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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29
알레산드로 보파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비스코비츠와 그의 여자 친구 -또는 부인- 리우바, 그리고 친구 로페즈, 페트로빅, 주코틱과 라라가 등장하는 스무편의 짧은 이야기..... 하지만 이 소설에는 형식과 전개 방식에서의 뚜렷한 특색이 있습니다. 기존의 소설이 일반적으로 고정된 등장인물 -때와 장소에 따라 여러 사람이 번갈아 등장할 수도 있겠고, 반드시 주인공이 사람이 아닐수도 있지만^^- 에 대한 시간과 공간 또는 심리적인 변화 등을 기반으로 형성된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반면에,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비스코비츠와 그의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유지되는 것은 이름과 이야기에 등장하는 역할의 중요함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 이야기에 등장하던 비스코비츠는 뒤따르는 이야기에서는 더 이상 앞에서 언급된 비스코비츠가 아니고 그의 동료들도 더 이상 앞 이야기의 그들이 아니니까요. 처음에 비스코비츠는 겨울잠쥐로 등장해서 들쥐로서의 꿈과 욕망을 간직하며 살아가지만, 뒤따르는 이야기에서는 느림보 달팽이로, 그리고 이어서는 사마귀와 되새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어 가며 등장하고..... 마지막에서는 세균에서 진화해서 완성된 동물로 등장하기에 이릅니다. 스무편의 이야기에 스무가지의 동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비스코비츠는 일관된 정체성을 가진 존재라기 보다는 자신의 모습이 된 각각의 동물의 생태에 얽매이고 충실하게 적응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사마귀로 태어난 이야기에서는 사랑의 결말로 여느 수컷 사마귀처럼 암컷에게 잡아먹히고, 되새가 된 이야기에서는 결혼하기 위해서 집을 만들고 결혼해서 알 -새끼-을 가지게 되지만 뻐꾸기에게 당하는 모습으로, 상어로 등장한 이야기에서는 자식에게 잡아먹히고, 전갈로 등장한 이야기에서는 꼬리와 집게로 살생을 밥먹듯이 저지르는 독곤충의 모습 등 각각의 동물의 생태에 충실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자웅이체 번식을 거부하고 자웅동체 번식을 이루어내는 달팽이, 자신의 약점을 권력을 잡기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개미, 춤을 통해 부와 권력을 거머쥐는 돼지, 재산을 모으고 권력을 탐하는 쇠똥구리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 등에서는 동물의 생태를 따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생태(?)를 그대로 옮긴듯 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구성의 특이함과 이야기들의 독립성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들을 한권의 소설로 다 읽고 책장을 덮는 순간, 스무개의 이야기를 읽은 혼란스러움보다는 무언가 이야기들의 일관된 주제를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 개인적인 느낌만은 아닐것 같습니다. 이솝 우화를 읽고 뭔가 교훈적인 가르침을 얻었다는 듯한 느낌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분명 의인화된 동물을 통해서 눈에 보이게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우화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동물들에 대한 매우 세밀한 생태를 표현했다는 사실감으로 인한 호소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만, 그 부분도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수는 있겠지만 뭔가 그럴 듯하다는 느낌의 본질은 아닐 것 같습니다.....
..... "장하구나, 너는 이제 동물이다. 하지만 아직 네게는 배울 게 남아있단다." "....?" "죽음이다, 비스코." "농담하지 마세요." "이제 너는 병원체가 아니다, 비스코. 동물은 죽는단다." "잠깐..... 모든 걸..... 단념하는 건가요?" "그래, 모든 것을."..... 세균에서 시작하여 동물로 진화하여 진짜 생명의 시작에 대한 기대를 품는 순간, 비스코비츠에게 어떤 목소리는 '너는 동물이고 아직 배울게 남았는데, 그것은 바로 동물은 죽는다는 것, 모든 것을 단념해야 하는 순간이 닥칠 것이라는 사실'임을 가르치며 이야기는 끝나고 있습니다. 황홀한 사랑을 꿈꾸던 겨울잠쥐 비스코비츠도, 자웅동체의 사랑을 이룬 달팽이 비스코비츠도, 부와 권력을 이룬 돼지 비스코비츠도, 되새와 상어와 사마귀와 쇠똥구리의 모습을 가졌던 비스코비츠도 결국을 죽는다는 것, 죽음이란 결국 후손을 통해 하나의 종으로서의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는 하겠지만 개체로서의 단절, 자신의 능력으로 어찌하고자하는 모든 욕심과 행위와 의도를 단념하고 태어났던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에 대한 이러한 일깨움은, 땅 위 한구석을 차지하며 살 수 있었던 생명체로서의 의미와 한계를 깨닫고 감사하고 겸허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우는 것은 아닐는지..... 여러 동물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비스코비치를 통해서 표현된 우리의 일상속에 담긴 다양한 삶의 모습과 '결국 죽는다'는 마지막의 대화속에 담긴 일깨움을 통해서 마주하게 되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철학적이기도 한 '난 누구일까?'라는 의문은 작가가 비스코비츠를 통해서 우리에게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 한데 네 이야기를 읽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구지?' .....' 비스코비치! 난 누구일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