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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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식적인 면에서 이 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던 소설과는 상당히 다르게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시작은 작가와 이름이 같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라는 미국인이자 유대인인 주인공이 자신의 할아버지를 나치로부터 구해 주었다는 오거스틴이라는 여인을 찾아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것으로 이야기가 비롯되지만, 주인공과 여행했던 알렉스라는 청년과 그의 할아버지, 그리고 암캐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주니어의 여행기와 알렉스가 주인공에게 보낸 편지들-여행과 이 소설의 내용에 대한 것들을 주로 이야기한- 그리고 과거 트라킴브로드에서 조너선의 조상들의 삶이 시작되어 나치의 학살로까지 이어지는 과거의 이야기들이 함께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즉 과거와 현재, 그리고 편지를 통해 나누는 간접적인 방식의 접촉을 통한 이야기가 반복되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들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끝까지 읽기 전까지는 밝혀진 것이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고, 끝까지 읽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아야 할 밝혀진 것들에 대한 진실은 상당히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아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이 과거 할아버지의 생명의 은인을 찾아 미국에서 우크라이나까지 달려온 것은 단지 조상들의 과거에 대한 되새김보다는 그러한 과거에 대한 기록의 목적이 더 컸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주인공은 여행내내 그의 수첩에 뭔가를 적곤 하였고, 알렉스의 편지에도 조너선이 여행을 통해서 얻은 사실들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그것을 알렉스에게 보내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말입니다. 아마도, 조니선은 여행의 시작에서는 실제 내용이 어찌되었든 상당한 이야기거리와 볼거리를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많이 변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할아버지가 살았던 트라킴브로드의 모습을 보게 되고, 과거 그 안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오거스틴으로 대표되는 사람들에 대한 만남,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당시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몇가지 파편정도는 기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주인공이나 안내자들의 기대와는 무관하게, 여행에 나선 일행은 이내 조너선이 찾는 트라킴브로드라는 지명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아예 기억되지 못하고 망각에 잠겨 있고, 그 안에서 일상을 일구다가 나치의 폭력에 목숨을 잃은 많은 이들에 대한 흔적은 망각된 트라킴브로드와 함께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음을 목도하게 됩니다. 오거스틴이라고 주장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할머니가 트라킴브로드로 데려가 주긴 했지만, 거기에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고, 아마 알렉스의 할아버지는 얼마만큼의 진실을 알고는 있는 듯하나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고, 그 전에 만났던 많은 우크라이나 인들은 아예 트라킴브로드라는 지명 자체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크라이나의 트라킴브로드와 그 주위에 있던 마을들에도 세계대전의 회오리가 몰아쳤고, 나치에 의한 유대인의 학살이 잔혹하게 진행되었습니다. 1791년 트라킴브로드에서 트라킴 B의 마차가 브로드 강바닥에 빠진 뒤 그 시체를 찾지 못하고 한 아이만이 떠올랐던 사건에서 비롯되어 150여년 동안 지속되었던 1942년의 트라킴 데이 축제 때, 이 마을에 나치의 폭격이 몰아쳤고, 그 폭격을 피해 강물로 뛰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엉켜 익사하게 됩니다..... 하지만 과거를 더듬으러 온 주인공에게 현실속의 우크라이나는 그러한 과거의 악몽을 깨끗이 망각하고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습니다. 트라킴브로드에 살던 사람이 누구였고 어디에 있는지도, 그곳에서 있었던 사건이 무엇인지도, 그리고 그곳에 트라킴브로드라는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확실하게 알려주지 못한채 망각에 잠겨 있습니다. 그러한 현실속의 망각을 헤집어 벌려놓은 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밝혀진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내용이 주인공의 여행을 통해서 얻어진 사실이라기 보다는 단편적인 사실에 소설적인 상상력을 이어서 만든 이야기일지라도,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망각된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리고 부끄러움을 감추고자 의식아래로의 소멸을 강요당한 망각의 교묘함,  그 망각속에 담긴 진실과 그에 대한 진솔한 반성.... 바로 이런 것들이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은 현실속에서 완벽하게 망각된 트라킴브로드..... 아마도 함께 살던 유대인의 학살을 차마 항의하거나 막아서지 못했던 우크라이나 인들의 과거의 부끄러운 상처에 대한 현실적인 반응의 결과물이겠지만, 우리 삶의 많은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완벽하게 망각되는 트라킴브로드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또한 밝혀지기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 그러한 것들이 우리가 진정 깨닫고 알아야 할 것들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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