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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인간의 경제학 - 경제 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탐구
이준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극히 합리적이기에 또한 지극히 이기적이기도 한 '호모 이코노미쿠스 (경제적 인간)'는 기존의 경제학이 설정한 이상적인 인간상입니다. 그것이 이상적인 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통 경제학은 그런 인간상을 설정하여 모든 경제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지극히 소시민적인 눈으로 보더라도 우리 자신의 모습은 그러한 이상적인 인간상과는 거리가 멀고, 지극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경제학자들의 여러가지 가설과 설명들은 현실을 빗나가기 일쑤입니다. 이상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와 현실의 인간 호모 사피엔스와의 간극에서 비롯된 차이가 그 이유의 하나이겠지만, 여전히 정통 경제학은 인간 행동에 담긴 비합리성을 설명해 내지는 못하거나 또는 그러한 비합리성을 고려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듯 합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현실의 인간과 이상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 사이의 간극을 설명해 주는 이야기들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행동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또는 그러한 내용을 담았다는 설명을 통해 시선을 끈 책들인데, 이 책에서는 '행태 경제학'이라는 용어로 소개되었고, 영어로는 모두 Behavioral economics이니 서로 다를 바 없는 동일한 개념입니다.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시간이 지나면 용어가 정리되겠지만, 서로 혼용되고 있는 이런 부분을 생각하면 다소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면도 있습니다.
행태 경제학의 특징이라면 무엇보다도 기존의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지향하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상을 포기하고, 인간의 행동속에 담긴 비합리성, 또는 심리적인 요인들에 대한 고려를 담고 있다는 사실일 듯 합니다.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반드시 이득을 좇아 합리적이고 이기적으로 판단할 지 모르지만 현실의 인간은 때로는 감정적으로 때로는 직관을 따라 그리고 때로는 공정성이나 대의명분을 따라 판단을 달리하기도 하고 지극히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러한 행위의 본질을 찾아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는 여러 실험결과들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하기에 행태 경제학이 말하는 여러 사실들 속에서 훨씬 우리의 모습과 닮은 친근한 인간상을 접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 말하는 '36.5℃ 인간의 경제학'이라는 표현이 뜻하는 바일 것입니다.
나의 기억으로는 기존의 행태(동) 경제학에 대한 소개서들은 거의 모두가 외국사람에 의해 씌여진 책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자기 나름의 연구결과를 행태 경제학과 연관시켜 풀어낸 것도 있었지만, 대개가 기존의 행태 경제학의 연구 결과물들을 이 책처럼 나름대로 정리하여 소개하는 책들이었던 듯 합니다. 그래서 서로 겹치는 내용들도 상당하였고, 읽다보면 '어디서 본 듯한 내용인데'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들도 있었는데, 아마도 이 분야의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책 역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경제학자인 저자가 집필하기는 한 것이지만, 자신의 연구내용이 아닌 기존의 생태 경제학에 대한 소개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자신도 이 분야에 정통하지 못하고 아직도 배워가고 있는 단계라는 의미에서 함께 읽고 관심을 가지자는 초대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경제학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의 모습을 지닌 경제학을 직접 소개하고 또한 그 안에서 더 나은 답을 찾아가고자 하는 첫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행태 경제학이 말하는 휴리스틱, 닻내림효과, 부존효과. 틀짜기효과, 심적회계, 공정성에 대한 인간의 태도 등을 읽다보면 정말로 우리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곤 합니다. 그래서 처음 행태경제학에 대한 내용들을 접하면서는 합리성을 고집하는 정통 경제학의 도도함에 대한 시원스런 물세례를 넘어선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행태 경제학에 의해 더 많은 인간의 비합리적인 경제성향이 지적될수록 아마도 정통경제학은 그리 알려진 비합리성을 인정하고 통합하기보다는, 그러한 비합리성을 합리적으로 제거한 더 합리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창조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그러한 모습이 과학 또는 학문이 추구하는 바가 아닐는지..... 하지만 지금은 시작이니, 아직은 사람의 체온을 느끼게 만드는 따끈하게 데워진 인간의 경제학을 즐길때입니다. 미래의 언젠가는 이러한 따뜻함마저 과학과 경제학과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제거되어버릴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