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음은 몸으로 말을 한다 - 과학과 종교를 유혹한 심신 의학의 문화사
앤 해링턴 지음, 조윤경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현대 의학이 이룬 많은 발전의 한 가운데는 모든 질병에는 그에 합당한 원인이 있고, 몸에는 그 원인에 상응하는 변화와 증상이 나타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이 환자를 대할 때면, 그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에 상응하는 여러가지 변화를 밝혀내기 위해 무수한 검사를 실시하곤 합니다. 혈액검사나 X-ray 검사 등은 기본이고, 의심되는 증상에 합당한 초음파, CT 촬영, 조직검사 등의 다양한 검사를 실시하여,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만들어내는 원인을 찾아 나섭니다. 이처럼 질병을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는 방식은 실제로 많은 성공을 거두어, 여러 감염증이나 고혈압, 당뇨 등의 만성 질환, 심장병이나 기타 희귀 질환 등에 대해서까지 다양한 치료방법을 개발해 내었고, 또한 많은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성공은 질병에 대한 접근이나 치료방식이 기존의 생리학적인 관점을 벗어난 것들에 대해서는 미신이나 사이비 등의 딱지를 붙여 의학의 울타리 너머로 밀어내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기존의 의학적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현상들 -즉 일종의 신경성 질환 등과 같은 증상은 있으나 생리학적인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이 있고, 일부에서는 주류 의학의 기존의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고 통합의학이니 전인주의적인 접근법이 의료현장에서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대다수의 주류 의학의 각 영역은 자신들의 바탕이 되는 물리주의(physocalism)를 견고히 고수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그러한 의학의 견고한 물리주의가 해결해 주지 못한 질병을 가진 이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다양한 증상 -통증, 두통, 무력감, 피로감, 수면장애, 기분변화 등-을 겪고 있지만 그 원인을 찾을수 없어 의사들의 적극적인 진료에서 소외된 사람만이 아니라, 만성 질환이나 암 등의 말기 질환, 또는 희귀 질환으로 '치료법이 없거나 치료법이 있더라도 효과를 장담할 수 없거나 안전하지 못하거나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병세를 완화하는 정도'의 의학적인 처치밖에 받을 수 없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보통 마지막에는 의학의 변두리에 있는 대체의학적인 치료법이나 의학의 담장 너머로 밀려나 있는 민간요법, 아직까지 의학의 인정을 받지 못한 위험스런 치료법, 심지어는 점쟁이나 굿을 하는 사람에게 달려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하는 심신의학도 그러한 경계부근이나 너머에 있는 분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 중세 시대의 퇴마의식이나 최면술에 의한 치료적 접근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겠지만,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명상이나 요가, 긍정적인 사고와 행동의 힘, 플라시보 효과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의학의 영역에서 밝히고 이야기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는 듯 보이니 말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기존의 정통 의학이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하던 방식이 아닌, 질병에 환자 각개인의 '마음과 성격을 그려 넣은 이야기'로서 파악하고자 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몸과 마음이라는 이원론적인 구분으로 환자의 마음이라는 측면이 배제된 몸에 대한 이야기만이 정통 의학에서 다루어졌다면, 이 책은 마음을 다루는 의학 또는 마음의 작용을 통해서 환자를 치료하고자 했던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심신의학이라는 묶음아래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여러 심신 치유의 이야기에는 다양한 성공의 이야기도 섞여 있고, 기본적으로 저자는 그러한 각개 심신의학적인 치료법들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기 보다는, 역사와 문화속에 담긴 여러 심신의학의 변화와 모습을 살피고, 그 안에서 현대 의학이 경청할 만한 것을 찾아서 새겨 들었으면 한다는 의도를 내보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더 적극적으로 '인간이 원하는 대로 몸을 조작하고 만들 수는 없지만, 인간의 몸이 전적으로 마음을 따른다'는 생각도 숨기지를 않습니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여러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는 질병이나 몸에 대한 개념들을 바꾸어 왔듯이, 또 시간이 흐르고 의학이나 과학이 저자가 말하는 심신의학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질병에 대한 더 풍성한 접근법과 치료법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소망까지도 느껴진다고 할까요.....
여섯개의 내러티브 -암시의 힘, 말하는 몸, 긍정적인 사고의 힘, 현대의 삶이 망가지다, 병을 치유하는 인간과의 끈, 동쪽으로의 여행-를 사용하여 자신이 역사적, 문화적으로 살핀 심신의학 각각에 담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저자의 방식은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심신의학을 이해하고 발전시켜가는 과정, 의학의 발전과 인간 지적능력의 향상과 함께 더 정밀해지고 더 나은 효과를 발휘하는 방식들을 찾아내고 또한 스스로 발전해가는 심신의학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중세의 '악령 홀림'과 '퇴마 의식'의 동물자기와 관련한 메스머 의식으로의 변형 그리고 19세기 최면에 의한 치료법을 다룬 '암시의 힘'편은 심신의학에 대한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시작을 이야기합니다. 2장 '말하는 몸'에서는 정신분석의 시작과 함께 재발견된 심신의학의 긍정적인 시작을 소개하고 있고, 3장 '긍정적인 사고의 힘'은 질병의 치유의 힘을 지닌 마음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4장 '현대의 삶에 망가지다'는 스트레스라는 개념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심신의학 나래티브의 변화 - A형 성격의 등장, 여러가지 질병의 발병과 확산을 스트레스라는 원인에서 찾으려고 하는 경향-를 이야기하고 있고, 5장은 환자가 친구나 가족, 각종 친밀한 사회 공동체를 통해서 사회적 지지를 받게 되었을 때의 치유 효과에 대한 긍정적인 논의를 담고 있고, 6장은 현대인의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동양의 여러 가치와 생활방식 -중국의 기공, 명상, 불교의 수행 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