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적 충동 -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J. 쉴러 지음, 김태훈 옮김, 장보형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잘 나가는 듯 하던 세계 경제가 고꾸라지기 시작한 것이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이제는 실물경제에까지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고, 어느 덧 한편에서는 바닥을 지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 멀었다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지금의 위기는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불거진 것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책에서는 한꺼풀 더 벗겨 들어가서, 미국사람들의 자기 집을 소유하기 위한 과도한 탐욕과 쏠림, 그리고 그러한 자기 집을 가진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과도하게 격려하며 부실의 위험을 방조한 미국 정부의 정책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따져본다면, '그러한 부실이 커지는 동안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위험을 감수하며 투자하던 상품들이 어떤 것을 계기로 또는 어떠한 이유로 하룻밤 사이에 부실덩어리 공포로 변해 버렸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는 것은 당연할 것 같습니다. 어제까지, 또는 지난 달까지는 조금 위험할 수는 있지만 많은 수익을 보장할 것만 같았던 많은 금융상품들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휴지조각과 다를 바 없거나 어마어마한 빚더미로 변하게 된 것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많은 경제학자들은 자신감의 상실과 신용의 붕괴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합리성을 추구하는 기존의 경제학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설명이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로 경제학에 대한 책 어디를 찾아보아도 그런 용어를 경제학의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고 있는 것을 찾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기존의 경제학이 이번의 금융위기에서 촉발된 세계적인 위기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앵무새처럼 자신감과 신용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을 때, 이번 경제위기의 실제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거기에 해결책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진지한 논의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의 세계 경제 위기만이 아니라 기존의 공황과 호황이 반복되고, 부동산 시장이 주기적인 부침을 겪고, 금융시장과 기업투자의 심한 변동성 등에 대한 이야기를 기존의 경제학이 말하는 개념이 아닌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풀어내고 있습니다. 케인즈가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인간의 적극적인 활동의 대부분은, 도덕적이거나 쾌락적이거나 또는 경제적이건 간에, 수학적 기대치에 의존하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만들어낸 낙관주의에 의존하려는 인간의 불안정성이 판단과 결정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인간의 의지는 추측컨대, 오직 '야성적 충동'의 결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뿐이며, 수량적인 이익에 수량적인 확률을 곱하는 식의 계산적 이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 부분에 들어있는 '야성적 충동'이라는 말과 그에 담긴 의미 안에 앞에서 말한 여러가지 경제 문제에 대한 대답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즉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라는 가정하에 설명되곤 하던 기존 경제학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불안정한 자신의 감정과 판단 등에 의지해서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고려하여 여러 경제 문제들을 들여다 보고 해답을 구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저자들은 경제의 숨겨진 작동원리로서 작용하는 야성적 충동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자신감', '공정성', '부패와 악의', '화폐착각' 그리고 '이야기'의 다섯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이러한 다섯가지 사항의 다양한 조합에 의해서 그동안 우리가 의아해 하던 여러가지 경제적인 문제들이 발생했고 또한 설명될 수 있음을 열정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케인즈와 애덤 스미스, 아마도 국가의 간섭과 시장의 자유방임이라는 경제학의 양극단의 축이 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의 위기상황 이전에만 하더라도 애덤 스미스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에 의해 주창된 세계화와 시장 자유화 등의 가치가 국가 경제의 유일한 추구의 대상인양 선전되었던 기억입니다. 이번의 위기로 전세가 역전되어 케인즈주의자들의 득세가 유난스러운 듯 그것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지금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또한 그에 대한 해결책을 얻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인간이 아닌 야성적 충동에 사로잡힌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그 안에서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기존의 경제학자들이나 관료들도 자신감의 상실이나 신용의 붕괴 등을 이야기하며 머리를 싸매고 있는 상태라면, 더더구나 저자들이 말하는 그리고 그 이전에 케인즈가 말했던 '야성적 충동'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공감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현실의 독자들에게 경제학의 또 다른 면모를 생각하게 하고, 또한 눈앞의 여러 경제 현실을 바라보는데 좀더 유연하고 실제적인 관점을 제공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짧은 소견이지만 염려스러운 것은..... 현재의 위기에 너무 정신이 팔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일관한 뒤 언젠가 이 위기가 지나간다면, 그리고 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노력들이 다시 지나치게 한쪽 극단으로 쏠리게 된다면, 아마도 그러한 쏠림이 또 다른 위기의 단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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