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바르지 못하다', '공평하지 못하다', '의롭지 못하다' 등등... 우리가 일상 생활가운데 수시로 내뱉는 이러한 말 속에는 '정의롭지 못하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정의(正義; Justice)'에 대해서 정의(定義)를 내려보라고 한다면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나름대로 생각의 틀안에 정의로움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판단 기준을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자신들이 겪는 일이나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의 대부분에서 그것이 바르거나 공평하거나 의롭거나 그렇지 못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반응할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판단이나 결론이 서로 일치하지 못하기도 하고, 옳고 그름 등의 판단자체를 내리기가 애매한 좀더 교묘한 딜레마 상태의 경우에는  스스로 내리는 판단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면을 생각한다면 또한 각자 나름대로 형성한 사고의 틀이 엉성하기 그지없는 면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도 만듭니다.  

 플로리다에 허리케인 찰리가 지나간 뒤에 발생한 가격폭리, 구제금융의 여파속에서 천문학적인 상여금을 챙킨 AIG 등의 탐욕(?), 그리고 사고실험으로 제안한 '철로에서 일하는 다섯 인부를 살리기 위해 다른 쪽에서 일하는 한 인부를 희생시킬 수 있는가'와 '다섯 인부를 살리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는 눈앞의 한 사람을 철로로 밀어서 기차를 멈추게 할 수 있는가' 등의 물음을 통해서 저자는 자유와 행복, 미덕이라는 측면에서의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가격폭리나 구제금융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바르지 못하다고 말하겠지만 그 사건들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의해서 -관점이 자유에 바탕을 두는가 아니면 행복 극대화나 미덕에 바탕을 두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를 수도 있음을 설명합니다. 물론 철로에서 일하는 인부들에 대한 사고 실험도 세가지 관점에 따라서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자가 언급하는 정의를 이해하는 세가지 방식은 첫째, 정의란 행복을 극대화하는데 있다는 공리주의, 둘째, 정의란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란 사상에 바탕을 둔 자유방임주의와 평등주의, 셋째, 정의는 미덕 그리고 좋은 삶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입장입니다. 저자는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러한 입장들의 주된 논점과 장단점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존 롤스까지 여러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을 통해서 정의에 대한 고민을 담은 다양한 상황을 생각하고 체험하게 만듭니다.  

 '어떤 이는 정의란 공리나 행복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선택은 자유시장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행하는 선택일 수도 있고(자유시장주의 견해),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행할 법한' 가언적 선택일 수도 있다(자유주의적 평등주의의 견해). 마지막으로 어떤 이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독자들도 눈치챘겠지만, 나는 세번째 방식을 좋아한다.' (p360-361) 저자는 공리주의적 방식은 '정의와 권리를 원칙이 아닌 계산의 문제로 만든다'는 점과 '인간 행위의 가치를 하나의 도량형으로 환산해 획일화하고 질적 차이를 무시한다'는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자유주의적 입장은 인간 행위의 가치를 획일화하고 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리주의와 유사하게 단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고,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게 마련인 논란과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대립하는 여러 개념들에 대한 논란과 이견의 과정에서 선택을 위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정의는 분배만의 문제가 아'닌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에서의 좋은 삶의 구체적인 실현'을 위해 '도덕적이고 영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런 문제를 성이나 낙태만이 아니라 경제와 시민의 관심사라는 영역까지 끌어낼 수 있는 정치' 담론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196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의 다음과 같은 연설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사회-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의 모습-에 대해서 독자의 입장에서는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우리 국민총생산은 한 해 8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기오염, 담배 광고, 시체가 즐비한 고속도로를 치우는 구급차도 포함됩니다. 우리 문을 잠그는 특수 자물쇠, 그리고 그것을 부수는 사람들을 가둘 교도소도 포함됩니다. 미국삼나무 숲이 파괴되고, 무섭게 뻗은 울창한 자연의 경이로움이 사라지는 것도 포함됩니다. 네이팜탄도 포함되고, 핵탄두와 도시 폭동 제압용 무장 경찰차량도 포함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팔기 위해 폭력을 미화하는 텔리비젼 프로그램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국민총생산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총생산에는 우리 시의 아름다움, 결혼의 장점, 공개 토론에 나타나는 지성, 공무원의 청렴성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해학이나 용기도, 우리의 지혜나 배움도, 국가에 대한 우리의 헌신이나 열정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왜 자랑스러운가를 제외하고 미국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습니다. p363-364  

 우리 사회를 보면 여전히 대립과 자기주장은 넘치지만 대화와 타협과 양보를 찾아보기는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정치권과 사회는 여전히 4대강 공사의 옳고 그름을 놓고, 행정수도의 이전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며 서로 자기편이 옳다고 우격다짐을 하며, 우리보다는 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데 그러한 주장의 근저를 들여다보면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입장을 강화하기 위한 꾼들을 배제한다면-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자유와 행복과 미덕이라는 각각의 입장이 양보없이 부딪히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어떤 가치를 더 우선하느냐의 차이가 그러한 대립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서로의 가치관에 대한 이해없이는 결코 상대편과 타협하거나 대화할 수가 없는 문제이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책임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과거 5공화국 시절에 국민을 향해 총칼을 겨누었던 정권이 '정의로운 사회구현'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통치이념으로 홍보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한 구호로 정말로 정의로운 사회가 구현되었다고 믿을 사람은 없겠지만, 문득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구호가 생각나는 것은 정의라는 미명으로 폭압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런 책 한 권을 열심히 읽고, 사람들이 읽도록 권장하는 것이 훨씬 더 정의로운 사회에 다가가는 방식이지 않을까 하는 허망한(?)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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