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
리디 쌀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무엇이라도 다 돈으로 거래할 수 있다는 건 틀렸어. 아첨은 돈으로 돼, 알랑방귀는 돈으로 돼, 비위 맞추는 것도 돈으로 돼, 여자도 그래. 하지만 편한 잠은 돈으로 살 수 없어, 영혼의 평화도 안돼, 이런 빌어먹을, 우정도 안 된다고, 빌어먹을. 난 친구가 하나도 없어,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삶과 죽음을 더불어 이야기할 친구가 한 놈도 없어....." p244, 토볼드 

 "나무의자에 앉아 나무들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렇게도 단순한 기쁨없이 난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난 더이상 두 다리로 길을 걸을 줄 몰라, 밤나무 냄새를 맡으면서 길 따라 걷는 행복도 더이상 몰라, 내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도 모르고, 내가 어느 나라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빵값이 얼만지도 모르고, 배고프다는 게 뭔지도 모르고, 춥다는 게 뭔지도 몰라, 내가 아직도 이 세상 사람이긴 한가? 자기 집 문 앞에 앉아 있는 노인들도, 그 무릎에서 생각에 잠긴 고양이들도,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갈돌과 나뭇가지로 짐짓 얌전하게 노는 아이들도 난 더이상 만날 수 없어. 죽음을 물리치는 이 자잘한 기쁨들 모두 난 이제 만나지 못해. 내가 미쳐가고 있나봐요, 엄마." - p249 토볼드 

 지상 최대의 부자 킹사이즈 햄버거 회장님 토볼드와 그가 주창하는 제3복음서-전기-를 집필하기 위해 -실제로는 받아쓰기 위해- 고용된 여류작가..... 이 소설의 근간이 되는 두 인물입니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스트립쇼장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킹사이즈 햄버거를 창업하여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고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자유시장주의를 전파하는 토볼드는 자신의 적을 가차없이 내치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쓸어내버리고, 돈의 전능함과 자신의 무소불위를 믿으며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의 전기-소설속에서는 복음서로 이야기됩니다-를 받아쓰기 위해 고용된 소설 속 화자이기도 한 주인공은 고상한 문학의 숲에서 잠깐 외도를 하려다가 토볼드가 제공하는 물질적인 안락에 푹 젖어 반항하지 못하고 애완견처럼 꼬리를 흔드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그것들을 누리는 것에 영혼을 점령당한 작가입니다. 자신을 고용한 회장님의 천박함과 경박함에 몸서리를 치지만, 그가 제공하는 한번도 빠져보지 못했던 물질적인 안락함에 영혼이 질식하는 것도 잠시(?) 용납한다고 할까요..... 하지만 누구나 예상하듯이 잠시 용납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다는 말일 수도 있겠지요..... 

 앞에 언급한 두 문단은 회장 토볼드가 자신의 권력과 금권 앞에서 얼굴빛를 좋게 하던 이들이 실은 자신을 더러운 쓰레기 같이 증오하고 싫어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뱉는 말들입니다. 정신과 의사의 말에 의하면 과대망상증의 부차적 증상인 '회한 망상'의 일종에 걸린 상태에서 내뱉는 세상 부러울 것 없었던 사람의 고뇌에 찬 되뇌임입니다.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우리의 선인들이 무던히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깨우치곤 했던 세상에서의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식견이 묻어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물론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된 이슈는 이것이 아니겠지만, 읽는 독자로서는 이 부분이 그래도 제일 마음이 가는 부분중에 하나였습니다. 돈이면 다 되고,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모든 가치에 앞서가는 듯한 이 시대에, 그래도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우리 삶의 행복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그런 물질적인 것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생히 담고 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은 토볼드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선사업가로 변모를 하지만, 여전히 삶의 방식은 킹싸이즈 햄버거를 운영하던 때와 그리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다만 겉모양이 다른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던 것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에 무엇인가를 집어 넣어주는 방식으로, 또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거슬리면 치워버리던 무모함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자선사업가-그에게는 이것도 사업의 일종입니다-로 변신한 킹싸이즈 햄버거의 회장은 여전 자신이 중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의 방식으로 이윤을 추구하며 도움을 구걸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을 따르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 회장님의 애완작가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회장님의 정서적인 몰락과 변화과정에서 영혼이 확 깨임을 당하는 듯 합니다. 자연스럽게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와서, 복음서 집필을 접고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사는 세상을 좌충우돌 신나게 깨부수며, 주인공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안에서도 남몰래 기회를 엿보고 있을 속물근성이나 없어서 그렇지 많이 가졌다면 결코 마다하지 않고 물질만능주의에 찌들 각오가 되어 있을 우리 영혼의 가벼움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더 솔직해지자면, 우리 영혼 대부분은 끝내주는 회장님을 알아서 모시게 된 주인공 애완작가처럼,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 자신만의 끝내주는 회장님을 모시고 그의 목줄에 스스로 목을 걸어매고 순종하며 살고 있는 길들여진 존재인지도 모를 일이니, 냉정하게 자신을 한번 쯤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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