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법칙 민음사 모던 클래식 35
러셀 뱅크스 지음, 안명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 그건 아마도 내 모습이 아니었을까. 로즈 자매와 아이맨과, 플래츠버그의 스쿨버스 안에서 그들을 사랑하게 되고, 그 후에 개미 농장과 아캄퐁의 밭에서 아이맨과 지낸 날들을 통해 자신과 인생에 대해 배운 그 모든 것들이 없었다면 말이다. 건장한 악당 브루스 역시 내가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세이블의 불속에서 나를 구하려다 죽었고 그것 역시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사랑하겠다고 선택한 사람들은 세상에 오직 이 세 사람뿐이었는데, 모두 내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날 아침 모베이에서 마지막으로 러스를 본 날, 나는 귀여운 로즈 자매와 아이맨과 브루스가 내게 큰 재산을 남겨 주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나는 그 재산을 야금야금 꺼내 쓰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p470 

 이야기의 마지막에, 자신을 찾아 자메이카에 온 친구 러스가 이브닝스타라는 여인의 유혹에 끌려 그녀의 저택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는 독백입니다. 겉은 번지르하지만 뒤로는 아동 포르노를 만드는 일을 하던 버스터 브라운으로부터 구해서 집으로 돌려보낸 연약한 여자아이 로즈, 거친 폭주족이었지만 불길 속에서 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던 악당(?) 브루스, 그리고 방황의 끝에 갈 곳 없는 본을 보살피고 지켜보면서 혼자 설 수 있도록 인도했던 아이맨..... 본이 사랑한다는 세 사람은 모두가 세상에서 연약하거나 어두운 구석에 몰려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데 본은 자신의 방황의 끝에서 친아버지의 연인이었던 이브닝스타의 물질적, 성적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가기 위해 굳은 발걸음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그 세 사람 덕분이라고, 그들이 함께하는 동안에 보여주었던 삶에서 배운 것들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도, 자신의 친부모나 할머니도, 번지르한 옷을 입고 달변을 자랑하던 버스터 브라운 같은 사람이나 대학까지 다녔다고 하면서도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삶을 침식당하고 만 리처드나 제임스 형제와 같이 세상의 양지에 조금 더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포르노 제작자의 손에 이끌려 다니며 혹사 당하였지만 본에게 맑은 영혼의 밑바닥을 열어 보여 주었던 어린 소녀, 거칠게 세상을 대하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당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은 인간애를 보여주었던 폭주족 대장 브루스, 그리고 자메이카에서 이주 노동자로 미국으로 건너와 대열에서 이탈하여 버려진 스쿨버스에서 숨어지내지만 세상을 외면하지도 다른 사람을 억지로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고 함께 동행해 주었던 아이맨과 같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을 음지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이 방황에 마침표를 찍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평생 되새기며 살아갈 수 있는 재산을 남겨 주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모나 주위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의도하고 만들어 놓은 삶이 아닌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된 것..... 아마도 그런 종류의 깨달음을 본은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거리에서 생활하면서 얻은 삶의 법칙으로서 말입니다.  

 물론 자신의 삶을 세상의 음습한 곳으로 직접 끌고 간 것은 본 자신이지만, 그를 그러한 나락으로 밀어 넣은 이들 중 하나는 그를 가장 잘 이해하고 품어 안았어야 할 그의 어머니였고, 십대의 어린 영혼에 결정적인 생채기를 낸 것은 어머니의 새 남편인 그의 양아버지입니다. 본이 반항적인 아이가 되고 마약을 마다하지 않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양아버지 켄의 성적학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겉으로 보이는 본의 생활태도는 누가 봐도 불량스런 청소년이었고,  그의 가족은 그런 주인공을 이해하거나 그 방황의 이면을 보듬어 주려는 따뜻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겉모습대로 그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행은 아이러니하게도 버스터 브라운 같은 사람을 통해서 겉모습의 허황됨을 비웃고, 본이 사랑한다는 세 사람을 통해서 겉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필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는 것은 본이 아이맨을 따라 자메이카로 건너가서 자신의 친아버지를 만난 뒤에도 여실히 증명됩니다. 거대한 저택과 물질적 풍요와 여유로움을 가진 이브닝스타와 그의 손님들이 보여주는 삶과 마약과 여자에 취해서 사는 친아버지의 모습은 육체안에 지탱되어 있어야 할 내면세계가 붕괴된 사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본은 자신이 일하게 된 요트의 손님으로 온 부부의 아이 조시와 레이첼의 모습에서 자신의 독특한 영혼의 색깔을 잃고 어른들의 소유물이 되어버린 듯한 아이들의 삶을 느끼면서 비로소 자신이 집을 나와 길거리를 헤매면서 배운 소중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늘의 별들 속에 로즈 자매 별자리, 사자와 아이맨 자리, 그리고 브루스를 위한 애디론댁 아이언 자리를 그려 만들고, 그 별들이 지는 것을 바라보며 행복해 합니다. '아무리 두렵고 당황스런 상황에 처하더라도..... 밤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세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기'에, '그러면 가슴은 ... 그들에 대한 사랑으로 부풀어 오르고... 더 강해지고 ... 정신은 더 맑아질 것'이기에.....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을 때, 아이맨에게 물어서..... 자신이 원하는 전부'인 '본, 네게 달렸어'라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기에..... 

 '본, 네게 달렸어', 아이맨을 기억하며 본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결국 삶의 어느 순간에는 이러한 이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세상의 어두운 뒷골목과 낮게 여겨지는 곳을 헤맨 본이 별을 보며 그러한 깨달음을 완성하지만, 본이 보트에서 가엾게 여기며 바라보았던 조시와 레이첼도 그들만의 삶의 모퉁이 어디에선가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청소년기의 방황을 주인공 본처럼 거리를 헤매며 겪는 이들도 있겠지만, 더 많은 아이들은 학교와 집을 오가면서 겉보기에는 조용하게 보내고 있을 것이고, 그런 아이들의 모습은 본이 보기에는 아마도 조시나 레이첼과 비슷해 보이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게는 그러한 주인공의 시선에 대한 불편함이 몇몇 어두운 부분과 함께 이 소설에 대해 명쾌하게 모두를 공감할 수는 없는 이유가 되는 듯 합니다. 삶을 단련하고 긍정할 수 있는 건강함은 어두운 곳의 이면에도 숨어 있겠지만 대낮처럼 밝다고 생각되는 곳에도 무궁히 담겨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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