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을 입은 원시인 - 진화심리학으로 바라본 인간의 비이성과 원시 논리
행크 데이비스 지음, 김소희 옮김 / 지와사랑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양복을 입은 원시인'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책의 주된 논점은 현대인들이 과학의 발전으로 다양한 풍요를 누리면서도 삶의 중요한 부분에서는 여전히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미신이나 근거없는 믿음, 종교 등을 떨쳐내버리지 못하고 그 영향력 아래서 삶의 평온함을 구걸(?)하고 있다는 주장에서 시작합니다. 인류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 진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외모와 내면을 모두 갖추게 되었지만, 발전한 현대의 과학적 성취나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 인간 내면의 부적응이 고스란히 남아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신을 이야기하고, 종교적인 믿음의 중요성을 굳게 신봉하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점을 치거나 기도를 올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저자는 원시인류가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던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기 위해서 발전시킨 내적인 메카니즘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그것을 '원시 논리'라고 정의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특정한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거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외부의 힘에 의해 일어났다고 믿고 자동적으로 그 인과관계를 탐지하려는 자세, 심리학에서 인지적 지름길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발견법 (Heuristics)', 둥근 지구를 우리의 지각이 편평하게 느끼는 것과 같은 어쩔 수 없는 지각의 오류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 일상적인 언어생활이나 삶속에 숨어있는 미신의 흔적 - 어려운 일에서 벗어났을 때 무심코 내뱉는 '신이여 감사합니다' 등-, 출판계를 강타했던 '시크릿' 열풍 등이 저자가 열거하는 '우리 안의 원시 논리'의 모습들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그러한 원시 논리의 영향으로 인한 우리 삶의 사소한 왜곡에서 전쟁에 이르기까지, 원시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폐해를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방법에 대한 교육과 회의주의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사람들이 가지는 모든 사물을 의인화 시키는 경향이나 우리에게 인기를 얻은 공상과학소설이나 영화,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가지고 있는 창조 신화 등을 우리 안에 내재한 원시 논리의 영향아래 나타난 자연스런 그늘이라고 말하는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먼저는 저자 자신이 독자 서문에서 언급한 '진화 심리학'이고,  그 다음은 진화론을 근간으로 하는 '과학주의', 그리고 좀더 범위를 확장한다면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과 종교를 비롯해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해 낼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미신 또는 비합리적인 것, 원시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자세는 분명 세상을 물질로만 이루어진 곳으로 판단하고, 과학을 통해서 그 모든 것을 설명해 낼 수 있다는 확신속에, 심리학에 진화라는 관점을 도입해서 실증적인 과학의 뼈대를 구축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현대 과학이 인간의 뇌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밝혀내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인간의 마음이나 신의 영역에 대한 것들까지 어느정도 과학적인 설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하는 글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저자의 그러한 모습은 과학 또는 자신이 말하는 진화 심리학에 대한 자신감 또는 당당함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원시 논리에 사로잡힌 현대인에 대한 설명과 그것을 극복해야만 하는 것으로 주장하는 관점에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목적성이 없다는 것, 즉 고유한 인격체로서의 존재 의미가 없다는 것도 함께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영혼과 정신, 신과 초자연적인 능력 등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것들은 미신적인 믿음 또는 원시적인 인간의 잔재일 뿐이라는 주장에는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의미를 느끼는 스토리를 빼버리고, 무미건조한 물질의 덩어리만 남겨 놓는 것과 같습니다. 저자도 인정하듯이 이러한 주장의 바탕위에 본성을 뛰어넘고 원시논리를 극복하라는 설득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유와 설명을 찾고 자신에게 닥친 행운과 불행에 대한 초자연적인 설명을 구하려는 인간 본성에 확연히 역행하는 것이기에, 여기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과 인간 본성이 가장 강렬하게 충돌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러한 충돌의 가장 심대한 싸움터는 창조론과 무신론이 맞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다른 미신이나 현상들도 원시 논리의 범주에 넣어서 설명하고는 있지만,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미신이라고 지적하며 극복하기를 주장하는 부분은 종교와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리처드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무신론을 주창하는 책들의 뒤를 잇고 있다고 감히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의 원시논리에 대한 주장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도 있고, 원시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간이 성공적으로 생존해 있다는 점이나 저자가 주장하는 인간의 합리성과 이성에 대한 믿음의 과학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의문이 남는 것이 사실이지만, 독자로서 느끼는 가장 큰 논점은 저자의 주장이 자연적이거나 물리적인 현상자체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존재에 대한 목적론적인 접근을 배제하고 과학주의에 입각한 유물론적인 인간관에 근거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다는 사실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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