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전쟁 - 생명 연구의 최전선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윌리엄 F. 루미스 지음, 조은경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생명과학 그 중에서도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국민들 대부분은 황우석 박사 사건이 먼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세계에서 최초로 염색체가 제거된 사람의 난자에 체세포의 핵을 투입해서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발표가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국민 대다수는 다른 선진국에 앞서서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서 첨단을 걷게 되었다는 사실에, 불치병이 곧 치료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그러한 성공이 가져올 경제적인 이익이 어떤 것인가 등에 대해서 열광하였으니까요. 사건의 결말은 엉뚱하게도 논문이 조작되었고 우리 대부분은 백일몽 속에서 몇 개월을 헤메었다는 허망함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낯설기만 하던 난자에 체세포를 집어넣는 기술에 대해서, 그리고 줄기세포와 그것을 이용한 질병의 치료 등에 대해서 이해하고 어려운 용어들을 사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지식의 이해못지 않게 우리들에게 일어난 더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지닌 몇몇 도덕적인 문제들이 지적되었다는 것과 그러한 면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을 일깨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이란 것이 단순히 남들보다 기술 경쟁에 앞서서 막대한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는 수단이 아니고, 그에 대한 연구는 모든 면에서 도덕적,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난자와 정자의 조작이나 유전자 조작 등 생명 현상에 대해 인위적인 조작을 가할 때는 생명의 가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한계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는 사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윤리적, 도덕적 또는 정치적인 면에서의 생명 현상에 대한 논란을 논하는 책은 아닙니다. 생물학자의 입장에서 순전히 생물학적인 관점-개인적으로는 도덕이나 윤리, 정치적인 생각이 배제된 순전한 생물학적인 관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라도 생물학적 사실에 근거한 관점이라는 의미-에서 생명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그러한 생명에 대한 현대의 조작, 그리고 생명의 미래에 대해서까지 저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생명공학 및 유전학 등의 발전으로 생명체에 대한 이해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각종 생식세포나 유전자에 대한 조작, 생명의 발생과정에 대한 인위적인 관여가 가능해진 현대에 이르러서는 낙태나 안락사, 인공수정과 같은 문제 외에도 배아줄기세포, 유전자 치료, 유전자 조작 식물에 대한 논란이 있고, 결국 언젠가는 인간복제라는 문제도 논란거리가 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1장에서 4장까지에서 저자는 생명의 가치, 인공수정, 배아줄기세포, 유전자 조작 및 인간 게놈 정보 등, 생물학의 첨단분야에서 야기되는 생명윤리에 대한 논란들을 생물학적인 사실들에 근거한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앞부분의 4개의 장이 이 책이 가진 장점을 가장 잘 드러낸 부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후의 5장의 '사회생물학', 6장의 '의식'과 뇌, 사고와 기억, 7장의 '생명들의 사회학적 게임'에 대한 부분은 아무래도 지금까지 생물학이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접해보지 못해 낯설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과도한 주제의 확장으로 인해 산만함, 또는 단편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8장의 '생명의 기원에서 인간의 진화까지'의 내용은 진화론이 생명의 탄생에서 현재까지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불완전하거나 추측에 의한 부분들까지도 완벽하게 사실처럼 -아직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이어서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있어 불편함마저 느껴집니다. 9장의 '소멸할 것인가 생존할 것인가'에서는 생물학자의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인류공동체를 위한 생물학을 이용한 생활개선, 지구 오염과 인구 팽창에 대한 위기감의 표현과 이에 대한 대책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세계 인구를 현재의 1/3 수준으로까지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인구 증가가 가져온 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짚어보게 하는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극단적이라거나 공허(?)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느낌은 지구 오염과 인구 팽창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저자만큼의 혜안이 없기에 순전히 한 개인의 느낌으로 치부할 수 밖에 없겠지만..... - 

 낙태나 안락사 문제는 아직도 우리 사회의 중요한 논쟁거리 중의 하나입니다. 정답을 말할 수 없는 문제이고, 한편으로는 여러 특별한 각각의 상황이 존재하기에 하나의 대답을 만들기가 힘든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생명에 대한 생물학적인 사실들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이러한 문제에 접근한다면 좀더 나은 논쟁을 할 수가 있고, 또한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여유와 설득하기 위한 기회를 더 가질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한 배아줄기세포, 유전자 치료, 인간게놈의 활용, 인류의 지속을 위한 미래의 계획에 이르기까지 많은 논쟁의 현장에도 종교적인 신념이나 윤리 도덕적 판단,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기위한 정치적인 판단에 이르기까지 올바른 판단을 위한 근저에는 기본적으로 생물학적인 사실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언급하는 생명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은 매우 유용하고도 도움이 되는 것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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