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건 그렇다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만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 p229-230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학교 기숙사를 나와 이곳저곳을 방황하던 홀든 콜필드가 동생 피비를 만나기 위해 몰래 자신의 집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동생 피비의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건지 말해보라'는 질문에 대답한 내용입니다. 온종일 넓은 호밀밭의 절벽 옆에 서 있다가 조심성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절벽으로 떨어지려는 아이들을 붙잡아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그전에 주인공은 '모든 것을 그리 다 싫어하지 않는다면 뭘 좋아하는지 한 가지만 말해보라'는 동생의 질문에 쉬이 대답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합니다. 크리스마스 시즌, 방학 시작을 며칠 남겨두지 않고,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부모님이 있는 집에 바로 들어가지도, 그런다고 남은 시간을 기숙사에 조용히 남아있지도 못한 주인공이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해보기도 하고, 옛 학교의 동료를 만나기도 하고, 술집에서 정신이 나갈 정도로 취해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닥친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그리 절벽에서 추락하고 있는 자신을 붙잡아 주는 손길을 만나지도 못합니다. 세상과 자신의 삶을 가로막는 부조리함에 온몸으로 맞서는 듯이 보이지만, 그런 그의 모습을 조금 물러서서 보면 한편으로는 절제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모습과 의미없이 반항하며 사소한 것에 얽매여 큰 것을 포용하지 못하는 협소함-한편으로는 순수함이라고 할수도- 등이 겹치며 세상을 아직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어린 영혼의 몸부림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시간을 주인공과 같은 사춘기 청소년들이 자신을 찾기 위해 겪는 혼돈의 시간이고 삶의 어느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할 과정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러한 모습은 주인공이 원하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절벽이 옆에 있음에도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마냥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알고는 있지만, 아직 몸과 마음이 그러한 생각을 따라 갈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이라고도 해야 하지 않을는지..... 

 마지막에 집을 떠나 서부로 떠나겠다는 우스운(?) 주인공의 생각을 멋지게 막아서는 것은 주인공의 어머니나 아버지, 옛 선생님이나 친구, 여자 친구 샐리나 마음속으로 사모하는 제인과 같은 이들이 아닌 주인공이 항상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칭찬하는 동생 피비입니다. 떠나기 전에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만나고자 했던 동생 피비는 주인공 앞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숨을 몰아쉬며 함께 떠날거라고 나타납니다. 그런 동생 앞에서 쩔쩔매며 -아마도 어른들이 그리 했다면 주인공은 더 반항했겠지요- 결국은 동생을 달래기 위해 함께 동물원에 가고 동생에게 회전목마를 태우는 동안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주인공 앞에 그리 영리하게 막아선 피비의 모습에서는 주인공이 말한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을 잡아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주인공 자신도 그것이 절벽인지 몰랐겠지만, 아마 한걸음만 더 내디뎠다면 절벽으로 완전히 추락해 버릴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공을 붙들어 준 것은 바로 동생 피비라고 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겪은 후의 주인공은, 마지막 그의 독백으로 미루어 보건데, 호밀밭에서 뛰어노니는 아이들보다는 이제는 그들을 지켜보는 파수꾼의 모습을 더 생각하게 합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 이젠 몸과 마음을 다스릴만한 영혼의 성숙함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되니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르러서 삶에서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의미를 곰곰히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p32 

 많은 사람들, 특히 이 병원에 있는 정신과 전문의가, 이번 9월부터 학교에 가게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인지를 연신 물어대고 있다. 정말 이보다 더 어리석은 질문이 있을까? 실제로 해보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하게 될 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야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것이다. -p278 

 난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한 걸 후회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것뿐. 이를테면, 스트라드레이터나 애클리 같은 녀석들까지도. 모리스 자식도 그립다. 정말 웃긴 일이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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