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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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원사에서의 동안거 기간 동안의 선방 생활을 기록한 이 책이 우연찮게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책 소개를 보면서 언젠가 들은 듯한 기억 저편의 어렴풋한 그림자가 친근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 읽어보았던 책은 아닌데..... 어디선가 소개하는 글을 읽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아니면 나의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막연한 기억의 장난일 수도 있겠습니다. 겨울 세 달여 동안의 선방생활을 스물 세편으로 엮어낸 글들은, 우리 역사와 문화의 굵은 한 뿌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불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바이지만, 실제 내용보다는 표면적인 외양만을 조금 알고 있는 내게는 상당히 색다른 세계를 보여 주었습니다. 잠시 들러 대웅전을 둘러보고 주변의 국보나 보물 등의 문화재를 찾아보고 나면 사찰의 중요한 것은 다 보았다고 생각하며 되돌아 나오던 내가, 사찰 안에서의 스님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해탈, 성불, 열반, 그리고 그러한 각성의 길에 들어서고 도를 이루기 위해서 정진하는 스님들의 생활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도 감각도 느낌도 없이 막연한 신비(?)로움 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저자의  글을 통해서 소개되는 선방의 생활을 들여다 보면서 문득 그들의 삶의 감추인 단면들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됩니다. 그런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화두'를 붙들고 추상같은 의지로 고행의 시간을 채워가는 모습들 중간중간에 끼어드는 스님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들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구도자로서의 깊은 사색과 성찰을 이루고자 수행의 시간을 갖는 스님들의 노력을 깍아내리지는 않는 것은 그들의 중심에 있는 수행을 통한 각성과 구도에의 의지를 온연히 느끼고 인정하기 때문이겠지요. 세상의 아무런 장식이나 꾸밈도 없이 세상에 온 그대로의 모습으로 구도의 길을 나선 그들의 모습은, 바쁜 일상 속에서 조용함을 찾으며 가끔씩 우리가 바라던 모습의 한조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나서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모습이지만, 읽는 이의 내면에 세속에 물들지 않은 신선한 바람 한줄기 스쳐가게 만들어 잠든 내면을 흔들어 깨우기에 충분한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지전능하다는 신을 동경하고 메시아 재림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런 시일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은 자유 없는 꼭두각시에 불과합니다. 절대자의 괴뢰, 신의 노예, 그러한 천국이 있다면 차라리 나는 고통스러워도 자유로운 지옥을 택하겠습니다. 그러한 극락이 있다면 나는 차라리 도망쳐 나와 끝없는 업고의 길을 배회하렵니다." -p110-  

 나를 비롯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책의 말미에 나오는 위의 저자의 언급이 상당한 걸림이 되는 구절일 것 같습니다.  '전지전능하다는 신을 동경하고 메시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다른 말이 곧 '크리스챤'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을 터이니 말입니다.  물론 동료 스님과의 열반에 대한 이야기 중에 불자로서 불자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지만, 저자의 기독교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와 완고한 판단이 느껴지는 부분이기에 마음에 상당히 걸리는 구절이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행과 구도의 결과물로 얻어지는 해탈이나 자유로움을 이야기한다면 분명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꼭두각시로 보일 수 있겠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리 안에서의 은혜와 자유를 인정한다면 불교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들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쓸데없이 자기 의를 세우는 헛된 노력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상대의 종교와 가치관에 대한 열린 마음과 관심, 배려가 없이 오로지 자신의 교리에만 눈멀었을 때의 모습이, 얼마전의 젊은 기독인들이 물의를 일으켰던 봉은사 땅밟기와 같은 사건,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테러, 종교에 의한 살인이나 인종청소 등의 모습일 것입니다. 종교에서의 교리란 상대에게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부처님은 자비를 이야기 하셨고, 예수님은 사랑을 선포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서로에게 먼저 앞세워야 할 것은 자비와 사랑 안에서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포용이 아닐까 합니다. 정치계와 불교계의 갈등이 깊어가고, 대통령의 종교로 인해 그러한 갈등이 불교와 기독교의 갈등으로 여겨지는 현재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내 것을 주장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한 우리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위의 구절이 더욱더 안타깝게 여겨지는 시간입니다. 물론 이러한 언급은 책의 전체 내용과는 큰 상관이 없는 지극히 지엽적인 부분이기는 하나, 종교와 종교의 마주봄이라는 관점에서는 아마도 이 책 전부보다도 더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에서 붙여보는 사족같은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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