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잭 린치 지음, 송정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말장난처럼 들리는 제목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렴풋이나마 그 의미를 알 듯 합니다. 흐릿하던 그 의미는 책장을 넘기며 저자의 의도를 알게 되는 과정에서 뚜렷하게 머릿속에 정리되는데, 당대에는 평범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법한 셰익스피어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대한 문호가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다양한 영역에서 존경하던 영웅들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1616년 4월 25일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묻힌 셰익스피어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셰익스피어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깨닫게 되는 한 사람의 문화 영웅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실은, 우선은 실제 존재했던 인물과 역사속에서 다듬어지고 미화된 영웅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게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간극으로 인한 씁쓸함보다는 우리에게 영웅이 있다는 것과 그러한 영웅의 이미지는 역사와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이 어떤 식으로 편집되고 개정되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셰익스피어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그가 쓴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몇 년, 몇십 년, 몇 세기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매우 유능한 극작가가 인간을 꿰뚫어보는 신 같은 존재로 바뀌는 긴 여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저자의 이 말을 달리 생각해 보면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바라보는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들은 그가 혼자서 일군 것들이 아니라는 것, 그가 지금의 성취를 위한 모든 것을 완결하지 않았다는 것, 그보다는 그의 후대의 많은 이들의 노력이 훨씬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결과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원래 작품들이 등장인물에 대한 탁월한 성격묘사를 통해 관객들이 등장인물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는 것, 언어와 심상을 교묘하게 다루고, 배우들이 쉽게 말하고 외울 수 있는 말들을 사용했고, 왕족이든 보통사람이든 학자든 문맹자든 관계없이 모두가 다가갈 수 있는 매력을 지녔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형편없는 줄거리와 시간과 장소와 행동의 3일치 법칙에 대한 무시, 말장난이 심하다거나 예의에 대한 부적절한 개념, 희극과 비극을 구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섞어놓았다거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나 비난을 받았던 '좋은 시인이고 극작가이기는 하지만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던 셰익스피어가 타고난 천재로 변신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시대와 사람들과 환경의 절묘한 조합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종교 갈등과 정권의 변천 과정에서 셰익스피어가 살아나고 개신교의 박해 속에 연극이 유해한 오락거리로 전락한 이유로 다시 부흥하기 시작한 연극계가 새로운 희곡이 없어서 더 많이 그의 작품을 올리게 되고, 반복되는 공연과 스타의 탄생, 인기의 상승과 함께 그의 작품에 대한 여러 사람의 연구와 내용의 개정,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미적 관념 등에 맞지 않는 내용을 개선하는 과정을 넘어서 제멋대로 고치고, 길들이고, 위조하는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셰익스피어는 드디어 모두가 원하고 숭배하는 셰익스피어가 됩니다. 즉 1616년 관속에 누웠던 셰익스피어와 그의 많은 작품들은 원래의 모습을 상당부분 잃어버렸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영웅으로서 완벽하게 변신하게 되었고, 그러한 사실은 앞으로도 위대한 셰익스피어는 사람들의 바람과 성원속에 여전히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영웅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나 그의 작품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사후에 일어났던 그의 작품을 다루고 공연하고 이용했던 역사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는 살아생전의 셰익스피어가 아닌 그가 죽은 이후로 다양한 형태로 변행되고 만들어진 셰익스피이며, 미래의 셰익스피어는 또 다른 모습을 지닐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가끔씩 그의 작품에 대한 원작자가 누구라는 식의 논란은 의미가 없어지고 -실제로 저자는 오늘날의 셰익스피어 실존했던 셰익스피어가 아니라고 인정하고, 그의 작품 역시 수많은 개작과 교정, 삭제와 첨가의 과정을 거쳤다고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현재의 셰익스피어는 역사의 무대로 사라지게 하지 않고 지속적인 생명력을 지닐 수 있게 그를 불러내곤하던 우리가 만든, 그리고 우리가 원하던 셰익스피어라는 사실이 더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들이 변질과 조작의 씁쓸한 의미보다는 위대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우리 각자의 의미와 역할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그리고 그러한 작품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에게 셰익스피어와 같은 대단한 영웅이 없다는 것에 대한 의미심장한 이유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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