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1 - 인사편
조용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浮雪居士 八竹詩 (부설거사 팔죽시)  

此竹彼竹 化去竹 (차죽피죽 화거죽) 
風打之竹 浪打竹 (풍타지죽 랑타죽)
粥粥飯飯 生此竹 (죽죽반반 생차죽) 
是是非非 看彼竹 (시시비비 간피죽) 
賓客接待 家勢竹 (빈객접대 가세죽) 
市井賣買 歲月竹 (시정매매 세월죽) 
萬事不如 吾心竹 (만사불여 오심죽) 
然然然世 過然竹 (연연연세 과연죽)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대로 살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대로 보고,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시장 물건 사고파는 것은 세월대로,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보내네 - 부설거사 팔죽시, p 171  
  

 <동양학 강의> 책 제목을 처음 대하면서 대학에서 강의를 듣거나 적어도 학교 다닐 때 어떤 체계안에서 학문을 배우던 형식을 생각하였습니다. 최근에 다시 노자의 <도덕경>이나 유학의 <논어>, <맹자> 등에 관심이 생겼던 터라, 더더구나 이 책을 펼치기 전에는 그러한 쪽에 대한 기대를 잔뜩 마음속에 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한데 저자가 서문에서 자신의 이 책을 '강호 동양학'이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고 기대하던 동양학이 아닌가 보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는데,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고상한(?) 학문적인 체취가 풍기는 '강단 학문'에 취해 있는 내가 기대한 것이 바로 '강단 동양학'이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저자가 나누는 강단과 강호의 구분을 쉽게 말한다면, '강단 동양학'이 대학이나 학회 등의 기반이나 학문적인 토대를 갖추고 진행되는 것이라면 '강호 동양학'은 그런 구구절절한 학문적인 배경에 억매이지 않고 우리의 일상에 뿌리내리고 있는 동양적인 삶의 자세와 사고방식, 철학과  사상, 종교 등 모든 것이 뒤섞여 이루어지는 동양인의 삶 자체에 대한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단 동양학'이 칠판과 분필이 있는 교실 안에서 이루어진 강의라면, 저자가 말하는 '강호 동양학'은 강과 호수, 산과 들판을 돌며 풍찬노숙하는 과정에서 몸으로 배우고 느낀 인생의 희노애락과 깊음에 대한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하니, 이 책을 통해 고상하게 논어와 맹자, 그리고 도덕경을 논하는 식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은 우선 접어두어야 할 듯 합니다. 

 두 권의 책-동양학 강의 1, 2-을 통해서 저자가 다루는 것은 동양의 고전이나 사상에 대한 것들이 아닙니다. 1권에서는 인물과 사회, 문화, 문명이라는 주제하에 이름과 역사와 사회와 정치, 가족과 민속과 시사와 지역과 의식주, 학문과 건강과 사고와 풍류, 기술과 유물과 재물과 연관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2권에는 자연과 천문, 종교와 운명이라는 주제하에 산과 바다와 동물과 식물, 날짜와 주역과 풍수, 종교와 유불선, 예언과 생사와 사주와 관상과 연관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저자가 강호를 풍찬노숙하면서 직접 듣고 보고 깨닫고 생각한 것들이겠기에 우리 삶의 어느 구석엔가 붙어있었던 것같은 생생함이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어디선가는 내 고향과 관련된 나도 모르던 이야기가, 그리고 어디선가는 피상적으로 국사시간에 흘려들었던 이야기가 맨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등장하기도 하고, 이름을 외우며 그들의 사상이 어떻고 작품이 어떻고를 논하던 이들의 삶의 한부분이 눈앞에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들은 결코 국사시간에 배우지 못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배웠던 많은 것들이 지금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며 이루어가는 것들처럼 삶의 땀방울을 머금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그런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이 책에 담긴 짧은 이야기들 속에, 사서삼경을 논하고 역사를 논하는 칠판앞에서의 강의보다 더 깊은 동양의 사상과 역사에 대한 것들이 담겨 있다고 감히 말할 수도 있지 않을는지..... 또한 담겨진 이야기들 자체가 지금까지 이어진 우리 선인들의 삶의 행적과 체취들을 담고 있고 그러한 삶 속에 동양적인 가치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겠기에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하나 하나가 동양의 사상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의 내용을 되집어가면서, 저자가 자신의 동양학을 '강호 동양학'이라고 설명하는 이면에는 -아니 자신이 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동양학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아마도 학문이란 무엇이고,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고민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사서삼경이나 먼지 쌓인 고서들을 뒤적이며 머리로 하는 작업을 학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실제 현실과 부딪쳐서 몸으로 겪으면서 배우는 것을 더 의미있게 생각한 사람이고 또한 그것을 직접 실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머리로 하는 학문을 저자는 몸으로 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학문적인 언어들로 씌여져 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이 생생히 담겨 펄떡거리는 신명나는 마당놀이 판처럼, 한 편의 신명나는 동양학 강의판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동양학 공부의 밑바탕은 서가에 쌓인 낡은 책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삶과 이웃, 산천과 만물 가운데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채워가는 것이라는, 그것이 모든 공부의 진정한 밑바탕이라는 이야기는 풍요를 쫒아 시간에 쫒기고 돈을 쫒으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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