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가격 - 뇌를 충동질하는 최저가격의 불편한 진실
엘렌 러펠 셸 지음, 정준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얼마 전까지도 우리나라의 할인마트 간의 최저가격 경쟁이 여기저기 요란스럽게 회자되던 기억이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뭔가 꺼림칙함이 있기(?)는 하지만 여하튼 더 싼 가격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한 지역에 대형 마트가 들어설 때면 어김없이 지역 중소상인들의 몰락이 논쟁거리가 되고는 하지만, 일단 들어서고 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싼 가격에 여러가지 물품을 한꺼번에 구입할 수 있는 대형할인마트가 더 편리하고 저렴하여 발길을 그리로 돌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같은 값이면 가까운 가게를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확연한 가격차이를 느끼게 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당연히 싼 가격을 찾아서 조금 더 시간이 드는 것도, 카트를 밀며 일일이 물건을 찾아다녀야 하는 불편함도 개의치 않고 대형할인마트를 찾아 갑니다..... 옛말에 '싼 게 비지떡'이라고는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과일이나 야채 등의 몇몇 상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상품이 똑같은 모양의 똑같은 회사 제품들로 보이기에, 반드시 싼 것이 비지떡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말이 부분적으로는 사실일지 몰라도, 적어도 '가격대비 만족도'라는 측면에서는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우리가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대형할인점이나 이제는 일상화 된 백화점들의 세일 등이 하나도 문제가 되지는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로 보일 뿐..... 하지만, 문제점의 하나는 우리가 항상 소비자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시작되는 듯 합니다. 소비자로서 행세하기 위해서는 돈을 마련해야 하는 노동자이고, 자신이 사는 지역이 경제적으로 탄탄하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한 지역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하고,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노력한 것에 합당한 대접을 받으며 사회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한 가족의 부모 또는 자식이기도 하다는 데에서, 더 저렴하게 물품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좋은 일인 것만은 아니라는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틈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렴한 가격에 이끌려 사는 우리의  모습이,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싸게 산 물품을 허망하게 버리게 되는 것에서 끝난다면 다행이겠지만, 단지 물품 하나를 버리는 식의 단순한 문제가 아닌, 훨씬더 심각하고 치유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지적과 문제의식, 그리고 그러한 현대의 경제구조와 소비문화에 대한 위기감..... 바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노동자이기도 사회와 가족의 구성원이기도 하다는 사실과 우리의 그러한 위치가 싼 가격의 물품들이 공급되는 현재의 경제구조와 맞물려 어떻게 몰락하고 있는지에 대한, 어찌보면 냉정하고 섬뜩함을 담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에서의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단순히 상품하나로 끝나는 문제가 아닌 한 개인의 삶 자체를 헐값의 노동자로,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 넣을 뿐 아니라,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음을 저자는 냉정하게 짚어나가고 있습니다. 

 포드는 자신의 자동차 공장에서 자동화와 분업화를 통해서 대량생산에 성공하면서 더 저렴한 가격의 자동차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공을 통하여 자신의 직원들이 자신이 만든 자동차나 주위의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물건을 구입할 수 있을 만한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의 저렴한 가격은 분명 소비자이자 노동자이기도 하고 한 사회의 구성원이자 한 가족의 구성원이기도 한 우리들에게 긍정적인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싼 게 비지떡'인 경우가 아니라 '창조적인 혁신'의 경우에 해당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사회에 만연해 있는 저렴한 가격에는 이러한 창조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합니다. 현대의 저렴한 가격은 세계화를 통한 저렴한 노동력의 공급, 물류 수단의 발달, 대량 구매와 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 등에 기인합니다. 물류 기술의 발달은 어디에서 물건을 만들든지 저렴한 가격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곧 지구상 어느 곳에선가는 더 싼 가격에 물건을 공급할 수 있는 노동력을 찾아내어 생산시설을 그리고 옮길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저임금 근로자의 등장은 당연히 소비여력을 가진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 근로자의 입지를 악화시키고, 더 낮은 임금이나 더 열악한 근무환경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한 대량생산과 대량구매는 물건값을 싸게 할 수는 있지만, 생산자나 제조자보다는 유통업자 -대형마트나 할인점-에게 가격의 결정권을 행사하게 만들어, 결국 가격에 밀려 물품의 질을 보장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육류나 곡식, 채소 등의 대량 생산에는 전염병의 발생과 항생제 또는 농약의 무분별한 사용, 노폐물의 발생 및 영세농의 몰락, 과도한 정부 보조금의 지급 등의 또 다른 문제들을 내포하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저렴한 가격이라는 유혹 속에는 우리 삶을 안보이게 갉아먹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포드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자동차를 가질 수 있는 창조적 혁신을 선물했지만, 현대의 저렴한 가격은 그것에 취한 소비자들에게 더 열악한 노동을 강요하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저렴한 가격..... 이 책을 읽노라면 분명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이득'이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손실'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렴한 가격의 한 근간이 된 세계화의 의미는 다른 곳에서는 더 싼 가격에 비슷한 제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과 우리가 경쟁해야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생산수단을 소유하거나 유통조직을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몇몇은 천문학적인 부자가 될 수 있지만,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은 더 빈곤해지고 열악해 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결국 '싼 것'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나와 우리 지역사회가 결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고, 우리 후손들의 밝은 미래를 이야기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책을 읽고서 저렴한 가격에 대해 치뤄야 할 대가를 생각하고 현실에서 톡톡히 치르고 있음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대형 할인마트를 찾아 나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같은 진열대의 저렴한 가격 상품에 마냥 유혹되지 않고, 적정한 가격의 적정한 품질을 지닌 물품에 눈길을 한 번 더 주고 그런 제품의 가치를 이젠 인정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멀리 내다본다면 더 큰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저렴한 가격을 찾아나서는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복잡하게 얽힌 듯한 이 문제의 해결의 시작점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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