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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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도날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카타 우파니샤드- 

 이야기의 처음을 선문답처럼 들리는 이러한 구절로 시작한 것은 이 글속에 분명 저자가 이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주제가 담겨 있기 때문일 듯 합니다. 저자가 500여 페이지가 되는 두툼한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문제 의식은 바로 구원에 이르기 위한 험난한 여정 또는 우리 삶에서 구원을 대면한다는 것  자체의 어려움이나 난해함에 대한 간접적인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면도날의 칼날을 넘어선다는 것, 그리고 구원에 이른다는 것 등은 어쩌면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 이상의 영역, 곧 신의 영역이고 믿음이 필요한 종교의 영역이라고 해야할 수도 있을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구원이라는 그러한 거창한 주제를 조금 더 우리 삶에 가깝게 끌어 내려본다면 아마도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대신해도 될 듯 합니다. 

 전쟁에서 자신을 구해 주었던 전우가 눈앞에서 싸늘한 주검이 된 경험을 하면서, 삶에서 썩어 문드러질 고기덩어리 이상의 의미를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청년 래리.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방황과 고행(?) 등은 아마도 앞에서 언급한 한 영혼이 구원으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면도날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현실적으로 매력적인 직장을 뿌리치고, 약혼자와의 결혼까지 뒤로 미루고, 시카고에서의 가족과 친근한 이들과의 교류마저도 무심하게 뒤로한 채, 그는 낯설은 파리에서의 생활을 시작으로 독일과 중국 및 기타 동양의 여러 나라들을 떠돌고, 인도에서의 수행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고단한 여정을 꾸려 갑니다. 그러한 여정 가운데 그의 삶은 때로는 도서관에서 공부로 때로는 뒷골목의 술집이나 식당에서의 체험으로, 때로는 고단한 탄광 생활이나 농장에서의 노동으로, 그리고 때로는 수도사들과의 공동체 생활이나 인도 수행자들 속에서의 수행으로 채워집니다. 비록 저자 자신이 화자로 나서서 들려주는 형식이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바로 래리의 이러한 삶의 목적 또는 의미를 깨닫기 위한 고단한 여정에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래리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일을 하면서 자신이 깨닫은 것들을 실천하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가 찾던 것의 어렴풋한 그림자나마 얻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가 말하는 미래의 삶에 대한 계획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그러한 구도자로서의 삶은 계속되어야하는 진행형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듯 합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저자가 말하는 주제를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구도자들의 삶이나 여정이라고 규정하는 것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생각한다면, 즉 우리 각자가 고행이나 수행에 참여하거나 어떤 종교의식에 동참하지 않더라도 자기 나름의 구원에 이르기 위한 -삶의 의미를 찾거나 만들어 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일상의 삶속에 투영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각사람 개개인이 나름대로 면도날을 넘어서기 위한 지난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주인공인 래리에게만 집중되었던 독자들의 시선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 속의 다른 인물들에게까지 이를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엘리엇은 끈질기게 상류사회를 동경하고 사교계에 남아있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으로 그 자신이 넘고자한 면도날을 보여 주었고, 소피는 자신에게 닥친 삶의 불행을 술과 마약 그리고 남자들로 채우다가 결국은 면도날에 베여 넘어진 경우이겠고, 래리의 약혼자였던 이사벨은 결국 자신을 사랑한 그레이와 결혼하기는 하였지만 옛사랑의 그림자를 다 지우지 못하고 현실과 욕망사이를 오가며 면도날 위에서 중심을 잡고자 곡예를 펼치고 있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테니 말입니다. 그리 본다면 인간 개개인에게는 나름대로 넘어서야 할 면도날의 의미가 다 제각각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참인가 거짓인가 하는 가치판단의 문제는 차치하고서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이야기의 형식이 저자가 화자가 되어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을 들려주는 형식이기에 주제의 묵직함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긴장감보다는 차분함이 또 때로는 그러한 차분함이 과하다 못해 느슨함으로까지 느껴지곤 합니다. 분명 주인공인 래리가 화자가 되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면도날을 넘어서기 위한 내면의 갈등이나 좌절, 그리고 때로 느꼈을 환희나 감동 등에 대해서 훨씬 더 생생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저자는 그가 스스로 이러한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으로 담담하게 주인공들에게 있었던 이야기들과 그가 전해 들었던 내용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면도날을 넘어선다는 것,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찾기 위한 과정과 그 과정에서 얻은 결과물에 대한 주인공의 생생한 이야기보다는 어렴풋하게 다가오는 그림자만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한편으로는 그 의미가 비록 저자가 그러한 주제를 독자들에게 던지고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자신만의 결론으로 뭐라 우길 수 없는 그러한 종류의 문제이기에, 여러 인물들이 그 자신의 삶을 통해 내보이는 각자의 삶에 대한 사랑과 좌절을 보면서 독자 자신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의미를 묻고 숙고해 볼 것을 권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살던 시대와 공간이 분명 많은 차이가 있기에, 특히나 바쁜 현대인에게는 더더욱이나 사치스럽게 느껴질수 있는 래리와 다른 주인공들의  '삶에 의미에 대한 고민'과 '자신의 삶에 대한 몸부림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역설적으로는 가장 필요한 우리 자신을 위한 삶의 자양분이지 않을는지..... 책장을 덮으며 한번쯤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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