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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읽기 - 쇼펜하우어의 재발견
랄프 비너 지음, 최흥주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이 책이 유쾌하게 읽기를 시도하고 있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대표작입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철학 자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더라도 쇼펜하우어라는 이름과 그의 대표작에 대해서만큼은 낯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 자신도 과학의 영향을 받은 실증주의에 대한 대립각으로서 '생의 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인물로서, 초인과 권력에의 의지를 주창한 니체의 철학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던 철학자로서, 그러한 영향력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면 실존철학에까지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는 세상에서의 삶의 가치를 냉소적으로 비웃었던 염세주의자로서 기억되는 '쇼펜하우어' 정도가 그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모두이지만, 그의 이름과 대표작은 아주 오랫동안 잘 알아온 것처럼 거북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듯 합니다. 아마도 그의 작품을 직접 읽는다면 그러한 편안함은 지적 나태에 불과했다는 것이 금방 탄로가 날테지만 말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독설과 냉소와 비판이 가득하다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삶 자체를 부정하는 염세주의자의 철학으로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낙관주의 철학으로 읽어내기를 시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생각하는 쇼펜하우어 철학이 담고 있는 '유머와 위트, 풍자와 결합한 예리한 통찰'을 그의 논문과 편지 등에서 발췌한 인용문들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 자신이 해석한 쇼펜하오어 철학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적고, 그 의견을 합당하게 지지해 줄 수 있는 쇼펜하우어의 글을 뒤이어 연결시켜서 소개하는 방식으로 씌여졌으니, 이 책은 엄격하게 말한다면 쇼펜하우어의 철학이라고 하기 보다는 랄프 비너(저자의 이름)의 방식으로 쇼펜하우어의 철학을유쾌하게 읽어내기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력을 겸손으로 위장한다', '진정한 예술의 원리는 자연이 증명한다', '부패한 언어의 속삭임에 속지 말라', 자연은 철저히 귀족주의적이다', '참된 가치는 죽은 후에 비로소 드러난다' 등 각 단원의 제목들은 그의 철학을 유쾌하게 이해하는데 근간이 되는 저자의 분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그러한 생각들이 쇼펜하우어 철학의 중심이라기보다는 저자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읽고 이해하면서 그의 철학을 유쾌하게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쇼펜하우어 철학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의 철학에 담긴 유쾌함이나 유머, 풍자 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실제로 독자의 입장에서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읽는다기보다는 랄프 비너의 쇼펜하우어를 이용한 세상에 대한 풍자 또는 유머 모음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철학이 이런 식으로 찢겨 읽히는 것은 바라지 않은 듯 합니다. 이 책에서도 여러 곳에 자신을 알려고 한다면 자신의 저작 전체를 읽으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책을 통해 익숙한 듯 하지만 결국 제대로 알지 못했던 쇼펜하우어 사상의 일면을 대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즐거움이 되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유쾌하게 읽는 것에 앞서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해서 제대로 읽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앞서는 것은, 처음 시작할 때 쇼펜하우어의 철학사상 전체에 대한 조망을 기대했는데 결국 이 책을 통해서 얻은 것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자체에 대한 좀더 깊이있는 이해보다는 단편적인 해석과 글모음 -그것도 저자의 주관이 강하게 개입된 - 뿐이었다는 아쉬움 때문일 듯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게 남는 숙제는, 어렵겠지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어 보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날이 되면 이 책에 투자한 시간이 더 값어치가 나가게 되지 않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