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랜드 - 신경심리학자 폴 브록스의 임상 기록
폴 브록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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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드르 루리야, 올리버 색스. 신경과학 중 특히 신경심리학이란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보았을 이름입니다.  좀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책 한두권 쯤은 읽었을 것이고, 책속에 담긴 여러 뇌손상이나 뇌질환으로 인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일상적으로 대하던 세상이나 사람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소설같은 삶들을 대하였을 것입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질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설같고, 한편으로는 소설같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기이한 이야기들이 바로 이러한 사람들 -우리 뇌를 들여다보며 그 신비함을 탐구했던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나 카를 구스타프 융과 같은 이들이 정신분석을 바탕으로 정신병이나 신경증 등을 통해 사람들의 내면 깊숙히 숨겨져 있던 심리학적인 문제들을 세상에 들춰내기 시작하면서 우리 정신세계의 이해를 위한 바탕을 마련하여,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것이 1세기하고도 조금더 전의 일이었는데, 아마도 지금의 신경과학자들이나 신경심리학자들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뇌의 여러 질환과 증상들에 대한 임상증례들의 소개 속에도 그러한 경이로움과 영향력이 내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소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특이해서 단순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거리에 머무는 것들이 아니라,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이 그랬듯이 그러한 증례들 속에는 우리의 존재나 자아, 의식, 그리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에 대한 연속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심오한 전망과 경이로움을 담고 있다는 생각때문입니다.  

 신경과학을 비롯한 뇌를 연구하는 여러 학문들이 아직까지 우리에게 상당히 낯선 것이 사실인데, 그래도 뇌를 촬영하는 다양한 영상학적 진단방법 개발되어, 우리 뇌를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가능해지면서 신경심리학과 같은 학문분야가 훨씬 흥미로워지고, 그러한 흥미로움이 우리의 시선을 끄는 이유일 것입니다. 실제로 알렉산드르 루리야나 올리버 색스의 책들을 읽다보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주인공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이 앓고 있는 질환과 증상들이 마냥 신기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두사람의 책은 실제 임상증례에 대한 3자로서의 객관적인 증상의 관찰과 그와 연관된 뇌의 이상 부위에 대한 설명의 형식이기에 그들의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도 그러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는 떨어져있는 타자로서의 더 객관화된 느낌을 가지기 바라볼 수 있었던 듯 합니다. 흥미롭과 관심을 끌지만, 내 자신의 문제, 내 등뒤에 지워져 있는 내 짐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의 불행한 질환 또는 삶에 대한 이야기로 들리곤 하기에 그러한 질병과 함께 나타난 여러가지 증상들이 한 사람으로서의 나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성찰없이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의 두 사람의 책들과 이 책의 차이점이 분명해집니다.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도 대부분은 저자가 다루었던 환자들의 증례이겠지만, 저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나와 무관한 사람이 아닌 바로 나의 이야기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관점은 이야기 속 주인공의 삶을 저자 자신과 읽는 독자들까지도 자신의 일처럼 되뇌이게 만들고, 그러한 과정은 여러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부단히 나의 대답이나 생각을 묻곤 합니다.  

 저자는 책에 소개되는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서, 단순히 특이한 증례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을 자신이 의도한 세계로 이끌고 갑니다. 어제도 존재했고 오늘도 존재하고 내일도 존재할 '나'라는 사람이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근간이 되는 그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기억의 문제라면 잃어버린 기억과 시간속에 존재했던 나는 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나를 나로 표현해 주는 자아란 무엇인가? 또한 의식이란 무엇인가? 머릿속 어디에 '나'라는 자아 또는 의식이 존재하는가? 등등 '나'와 자아, 의식과 영혼 등의 실체에 대한 질문들..... 아마도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안겨주고 싶었던 생각거리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머릿속 어디를 뒤져보아도 마음이나 자아, 의식이라는 개념이 담겨있을 장소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해야 할 것인지...... 저자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마음이나 자아, 의식이나 영혼이라는 것은 '우리 뇌의 작동의 결과이고 우리 뇌가 물리적, 사회적 세계를 통과하면서 만들어낸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그러한 것들은 '과정과 상호작용에서 생겨난 것이지 구체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나라는 존재가 생각, 느낌, 의도 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 느낌, 의도 등이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낸다' 또는 내가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가 나를 말해준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잘 드러내 주고 있는 부분이 바로 '텔레포테이션과 복제인간'이라는 장에 담긴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그리고 자아란 무엇이고, 의식이나 영혼과 두뇌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등등..... 아마 저자는 자신의 환자와 학문이 다루는 영역을 통해서 이러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진지하게 던져보고 싶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 던지기는 앞으로 우리의 두뇌를 다루는 여러 학문들을 통해 우리가 대하게 될 미래와 우리 자신에 대한 진지한 사색을 요구하는 듯 합니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나'는 누구라는 질문이나 대답이 의미가 있을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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