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 신의 존재에 관한 한 과학자의 견해 사이언스 클래식 16
칼 세이건 지음, 박중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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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에 대한 넓은 지식과 혜안을 담은 저술들로 일반인들에게 다른 여느 유명 과학자 못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인기를 얻은 저자의 능력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이 책을 읽는 시간 내내 마음 한쪽에 들어앉아있는 불편함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과학적 탐구의 여정을 통해서 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면밀하게 따져본다면 저자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자라는 생각을,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신의 존재나 종교의 역할이라는 것은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의미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자는 이 우주를 지탱하고 물리학적인 현상들이 유지되는 세상의 배후에 있는 단순한 법칙이라는 의미를 신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은 그 존재를 인정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독교나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인격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창조물들의 세상에 간섭하는 신의 존재는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물리법칙들은 증명이 가능하지만 종교에서 주장하는 그리고 그 신을 믿는 사람들이 체험하는 그런 신의 존재는 다른 이들에게는 동일하게 증명되지 않는 주관적인 것들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자가 화학물질들이 그러한 종교적인 체험들과 비슷한 경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그러한 종교적인 체험이라는 것은 단지 일상적이지 않은 -또는 비정상적인- 자극이나 반응의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적어도 과학자로서 그리고 그러한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저술들로 일반인들을 과학의 세계로 인도한 사람으로서의 관점에서 저자는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개념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물론 완곡한 어법으로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존재에 대한 어떤 과학적인 증거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은 그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려해 보지 않았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1985년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자연 신학에 대한 기퍼드 강연'의 기록을 엮은 이 책은 저자의 이력에 어울릴만하게 우주에 대한 지금까지의 축적된 방대한 과학적인 사실들을 통해서 신과 인간의 존재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강연을 통해서 광대한 우주와 그 안에 담긴 우리 은하계와 태양계, 그리고 그 방대한 세계에서 밝고 푸른 작은 점에 불과한 지구위에 하찮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대한 생명을 지탱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자각을 통해서 창조와 신의 존재, 우리의 존재의 이유와 의미에 대한 한 과학자로서의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펼치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인으로서의 견해가 아닌 철저하게 관찰과 증명가능한 과학적 사실들에 입각한 관점에서 그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런 관점에서의 신의 존재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종교가 말하는 그런 신의 증거는 우주 어느 구석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의 관점은 철저히 과학적인 것들에 입각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철저히 물질적인 면을 고수한다는 점도 지적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7강의 종교적 경험에 대한 강의 내용에서 언급한 종교적 체험과 약물 등을 사용한 경험의 유사성에 대한 이야기나 심령술이나 영혼, 정신세계에 대한 언급을 보면 그 모든 것을 물질적인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거나 물질적인 증거가 없는 주관적인 의견에 불과하므로 과학적으로 논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여과없이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곧 과학이 다룰 수 있는 물질적으로 설명 가능한 것으로 논의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광활한 우주와 그 안에 담긴 별들을 보면서 경이를 느끼지만 그것이 우주 자체의 광활함과 그 체계를 유지하는 법칙들의 정교함 그리고 우리 지구와 생명으로서의 인간 자신에 대한 미미함 등에 대한 느낌으로서의 경이로움이지 그러한 천지만물을 만든 존재, 그러한 것들의 운행을 간섭하는 존재, 그리고 지구의 인간들에게 인격적인 교재를 원하는 그러한 존재에 대한 피조물로서의 경이로움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세시대까지 서양에서는 종교가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했고, 모든 사람이 그 권위에 복종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되려고 했던 종교는 그에 반하는 명백한 과학적인 사실들이 확인되면서 세상을 설명하는 권위있는 자리를 과학에 물려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가 말하는 우주론은 그냥 신화 취급을 하지만 과학이 발견해서 발표하는 블랙홀이니 우주의 팽창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신뢰의 눈길을 보내며 경이롭게 받아들입니다. 저자가 말한대로 누가 보더라도 확연하게 증명되고 설명될 수 있는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지지가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중세에 종교가 과학을 말살하려고 하였듯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역으로 과학이 종교를 반박하고 그 중심에 있는 신의 존재에 대한 공격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과학적인 입장에서 저자처럼 신의 존재에 대해서 수긍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에 대한 신 -하나님-의 계시를 특별계시와 자연계시로 나누어 설명하곤 합니다. 성경이라는 경전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을 특별계시라고 하고 우리 주위의 자연계를 통해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경이로움 등에 담긴 것이 바로 자연계시입니다.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이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행했던 '기퍼드 강연'은 바로 자연계시를 통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명사들의 강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으로 보아 저자는 자연계시라는 측면에서 종교인들이 말하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신은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지점에서 과학지식을 어느 지점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신앙인으로서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과학이 말하는 많은 부분들이 분명 타당한 부분들이 있고, 과학의 탐구 분야가 넓어질수록 종교가 말할 수 있는 부분들은 더 좁아질 것이고, 한편으로는 창조론에 이은 지적설계론이 종교에 대한 과학의 이러한 공격에 대항하는 것은 알지만, 철저한 과학자와 종교인 사이에는 서로 논쟁하기에는 좀더 근원적인 관점의 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학이 '왜'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는가? 또는 과학적 방법론이 신의 존재를 탐구할 수 있는 것인가? 중세의 종교가 그러했듯이 앞으로는 과학이 모든 것들 설명할 수 있다는 권위를 내세우며 그러한 권위를 인간사의 모든 면에서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의 질문에 종교와 과학이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다는 것, 사물과 세상을 다루는 관점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과학이 무척이나 성공적인 방법론이기는 하지만, 다른 여러 가능성들을 희생하면서 이룩한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성공적인 체계화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가능성의 의미는 진화론에서 인간이나 영장류가 손가락이 여덟개나 열두개가 아닌 열개를 가진 존재로 진화했다는 사실에 담긴 그러한 의미에서의 가능성의 의미와 과학이 오로지 물질적인 것, 측정 가능한 것 등 만을 탐구영역으로 삼아 발전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종교에서 말하는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 등의 영역에서는 아직까지 의미있는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의미에서의 여러 가능성 중 물질적인 세계에 대한 하나의 성공적인 체계화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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