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오천축국전 - 혜초, 천축 다섯 나라를 순례하다
혜초 지음, 지안 옮김 / 불광출판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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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의 스님 혜초가 법을 구하기 위하여 천축의 다섯 나라와 중앙 아시아, 그리고 아랍을 여행한 시기가 8세기라고 합니다. 기간은 4년여가 걸린 것으로 보고 있으며, 처음 출발한 뱃길 여행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여행은 도보로 하는 순례의 길이었을 것입니다. 현재의 더 나은 교통편과 숙박 등의 여건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지역을 4년여에 걸쳐서 순례한다는 것, 또는 4년이 아니라 며칠 만에 스님 혜초가 돌아보았던 지역을 현대적인 방식의 여행 수단을 통해서 동일하게 여행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 시기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오로지 불법을 얻기 위해 나서서 순례의 길을 마무리한 것은 분명 대단한 용기와 각오, 그리고 인내의 시간들을 쌓아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사 시간의 초반에 우리 대부분은 불교의 전래에 대해서 배우고, 원효와 의상대사에 대해서 배우고, 또 하나 불교와 관련해서 빠지지 않는 부분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었습니다. 내용을 알지는 못했지만, 그 시기에 인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그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는 자체가 배우는 입장에서는 멋있어 보이고 흥미롭게 여겨졌던 기억입니다. 배울 당시에는 그런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었지 그 내용이 무엇인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가르치던 선생님들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았고 찾아서 읽어보라 권하던 이도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늦게나마 이리 관심이 생겨 손에 들고 읽는 <왕오천축국전>은 학생때 제목만 듣고서 느꼈던 그런 경이로움을 주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지내온 순례의 길을 너무도 간결하고 담담하게 기록한 내용은 자신의 여행에 대한 단순한 기록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도 만듭니다.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이리저리 꾸미기 보다는 자신이 보고 들을 것을 성실히 옮겨 적은 기록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이런 저런 여행서가 가지고 있는 독특함과 색깔들을 생각한다면 초라하게도 느껴질 수 있겠지만, 혜초 스님은 자신의 여행을 나라의 위치와 국가의 문화나 풍속, 왕의 권력, 불교의 번성 유무, 대/소승 불교의 번성 유무 등에 대한 틀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만 치고 본다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혜초 스님이 그 몇줄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몇날 며칠을 더위 또는 추위속에,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노상을 헤매고 되돌아가는 고행의 시간을 거쳐야 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 기록 한 글자, 한 글자에는 단순히 책상 앞에서 써내려 간 화려한 문장이 가지지 못할 삶의 이면을 담고 있음을 기억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또 한 가지, 이 기록이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레오에 의해서 돈황의 막고굴에서 발견되었고, <일체경음의>의 혜초전에 수록된 단어와 일치하는 단어가 있는 것을 근거로 <왕오천축국전>이라고 추정하기에 이른 것인라고 하는데, 실제 <일체경음의>에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상/중/하권으로 나누어 실려 있고, <일체경음의>에 설명된 단어 중에서 이 필사본에 나오는 것이 17개 정도라고 하니, 적어도 우리가 지금 읽는, 그리고 한편으로는 너무 단순한 기록이라고 실망하기도 하는 이 기록이 <왕오천축국전>의 온전한 내용이라기 보다는 극히 일부이거나 그보다는 전체 내용을 축약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한다면 더 방대한 원본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고, 간단한 축약본만 보고서 미리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시대에 몸을 아끼지 않고 법을 구하기 위해 천축을 찾아 나서는 고행을 마다하지 않았던 스님 혜초의 용기와 삶에 대해서 더 집중하며 읽어 내려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달밤의 고향 길 바라보니 / 뜬 구름만 흩날리며 돌아가고 있네. / 편지라도 써서 구름 편에 부치고 싶건만 / 바람이 급해 구름은 돌아보지도 않는구나. /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는데 / 남의 나라 땅 서쪽 모퉁이에 와 그리워하네. / 더운 남쪽 천축은 기러기도 없으니 / 누가 고향의 숲을 향해 날아가려나. 

月夜瞻鄕路 浮雲颯颯歸 (월야첨향로 부운삽삽귀), 緘書參去便 風急不聽廻 (함서참거편 풍급부청회), 我國天岸北 他邦地角西 (아국천안북 타방지각서), 日南無有雁 誰爲向林飛 (일남무유안 수위향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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