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시 - 시인 최영미, 세계의 명시를 말하다
최영미 / 해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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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집 한 권,/ 빵 한 덩이,/ 포도주가 있으면,/ 사랑이 없더라도 / 황야도 천국이 되니" 

  인생을 살며, 시집 한 권과 빵 한 덩이, 그리고 포도주 한 잔만으로도 천국을 누릴 수 있는 영혼이 있습니다. 세상에 둥지를 튼 많은 영혼들이 자신의 삶 어느 순간엔가는 그러한 충만함을 가슴에 담고 있었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을 얻고, 자녀를 얻고, 간절히 소망하는 무언가를 이룬 순간에..... 아마도 많은 이들은 마음속에 그러한 충만함도 함께 지닐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없을지라도, 자녀가 품을 떠나버렸을지라도, 그리고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더라도 시집 한 권과 빵 한 덩이, 그리고 포도주 한 잔으로 천국의 기쁨을 누리노라고 고백하는 영혼이 있다면, 우리의 눈에 아마 그 영혼은 대단히 불행하거나 대단히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는지..... 그래서 결국 첫머리에 언급한 “시집 한 권, 빵 한 덩이, 포도주가 있으면, 사랑이 없더라도 황야도 천국이 되니”라는 말은 삶의 지난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 인생의 쓰디쓴 뿌리를 소화시켜 본 적이 없는 영혼이 인생의 겉멋을 그럴 듯하게 과시하기 위해 읊조릴 말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주 멋져 보이는 구절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한 사람의 시인이 사랑하고, 그 시인을 키웠던 시들을 모아놓은 시집. 이러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시인의 작품집을 읽는다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일입니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은 시인의 고된 노역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그녀의 삶 어느 구석에 박혀있었을 가시를 치료하고 보석들을 닦아서 빛낸 앞서간 선배들의 선물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또한 같은 글이라도 읽는 이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깊이와 넓이의 차이가 있을 터인데, 거기에 덧붙여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여로에서 함께 보듬고 살며 반복해서 되새기던 시어들이라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하루 또는 며칠 만에 후다닥 읽고 나서 감상을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될 듯합니다. 그의 말과 느낌을 듣고, 시인이 이 시들을 골라 모은 사연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것이 시인을 사랑하는 이들이 보여야 할 예의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한 사람이 시를 읽고, 그 안에서 삶의 감춰진 충만함을 얻으며 걸어가기에는 너무 바쁘고 각박한 것일지 모릅니다. 내일 양식을 걱정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미래를 힘겨워하는 현실에서는 시 한 구절을 읊조리는 여유가 사치라고 여겨질 만합니다. 하지만 시인의 바람처럼 그녀가 차린 '언어의 성찬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더 깊고 풍부하게 향유할 수 있게' 된다면, 사치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힘겨운 현실을 보듬고 일으켜 세우는 지주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이러한 계기를 통해서 직접 ‘시를 쓰지는 않더라도 시를 알아보는 맑은 눈들이 늘어’날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살만하고 아름다운 곳이 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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