려들어 골짜기로 몰아가서 혼란에 빠뜨리고 용감하게 달려들어 창으로 찔러 몇마리를 사냥하여 성대한 축제를 벌이는 이야기나 사냥한 먹이를 먹고있는 4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곰에게 달려들어 창으로 찌르며 집단으로 사냥을 하는 모습, 동굴 등의 은밀한 장소에 남자들 만이 모여 성인식을 거행하는 이야기. 저자들은 선사시대의 대표적인 모습을 그린 이러한 이야기 속에 여성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거나 단순히 고기를 소비하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더 나아가 이 이야기들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매머드의 뼈로 촌락을 형성한 집단의 유적지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사냥에 의한 것인지 다른 이유로 죽은 매머드를 이용한 것인지 불확실한 것이고 그러한 유적지가 일반적인 것도 아니라는 점, 아무리 용감했더라도 거대한 곰에게 돌로 만든 창을 들고 달려드는 사냥꾼의 이야기는 가소롭기 그지없어 보이는 것으로 그러한 곰에게 발견되지 않으려고 온갖 잔꾀를 부리며 숨어다니는 인간을 생각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는 것, 남자들만의 동굴 의식을 가졌다거나 여자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여자와 아이와 노인들이 철저히 배제되고, 용감한 사냥꾼과 남자들, 거대한 사냥감 만이 존재하는 모습으로 선사시대의 이야기가 왜곡된 가장 큰 이유로 남성들 만의 영역으로 자리잡아 왔던 고고학계의 전통을 들고 있습니다. 철저히 남자들이 관장하며, 서로 토론을 하고, 해석을 달아서 발표하는 과정에서 가부장적인 편견과 영웅적인 인간에 대한 상상력이 동원되고 그 외의 모든 것 합리적인 설명들은 외면당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남성 중심적인 고고학적인 설명들에 반하여 저자들은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기원에서 시작하여 지구의 전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여성이 담당했을 법한 개연성 있는 추론과 여러 유적지에서 여자들이 수행하는 역할의 근거가 될만한 썩기 쉬운 유물들-끈과 섬유조직, 바구니의 흔적 등-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통해서 좀더 객관적인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이야기들 속에는 남자들에게 끈이나 옷감 등을 만들어 주고, 그물을 만들어 작은 동물들을 집단으로 사냥하는 데 남성들과 함께 참여하는 여성들, 여성의 뇌의 특징을 바탕으로 언어의 탄생에 '어머니의 말'이 기여했을 가능성, 농업의 시초가 되었을 식물재배의 시작에 여성들이 관여했을 개연성 등에 대한 추론이 들어있습니다. 결국 저자들의 설명은 헐리우드 식의 영웅적인 남성들의 선사시대 이야기를 좀 더 섬세한 여성적인 시각으로 재구성해 낸 실제에 더 가까울 법한 선사시대의 일상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들의 이야기를 고려하면, 지금까지의 고고학이 말하는 선사시대의 이야기 속에 제대로된 역할을 감당하는 여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먼저는 지금까지의 고고학이라는 학문분야가 대부분 남성들의 차지였고, 그러한 성적인 불균형으로 인해, 농업혁명이 시작되고 나서 형성되고 강화되어온 가부장적인 시각이 자연스럽게 고고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 되어, 유물을 발굴하고 그에 근거한 이야기를 만드는데 여성의 존재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는데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쉽게 발견되는 돌이나 뼈 등으로 만든 썩지 않은 물건들에 집중한 나머지, 식물의 줄기 등으로 만든 좀더 쉽게 썩고 남겨지기 어려운 유물들의 흔적에 대해서는 미처 관심을 가지지도 못하고 등한시 함으로 인해 여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을 법한 영역이 거의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었다는 점도 여성들이 선사시대의 이야기 속에서 숨겨진 이유중의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생물학적인 여자의 존재에 더하여, 사회적으로 고정되고 남성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되는 현대적인 의미의 젠더로서의 여성의 성역할이 농업의 발달로 집단생활이 가능해지고 경제적인 부의 축적이 시작된 뒤로 나타난 것이기에, 그 이전의 선사시대의 생활 속에서는 생물학적인 여자의 모습과 역할은 분명 존재했지만,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젠더로서의 여성의 모습이 명확하게 존재한 적이 없었을 것이라는 부분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도 제대로 된 여성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생각하여, 우리에게 지금까지 은연중에 덧씌워진 편견에서 벗어나 이 책을 대한다면, 저자들이 주장하는 여자들이 '인간의 사회성이 유례가 없을 만큼 크게 발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매우 유용한 도구들-끈 혁명 등-을 발명했고, 식량을 구하는 데에도 똑같이 기여했으며, 언어의 발달을 거의 확실히 주도했고, 농업을 창조해냈'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은 자연스런 사실처럼 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로 좀더 많은 유물들에 대한 공정한 연구들이 더해진다면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 등장하는 세상을 힘으로 지배하는 영웅적인 남성들의 이야기가 아닌 '지상에 살면서 사랑하고, 사냥하고, 식량을 구하고, 언어를 배우고, 요리하고, 바느질하고, 건물을 짓고, 신화적인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연극을 하고, 웃고, 병들고, 다치고,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종교를 발명(?)했던.... 아주 다양한 사람들 -젊은이, 노인, 여자, 남자, 용사, 겁쟁이, 몽상가, 실천가-'이 등장하는 훨씬 가족적인 이야기가 완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창들고 매머드를 쫒던 영웅적인 용사들의 이야기보다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서로의 힘을 보태고 살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은 부분을 메꾸고 있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분명 그것이 더 진실에 가까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저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선사시대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탐구는 영웅적인 남성들에 밀려나 있던 그 나머지를 이루고 있던 아이와 노인과 여자들을 포함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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