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적평형 - 읽고 나면 세상이 달라져 보이는 매혹의 책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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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박사가 다람쥐와 사자를 교배해 스온은 만들었다. 스온은 다람쥐처럼 작고 귀여운 외모를 가졌지만 사자처럼 용맹하고 강했다. 이것을 보고 부러워하던 식물학 박사 친구는 포도와 멜론을 교배시켜 포론을 만들고자 결심했다. 멜론처럼 크고 과즙이 풍부하면서 포도처럼 풍성한 송이가 열리는 그런 과일을 말이다. 하지만 완성된 것은 포도처럼 작은 열매가 멜론처럼 조금밖에 열리지 않는 그런 식물이었다......p109, <스온>이라는 작품의 줄거리 

 저자가 4장에서 예로 든 이 이야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또는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현대과학이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이 무엇인가에 대한 지적과 함께 생명이란 결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데카르트가 생명현상을 모두 기계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 데서 비롯된 기계론적인 메카니즘으로서의 생명에 대한 이해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이 사실이고, 지금 우리 주변에서의 '미래는 생명공학의 시대'라고 외치기도 하고, '국가적으로 미래의 우리의 먹거리는 생명공학에 달려있다'고 공언하는 모습들도 결국 그러한 데카르트의 기계론적인 메카니즘에 함몰된 시각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란 여러가지 부품으로 이루어진 기계처럼 여러 세포와 장기의 합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접근하는 기계론적인 생명관이 밑바탕에 깔려있기에, 유전자를 특허화하고 장기를 매매하고 세포을 조작하여 줄기세포를 만들어 내려하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질병을 정복하려 하고 있기도 합니다. 결국 그러한 생명관이 효율적으로 장기를 이식하기 위해서 서둘러 죽음을 선고하는 법을 만들어내고, 줄기세포 확립을 놓고 선점 경쟁을 벌이는 식의 왜곡된 제도와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결에 받아들이고 있는 이러한 데카르적인 생명관이 부분적으로는 많은 과학적인 발전과 이득을 가져왔을지는 모르지만, 결코 옳은 것이 아니라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질병을 극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 왜곡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라는 이전의 책에서 저자는 이미 생명에 대해서 '자기 복제가 가능한 시스템'이며 '동적인 평형상태에 있는 시스템'이라는 정의를 내린 적이 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  DNA를 발견하고 그 구조와 기능에 대한 탐구를 통해 생명의 자기 복제의 방식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제는 일반인들도 자기 복제가 가능한 시스템이라는 정의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수긍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개념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독자로서는 데카르트주의자들이 말하는 기계론적인 메카니즘으로서의 생명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저자가 말하는 생명관을 이해하기 위해서 '<동적평형>이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겠는데, 저자가 말하는 이 책의 주된 논점도 그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자신의 우울한 보스 실리 박사와 바이오 벤처기업의 흥망이라는 머리말에서 시작하여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과 생명의 노화와 죽음에 대한 마지막 부분의 이야기까지, 언뜻 서로 크게 연관이 없어 보였던 이야기들은 결국은 '생명은 동적평형을 유지하는 시스템'이라는 개념을 줄기차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저자가 세밀하게 짜가는 직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정란의 발생을 시작으로 생명현상을 따라간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타이밍에 여러가지 구조물이 발생하고 발달하여 서로 연결되고 기능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저자는 소화효소를 분비하지 못하게 만들어 영양실조를 유발하려던 생쥐가 아무런 탈이 없이 자라는 모습을 통해, 생명 현상이란 단순한 기계적인 조작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어떤 한 부분이 기능을 못하게 되었을 때 그에 대한 백업기능이나 우회도로를 통해 그러한 결함을 극복하는 기계와 다른 다이너즘 -유연성과 가변성, 그리고 전체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기능을 지닌-을 지닌 상태로 표현하며 그것을 '동적인 평형상태'라고 부릅니다. 이와 일맥상통하는 생명현상의 동적 평형 상태에 대한 이해를 위해 중요한 부분은 '생명의 과정은 시간의 함수이며 그것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일 듯 합니다. 즉 인간 게놈 계획에 의해서 알려진 약 2만 개의 유전자를 유전공학적으로 합성하여 섞는다고 결코 생명체가 될 수 없는 것은 바로 생명에 있어서의 시간 관념, 즉  '(생명발생과정의) 타이밍과 (생명을 이루는) 부품은 시간을 따라 조직화 되고, 각각의 시점에서 발생하는 그 모든 것은 그 순간에만, 단 한번 나타나는 현상이며 불가역적이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재의 복제기술이나 유전공학은 이러한 생명의 시간함수라는 측면을 억지로 헤집어서 재프로그래밍을 하려는 시도이며 어디선가는 시간에 조작을 가한만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 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동적평형에 대해 좀 더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음식물을 섭취하면 그 구성성분들은 분자단위로 분해되어 흡수되고 또다시 배설되기를 반복합니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이러한 분자의 유입과 유출과정을 통해서 유지되고, 분자적으로 본다면 우리의 몸은 수개월 전의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가 됩니다.  분자는 환경에서 와서 한때 우리 몸에 머물다가 다시 환경속으로 분해되어 가는데, 그러한 과정도 우리 몸이 물을 담는 그릇처럼 일정 형태를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분자들이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 몸자체도 '끊임없이 통과하고 있는' 분자가 일시적인 형태를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이란 바로 그러한 흐름 자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살아있다'고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이란 시스템이 물질적인 구조 기반, 즉 구성분자 자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이 유발하는 '효과'라는 사실과 그러한 생명현상이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항상 움직이며 그 움직임은 '흐름', 혹은 환경과의 대순환이라는 고리안에 있어 환경과의 사이에서 일정한 평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간과 흐름, 그리고 동적평형상태와 같은 말들이 저자가 말하는 생명현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단어들이고, 동적평형상태라는 말에는 이러한 시간과 물질의 흐름, 그리고 지속가능함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생명현상에 대한 단순한 이해보다는, 생명을 단순한 부품의 합으로 생각하는 현대의 기계론적인 생명관으로 인해서 잃어버린 것들, 또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회복하는 것에까지 나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그러한 노력이 시대의 흐름이 되기 위해서는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말한 것들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사고의 전환과 노력과 과학적인 연구들이 뒷받침 되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이 책의 생명에 대한 신선한 시각이  읽는 이에겐 생명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생명, 자연, 환경-거기에 살아 숨 쉬는 모든 현상의 핵심을 풀 수 있는 키워드, 나는 그것을 '동적평형(dynamic equilibrium)'이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흐르면서 정교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 끊임없이 파괴하고 항상 재구축하는 것 외에 손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생명은 그런 모습과 행동을 선택했다. 이것이 '동적평형'이다. - p21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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