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 나는 거기 없고, 잠들지 않았습니다. / 나는 이리저리 부는 바람이며 / 금강석처럼 반짝이는 눈이며 / 무르익은 곡식을 비추는 햇빛이며 /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입니다. / 당신이 숨죽인 듯 고요한 아침에 깨면 / 나는 원을 그리며 포르르 / 날아오르는 말없는 새이며 / 밤에 부드럽게 빛나는 별입니다. /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 나는 거기 없습니다. 죽지 않았으니까요. - 어느 아메리칸 인디언의 기도 

  몇해 전에 우연히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책을 대할 기회가 있었고, 당시까지 전혀 모르던 사람을 글을 통해서 만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 동네 한 모퉁이를 돌아서면 만나게 되던 낯익은 풍경과 다정한 벗들을 대하는 듯한 즐거움.... 사사로운 감정들을 모두 뒤에 두고 마음 편히 속닥거릴 만한 사람을 만난 듯한 편안함.... 그리고 내 삶에 따라 붙어 있던 소소한 것들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여유로움.... 아마도 이런 감정들이 뒤섞인 기쁨이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올 해에는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만났습니다. 작가의 죽음과 겹치는 이런 저런 것들 때문에 괜한 선입견에 멀리하다가, 계절이 두번 바뀌면서 마음이 달라져 읽었습니다. 화려함도 격렬함도 학문적인 심오함도 담겨 있지 않지만, 그 안에서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과 긍정과 희망을 읽고서 내내 마음이 더 넓어지고 세상이 더 사랑스럽고 살만한 곳이다는 생각에 잠못 이루고 감사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인생에 대해서 그 어떤 책이 말하는 것도다 더 화려하고 격렬하고 심오한 이야기가 작가의 투명한 시선과 세상에 대한 관조를 통해 읽는 이의 마음에 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이리 단 두권의 책을 통해서 만난 장영희라는 사람은, 비록 내가 얼굴을 마주대하고, 딱히 더 잘 알려고 노력한 적은 없지만, 책읽기를 통해서 만난 내 삶의 한 축을 위로하고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머리의 '어느 아메리칸 인디언의 기도'를 읽으며, 이 책에 정말 어울리는 글을 실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1주기가 된 지금, 많은 말과 칭찬과 추도사의 긴 행렬보다 이 기도문 하나로 더 많은 이야기를 작가와 나눌 수 있고, 또한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전히 삶의 소소한 것들에서, 아니 소소하다기보다는 내 삶을 이루는 각각의 조각들 안에 내 삶의 진실이 담겨 있음을 작가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모여서 삶이 되고 인생이 되고 기쁨이 되고 사랑이 된다는 것을 내 귓가에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기도문 속의 인디언은 주변의 생동하는 자연이 곧 자신이라고 말하였다면, 책으로 작가를 만났던 많은 이들에게 작가는 여전히 그녀의 책을 통하여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아있고, 살아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나는 죽지 않았어요. 나는 내 무덤속에 있지 않답니다. 나는 나를 기억하는 여러분의 가슴속에, 여러분의 책장에 놓여있는 책속에, 그리고 여러분이 넘기는 책장속에, 여러분의 눈이 따라가는 내 이야기들 속에 있답니다....' 그리고 독자로서의 내게도,작가는 기억해야 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여전히 내 손에 들린 책과 그 책속에 담기 이야기들을 통해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생생히 살아있는 사람이랍니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오롯이 기적의 책이 되었으면 한다.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프롤로그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