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의 시대보다 더 행복했던 시대에 인류는 자기 자신을 가르켜 감히 "Homo Sapiens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라고 불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인류는 합리주의와 순수 낙관론을 숭상했던 18세기 사람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그리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게 밝혀졌고,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인류를 "Homo Faber (물건을 만들어내는 인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비록 인류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faber(물건을 만들어내는)라는 말이 sapiens(생각하는)라는 말보다 한결 명확하지만, 많은 동물들도 물건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말 역시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인간과 동물에게 동시에 적용되면서 생각하기와 만들어내기처럼 중요한 제3의 기능이 있으니, 곧 놀이하기이다. 그리하여 나는 호모 파베를 바로 옆에,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수준으로, "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를 인류 지칭 용어의 리스트에 등재시키고자 한다. - <들어가는 말>에서 

 서문의 '우리 인류의 문명이 놀이 속에서(in play), 그리고 놀이로서(as play) 생겨나고 발전했다는 확신속에서 이 주제에 대한 탐구를 통해 놀이 개념을 문화의 개념과 통합시키려고 했다'는 저자의 언급에 이 책의 분명한 목적 또는 주제가 드러나 있는 듯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파베르를 통해서 인간이 스스로를 다른 동물들과는 따로이 구분되는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처럼, 저자는 놀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행위 속에서 시작된 문화의 싹이 자라서 한 집단의 문화로, 그리고 크게는 한 지역이나 국가의 문화와 문명체계로 발전하여 가는 것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파베르보다는 호모 루덴스가 더 인간을 인간답게 표현하고 나타내는 용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저자가 이 책을 쓰던 시기에 비해 호모 루덴스라는 말과 개념이 훨씬 알려지고 수긍을 얻는 용어가 되었지만, 적어도 저자가 이 책을 처음 써낸 1938년에는 어떤 연구들의 성과물이나 여러 사람들과의 토의를 통한 의견의 접근을 본 보편적인 개념이라기 보다는 오로지 저자인 하위징아 자신의 역사적인 접근방법을 바탕으로 한 탐구를 통해서 제시되고 세상에 알려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결국 저자의 주장에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가, 역사적으로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실례가 존재하는가에 의해서 호모 루덴스라는 새로운 용어의 타당성이 주어지겠지요.  

 저자는 자신의 호모 루덴스라는 개념을 일반적인 인간 문명 또는 문화의 특성으로 주장하기 위해서 놀이에 대한 의미를 정립하는데서 부터 글을 시작하는데, '놀이는 특정 시간과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자발적인 행동 혹은 몰입행위로서, 자유롭게 받아들여진 규칙을 따르되 그 규칙의 적용은 아주 엄격하며, 놀이 그 자체에 목적이 있고 '일상생활'과는 다른 긴장, 즐거움, 의식을 수반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에 입각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되는 놀이의 개념이나 놀이에 기원을 둔 모습들을 파악해 냅니다. 여러 언어속에서 발견되는 놀이개념, 놀이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경기, 법률과 소송에 담겨있는 놀이의 특성, 전쟁과 놀이의 유사성, 인식의 수단으로서의 놀이, 시와 신화와 철학과 예술에서 발견되는 놀이의 형태 등 우리 문화의 다양한 면들에 숨겨져 있는 놀이의 원형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서양 문명이나 현대 문명에서 발견되는 놀이의 요소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결국 현대에 가까울수록 문화속에 담긴 놀이의 요소가 제거되고 놀이 아님(진지함)의 영역으로 정착되었버린 측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진지함이 우리가 쉽게 저자가 말하는 놀이개념을 우리의 삶속에서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겠고, 한편으로는 놀이라는 개념을 은연중에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유치함으로 치부해버리는 경솔함이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호모 루덴스라는 개념을 통해서 문화의 한 요소로서의 놀이가 아닌, 문화나 문명 자체가 놀이의 특성을 기본으로 발전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저자는, 그러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문화형태에서 그 기원으로서의 놀이의 요소들을 찾아내어 고찰하고, 여러 집단안에서 그리고 철학과 시, 예술 등의 영역에서도 그 안에 담긴 놀이의 성격을 구분해 내어 인간 문화의 기원으로서의 놀이의 의미를 여러 면에서 탐구하고 있는데,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나면 , 삶의 여러 부분에서 놀이의 특성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가운데 인류의 문명이 긍정적으로 발전해올 수 있었음을 암시하는 저자의 주장들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저자의 주장을 요약해서 이해하는 모양새는 차렸지만, 여러 세부 영역에 파고 들어가서 놀이의 특성이나 개념들을 추적하는 저자의 노력을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을 내서 진지하게 읽고 안으로 삭이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몇시간의 독서로 모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다고 학문을 대한다는 경직된 진지함으로 접근하는 것은 저자가 말하는 '놀이 아님'에 해당될 터이니 일상과는 다른 즐거움과 긴장과  의식을 수반하는 진정한 놀이의 정신을 망각하지는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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