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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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었을 때는, 경제적인 호황기를 만나 많은 수입을 올리고 멋진 집과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었던 남자, 아이들에게 멋들어진 아빠였고 자신의 아내에게는 믿음직스러운 남편이었던 한 세일즈맨,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가득했던 삶을 살았던 세일즈맨 윌리..... 한때 희망을 가슴에 가득 안고 꿈꾸는 사람이었던 주인공 윌리는, 이제 예순이 넘은 나이든 노인의 모습으로 힘겹게 자신의 세일즈 가방을 들고 무대에 등장합니다. 수십, 수백, 아니 하루 종일을 자동차로 달려가도 그의 세일즈를 반겨주는 사람이 없이 고군분투하는 늙은 세일즈맨으로, 회사에서 월급도 제대로 못받고, 그때 그때 올리는 실적에 따른 커미션과 부족한 부분은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성공한 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가정을 꾸려나가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남편으로, 그리고 다 자랐지만 가정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무능력자와 건달인 두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그는 무대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는 과거의 화려했던 자신의 삶에 대한 기억과 성공을 눈앞에 둔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던 큰 아들 비프에 대한 회상, 고향을 떠나 큰 성공을 거두어 그에게 자랑과 희망과 꿈의 실체가 되었던 형 벤의 환영이, 앞뒤가 꽉 막혀버린 늙은 세일즈맨으로서의 자신의 현실과 교차되며 그에게 닥친 삶의 곤궁함과 위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습니다.    

 좋은 호시절이 지나고, 불황이 찾아오고 나이가 들면서 회사에서 냉정히 버림받는 윌리, 그리고 그 여파로 사회와 가정에서 마저 건강한 관계가 무너져 내려가는 그의 모습은 분명 지금 현실속에서 우리가 겪는 직장과 사회와 가정사의 이면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결국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자살을 감행하고, 쓸쓸하게 마감되는 그의 장례식의 모습속에는 한 사회의 조직원으로서 한때를 치열하게 살았지만, 한발짝, 두발짝 중심에서 밀려나 소외되고 버림받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겹치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윌리의 마지막 모습이 우리가 사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충격적이라거나 비인간적이라거나 비도덕적이라기보다는 그냥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밀어내는 사람들도 밀려나는 사람들도 이제는 그러한 세상사의 이치에, 사람들사이의 애정이나 존경보다는 물질의 가치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것에 대해 묵언의 동의를 하고 자신의 삶을 그 안에 기꺼이 던지고 살아왔을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속에서 그러한 동의를 하고 산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몰락 과정에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꾸만 과거에 집착하는 윌리의 모습을 보면서 단지 그런 모습이 물질만능시대의 힘없는 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스스로에게 많은 불편감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한 세일즈맨의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것이 단순히 이 시대가 우리에게 지우는 짐에 대한 두려움이나 무기력함만이 아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잘나가던 시절의 외도로 전도유망하던 아들의 장래를 결정적으로 망쳐버렸던 사건, 비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서지 못했던 나약함, 윌리의 기억속에 남겨진 호시절에 물질적인 풍요 이상의 것에 대한 성찰을 가지지 못했던 영혼이 마취된 삶의 모습 등에서, 단지 이 작품을 물질만능시대에 소외당하는 인간에 대한, 허망한 꿈을 좇아 헤매다가 스러진 한 소시민에 대한 비극이라고 단정할 수 만은 없는, 차라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더 진지하고 영리하게 삶을 꾸리지 못한 한 인간, 한 소시민으로서의 윌리, 그리고 지금 현실속에서의 삶의 안일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나태함에 대한 작가의 예리하고 냉철한 지적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이 작품 속에 교묘하게 섞인 듯한, 삶에 대한 찬양과 죽음에 대한 진혼곡의 울림을 마주하게 됩니다. 윌리처럼 현실에 취해서 자신을 세상이 가는대로 흘러가게 만들었을 때, 영혼을 돌보지 못하고 물질의 유혹에 자신의 영혼을 모두 넘겨 버렸을 때, 결국 우리의 삶 역시 그의 마지막처럼 죽음으로 스스로 돌진하여 퇴장당할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조금 더 지혜롭게 생각하고 조금 더 진지하게 삶을 설계하고 가꾼다면, 죽음이 유혹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삶을 향해 더 멋지게 돌진할 만한 용기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결국 한 사람의 의지보다 시대의 조류가 더 매섭게 느껴지기에, 많은 윌리와 같은 이들에게는 이 작품이 이 시대를 사는 소시민들의 죽음에 이르는 진혼곡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그 이면을 생각하고 느끼고자 하는 어떤 이들에게는 삶에 대한 또다른 예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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