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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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읽고나서, 문득 진화론에 길들여진 사람들-우리 과학교육에는 진화론 외에 대안은 없으니까-에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진화의 산물인가, 창조의 산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슬며시 듭니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본, 인류 행적의 전단계라고 여겨지는 호모 에렉투스-물론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는 전혀 다른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의견이 있지만 그런 정확함 보다는 일반적인 발달 또는 진화단계의 과정으로 단순화해서 생각할 때-의 입장에서 볼때, 그들을 압도하고 이 지구상의 패권자가 된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들의 진화된 모습으로 여겨질지, 아니면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창조된 능력을 지닌 자들로 여겨질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입장이라면 간단히 더 진화된 존재라는 가정에 만족할 수 있겠지만, 뒤처진 입장의 호모 에렉투스의 입장이라면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들이 진화된 모습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이 이룩하지 못한 능력을 부여받아 자신들을 초월한 새로이 창조된 존재처럼 느껴지지는 않을는지...... 그리고 그러한 관점을 유지한다면 모든 진화의 다음단계는 새로운 창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진화의 정점에 있는 인류의 입장에서는 뒤돌아보는 발자취는 자신이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켜켜이 쌓인 흔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고, 그러한 과거의 존재와는 다른 자신의 장점 또는 특징 등에 대해서 우쭐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어디까지의 변화 또는 발전(?)을 자신의 연장인 진화된 존재로 인정할 수 있고, 어느 지점부터 자신과 전혀 다른 별종인 새로운 창조물로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게되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빠져드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생각과 결말의 영향에 의한 것입니다. 인류의 뒤를 이어 이 지구상의 패권을 차지할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면, 그 존재를 인류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하거나 새로운 창조물로  생각하게 하는 기준을 현재 인류의 입장에서 어찌 말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조금 황당해 보이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렇게 황당하게만  생각되는 의문이 아닙니다. 

 작가에 의해 그려지는 현세계 이후에 이어지는 지구는 전쟁과 질병으로 모두 파괴되고, 극단적으로 고립된 지역에서 외부와의 방벽을 쌓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외부와의 접촉을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사람들을 가정으로부터 격리하여 플라톤이 말하는 이상세계와 같은 사회구조를 지향하여 노동자, 군인, 기술자, 철학자의 4계급으로 사람들을 구분하고, 각각의 계급에 걸맞는 교육과 사회적 직능을 수행하게 하고, 아이들은 낳자마자 부모와 격리되어 공동 양육되고, 연애는 허락되지만 결혼은 허가를 받아야 하고, 결혼하더라도 남녀는 따로 벌어들인 공유시간수당 외에는 자신이 속한 작업장에서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회를 이룹니다. 그러한 사회의 규율에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가 외부인의 접근거부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땅에 상륙하도록 도운 '아담' 포드이고, 사회의 노동자나 군인 계급의 잡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보된 로봇을 만들어 가던 중 탄생한 것이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지능을 가진 모델인 '아트'입니다. '아담'은 자신의 배반에 대한 처벌대신 '아트'의 진보를 위한 모델로서의 역할이 주어지고 24시간 아트와 함께 지내도록 배려(?)됩니다. 그리고 '아담'과 '아트'의 상호 소통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아트와 같은 로봇과 인간의 차이점이란 무엇인가, 의식이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를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소설 속 이야기의 진행은 '아낙시 맨더'가 '페리클레스'라는 스승의 지도를 받아, 통치기관인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관들 앞에서 4시간 동안의 대면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 담겨 있습니다. 공화국의 창립과 아담의 배반, 아트의 탄생과 아담과 아트의 탈출.....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에 암시되어 있는 그 이후의 세상..... 그 세상을 인류의 진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종의 탄생이라고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담과 아트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나누었던 논쟁만큼이나 이리 저리 생각할 구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제목에서처럼 아마도 그 세상을 창조로 말하고 싶어한 듯 하지만 말입니다..... 또 한가지, 재미를 위해서는 절대로 마지막 두세 페이지를 먼저 읽지도, 먼저 알려고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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