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4
이솝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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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을 지혜롭게 산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꼭 바르고 곧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듯 합니다. 때로 센바람이 불어오면 갈대처럼 휘어질 줄도 알아야 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적들 앞에서는 삼십육계 줄행랑이 상책일 수도 있을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방편을 삶의 중심에 놓고 매번 그리 산다면 그것 또한 지혜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으로 각인된다면 사회생활에서 '왕따'가 되기 십상일테니 말입니다. 결국 세상살이에서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중용의 미학을 실천하는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대쪽같이 한평생을 살아내서 존경을 받는 위인들도 있지만, 결국 평범한 이들에게는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삶의 중심은 유지하되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들여본다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우화들은 평범한 이들에게 삶속에 담긴 세상사의 이치를 깨닫고, 지혜롭게 사는 방식을 짧지만 강렬하게 전해주는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을 마냥 선하게만, 정직하게만 살라고 하지 않고, 때로는 다른 이의 어려움 앞에 냉정하게 돌아서라고 하기도 하고, 은혜를 베푸는 것이 결국 화를 초래하는 근원이 될수도 있다고 하고, 본래 고약한 성품을 바로잡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하는 등 현실적인 삶속에서의 진실, 또는 지혜를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솝 우화>에 대해서라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몇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황새에게 접시에 담은 음식을 대접하였다가 황새로부터 목이 긴 병에 담긴 음식을 대접받는 것으로 대갚음 -사전에는 되갚음이라는 말은 없답니다^^- 을 당한 여우 -어렸을 때 이 장면을 보면서 황새는 어렵겠지만 꾀많은 여우가 왜 병을 뒤집어 나발을 불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 내기를 하는 북풍과 해님, 시골쥐와 도시쥐,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그물에 걸린 사자를 구한 생쥐 등등. 그래서 우화집이라면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그런 책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굳이 이리 읽노라니 어른인 내게도 얻을 만한 이야기들이 보입니다. 선악을 떠나서 인간 본성을 이리도 적절하게 표현할 수는 없겠다는 감탄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다시 보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아이들이 자랄때 꽤 길게 각색되었던 동화들이었다는 기억인데, 단 몇줄로 서술된 원문을 보면서는 이 간단한 이야기를 뼈대로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 살을 붙인 각색자들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감탄사도 발하게 합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세상사의 이면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도 보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가볍게 나눌 수 있는 그럴듯한 이야기거리도 건져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개된 우화들이 세상사의 핵심을 간결하게 풀어서 깨닫게 해주는 것이, 어렵게 읽어내던 책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안겨주기도 하고, 머릿속에 많은 지혜를 더해 주는 듯도 하여, 나이가 들어서도 곁에 두고 짬을 내어 읽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링컨 대통령은 항상 <유클리드 기하학>과 <이솝 우화집>을 끼고 살았다고 하니 아마도 이러한 즐거움과 이 속에 담긴 삶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벌써 꿰뚫어 보고 있었던 듯 합니다.  

 <이솝 우화>와 무관하게 이 책 자체에 대한 한두가지 불편함을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은 원문 아래 덧붙여진 해설(?)에 대한 것인데, 본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다양한 해석과 이해의 여지를 없애버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생뚱맞다고 생각되는 부분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작품해설을 보면 이 책의 원본-펭귄 판 핸드포드 번역-에 해당되는 책자체의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어차피 그러한 번역본들도 다른 원본을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몇가지 판본을 사용하더라도 세계문학전집에 어울리는 편집의 묘를 살렸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번역상의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면입니다. 새 문학전집을 펴내면서 '오늘에는 오늘의 젊은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오늘의 번역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읽는 도중 곳곳에서 느껴지는 문체의 부자연스러움이나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들의 낯섦이 읽는 묘미를 많이 감소시킨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암여우가 암사자를 비웃었습니다. 새끼를 한 마리밖에 낳지 못한다고 말이지요. 암사자가 대꾸하였습니다. "한 마리지만, 사자란 말일세." -p28, 양보다 질 

 개가 토끼를 숲에서 쫓았습니다. 익숙한 사냥개였지만 재빠른 발에 뒤지고 말았지요. 염소지기가 개를 비웃었습니다. "저렇게 조그만 것이 너보다 빠르구나!" 개는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얼 잡으려고 달리는 것과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리는 것은 전혀 다르지요." -p147,  큰 차이 

 임종을 앞둔 농부가 자기 아들들이 훌륭한 농사꾼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아들들을 불러놓고 말했지요. "애들아, 나는 곧 이승을 뜬다. 너희들은 내가 포도밭에 숨겨놓은 것을 찾아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줄 모든 것이 거기 있다." 아들들은 포도밭 어딘가에 보물이 묻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땅 구석구석을 팠습니다. 감추어둔 보물은 찾을 수 없었지요. 그러나 깊은 골을 판 포도 넝쿨은 굉장한 수확을 올렸습니다. -p197, 귀중한 발견 

 좁은 길을 걸어가다가 헤라클레스는 사과처럼 생긴 것이 땅 위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부수려고 그 위에 발을 올려놓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아까보다 곱쟁이로 커졌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더욱 세게 밟고 또 몽둥이로 쳤습니다. 그것은 더욱 커져서 온통 길을 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헤라클레스는 몽둥이를 내던지고 놀란 채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테나가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만하면 됐어요." 하고 아테나는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싸움과 말다툼의 정신입니다. 도발하지 않는 한 그것은 처음 모양으로 있지요. 그러나 더불어 싸우면 그건 한없이 불어나요." -p 199, 바늘이 몽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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