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머니 - 땅, 먹을거리, 세상을 살리는 자본
우디 타쉬 지음, 이종훈 옮김 / 서해문집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인내자본이 식품 부문에 투입되는 경우에 슬로머니가 되는데, '슬로머니'라는 명칭을 국제 NGO 슬로푸드에 대한 존경심을 넘어서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딴 것이다. 슬로푸드는 생물 다양성, 장인 정신이 깃든 음식 전통, 조상 전래의 품종, 소농과 소비자의 연결을 촉진시킨다. 슬로머니는 인내자본의 하위 자산 집단으로, 특유의 끈기를 발휘해 토양과 생태 지역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다. 슬로머니는 스테로이드 같은 자본과 정반대의 성격을 띤 인내자본이다. -p80

 '슬로머니'라는 용어가 낯설고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이미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슬로푸드'라는 용어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면, 이 용어가 뜻하는 바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현재 세계 여러 곳을 빠르게 휘젓고 다니며 자본의 성격이나 역할에는 관심이 없이 오로지 최대의 이익만을 최선의 가치로 생각하고 투자되고 있는 자본에 대한 상대개념으로 '슬로머니'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없는 성장과 이익만을 염두에 두고 운영되는 현재의 경제체제는 언젠가는 파국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것과 지금까지는 경제적인 풍요로움에 일조한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가 이제는 더이상 사람들을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는 자각에서 출발하는 저자는 결국 이러한 폐해의 근원은 금융의 문제 그중에서도 돈의 속도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그 전제 조건은 이렇다. 지금 문제시되는 토양 비옥도, 생물 다양성, 식품 품질, 지역경제 문제는 근본적으로 과학 기술 문제가 아니다. 이는 금융 문제다. 금융체제에서는 자본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한 곳에 몰아넣는다. 그러니 결국 싸구려 식품이 판치고, 유전자 조작 옥수수가 대량생산되며, 중심가는 몰락하고 식품 이동거리만 수십억 킬로미터에 이르게 된다. 아이들이 먹을거리가 슈퍼마켓에서 생긴다고 여기고, 한쪽에서는 만성적 기아에 허덕이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비만에 시달리는 현상들이 생기는 것도 알고 보면 놀랄 일이 아니다. .... 돈이 너무 빠르게 돈다. 너무 빠르게 도는 바람에 오히려 사람들, 본래의 장소, 활동에서 돈이 소외당했다, 심지어 전문가조차도 투자활동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돈이 너무 빠르게 도니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신용시장이 경색되어도 세계시장이 그저 조정 과정을 겪는 것인지, 벼랑 끝으로 몰린 심각한 상황인지 판단할 수도 없다. .... 햄버거 한 개에 사용된 고기의 출처를 아무도 정확히 말할 수 없는 경우처럼 이러저러한 유가 증권의 거래 대금이 어디서 비롯되어 어디로 흘러가고, 그 이면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지, 그것이 잠시 누군가의 수중에 뜨거운 감자처럼 머물 경우 실질적으로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러한 금융체제 안에서의 돈은 '삶의 터전과 분리된 채 가속도를 내며 지구 곳곳에서 유통되'고 결국 '자본과 지역사회와 생태 지역 사이의 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데, 저자는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눈앞의 이익보다는 땅과 먹을거리와 세상을 살리데 관심을 두는 자본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물이 지질 구조, 토양, 식생, 특정 지역의 생태학적 관계등에 작용을 받아 적당한 속도로 흐르듯이, 특정 장소에 뿌리박은 지역사회의 장기적 필요조건과 생태자본 보존의 필요성에 맞게 알맞은 속도로 돈이 유통'되도록 경제체제를 복원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즉 이익만을 위해서 자연환경과 사람들을 착취하는 자본이 아니라 자신의 땅과 몸과 가족과 지역사회와 나라의 건강성을 위해서 주변환경을 보살피는데 인색하지 않는 자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결국은 이상과 현실의 격렬한 투쟁이 일어나는 듯 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자본과 이를 운영하는 사람, 또한 이를 위탁한 사람들 대부분은 자본이 어떤 형태로 투자되는지, 도덕적이고 건강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투자되는지 등에 대한 관심보다는 오로지 수익률에만 관심을 두는 상황이고, 또한 슬로머니의 정신에 그래도 가까워보이는 자선단체의 기금들마저 그 투자 방식에 있어서는 수익만 높게 올린다면 자신들 단체의 목적과 상반되는 방식으로 투자되는 것마저 개의치 않은 상황은 저자가 주창하는 슬로머니의 개념이 이상적으로 들리는 멋진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공허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도 사실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경제적 증상은 '경제적 병폐가 아니라 문화적 병폐로 인한 것'이며,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경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 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주장하는 슬로머니라는 개념이 단지 무한경쟁과 이익에 매달리는 경제체제에 대한 대안적인 개념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그러한 경제체제에 익숙해진 우리의 삶과 사고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의 해결을 위한 고민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분명 더 많은 물질적인 풍요를 이루었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더 행복하다기 보다는 무언가 잃어버린 상실감을 더 느끼며 사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리 된 이유에 대해서 나름의 멋진 답과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많은 물질적인 풍요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달리는 효율성과 속도의 경제체제에 봉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결국 사회와 관계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돈이 중심이 되어버린 사회'구조 속에서, 따뜻함이 담긴 '문화와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관계가 사라져' 버렸고,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땅과 문화와 우리의 생태계의 건강성을 중시하는 자본의 개념으로서의 슬로머니를 주창합니다. 현대 경제의 단절된 관계를 청산하고 땅과 사람, 생태계와 인간, 그리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속도의 늦춤을 용인하는 자본, 더 많은 이득을 위해 땅과 생태계를 착취는 자본이 아니라 땅의 비옥도와 생태계의 건강성, 그리고 가족과 지역사회 등에 대한 기여까지도 고려하는 양육자의 마음을 지닌 주변을 보살피는 자본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성적인 호소를 담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거나 '느린 것이 아름답다'는 구호의 한계를 뛰어넘어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과정을 담은 것도 이 책이 지닌 미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건강한 세상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신선한 저자의 생각들을 통해 미처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세상의 다른 한편에 대한 소중한 탐구의 시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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