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파키스탄 키라코람 산맥의 K2를 사랑한 , 그래서 그 정상을 정복하고 싶어한 한 산악인이 있었습니다. 죽은 누이동생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열렬히 그 산의 정상에 서고 싶어했고, 오로지 그 곳에만 눈길을 향하고 있었기에, 등정에 나선 동안에는 그 주변에 있던 것들에는 마음 한자락 주지 않았던 서구의 오만함을 지닌 건장한 산악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웅장한 그 산은 그의 건장함과 오만함, 그리고 짧은 안목을 질책하고 시기하듯, 그가 정상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혼자 외떨어져 길을 헤매며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는 고난을 안깁니다. 마치 사자가 자신의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려 사는 녀석만 품에 키운다는 전설같은 이야기처럼, K2는 자신이 품은 그 땅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해야할 일에 그가 합당한 사람인지를 시험이라도 하듯이, 자신에게 도전한 그가 길을 잃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게 합니다. 그의 이름은 그레그 모텐슨, 하지만 그가 일하는 파키스탄 지역에서는 보통 '닥터 그레그, 또는 '그레그 사하브'라고 불리웁니다. 자신의 조국 미국에서는 군인이기도 했고, 간호사로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가 일하는 지역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는 사람, 가난한 그들에게 조국인 파키스탄도 해주지 못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우리들 식의 사회사업가나 박애사업가라는 말이 더 폼나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에게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부르는 '닥터 그레그'라는 호칭이 그 어떤 말보다 더 의미있고, 폼나는 말일 듯 합니다. 

 다시 그가 등정에 실패하고 길을 잃고 헤맨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가 단순히 오만한 서구인으로서 K2를 정복하기를 원했던 사람에서, 그 땅을 근거삼아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공감하고, 자신의 일을 총과 미사일과 탱크로도 이루지 못한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완벽한 승리 비결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한 시작이 바로 K2 등정 실패뒤에 따라온 길잃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길잃음의 끝에 다다른 코르페 마을, 그리고 촌장 하지 알리와의 만남과 병약해진 그에 대한 가족같은 환대와 보살핌 속에서, 그의 눈에 그가 오르기를 원했던 산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황량한 땅만큼이나 힘든 삶을 사는 그들은 병원이나 의료서비스를 생각할 수도 없어서 상처의 고름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고, 그를 위해 잡은 숫양의 고기 뿐 아니라 뼈를 으깨 골수까지 뜯어 먹는 굶주린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아이들은 지붕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아무 책이나 필기구도 없이 땅에 글씨를 쓰며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아마 그는 깨달았을 것입니다. 동생을 위해 정상에 목걸이를 걸기위해 K2를 등정하려고 했던 일이 얼마나 하찮은 일인지..... 그리고 죽은 동생을 위해, 허허벌판에서 변변한 도구도 없이 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정말로 의미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지 알리에게 한 약속이 평범했지만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더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된 그의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알립니다. "제가 학교를 지어드리겠습니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첫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그는, K2가 자신에게 부여했던 삶이 코르페에 학교 하나를 짓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열정 하나로 시작한 그의 삶은 후원자의 도움으로 두개, 세개, 네개..... 의 학교를 짓는 일로 이어졌고, 이제는 십년이 넘게 파키스탄에 학교를 지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9.11사태 이후로는 그의 사업영역이 아프가니스탄까지 이어집니다. "테러란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어딘가의 사람들이 단순히 우리를 증오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죽음보다 삶을 선택해야 될 만큼 밝은 미래를 제공받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는 그의 말에 아마도 그가 하는 일의 진정한 가치가 담겨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단순한 테러에 대한 예방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죽음보다 삶이 더 가치 있다는, 너와 나를 구분해서 총을 겨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손내밀고 미래를 나눌 수 있는 공유의 삶이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과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는 면에서 그가 하는 일, 그가 사는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 안에서 우리에게 '당신도 할 수 있어요'라는 속삭임을 들으며,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도 함께 얻게 됩니다. 그의 삶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발티스탄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우리 방식을 존중해주어야 하네. 발티 사람과 처음에 함께 차를 마실 때, 자네는 이방인일세. 두 번째로 차를 마실 때는 영예로운 손님이고, 세 번째로 차를 마시면 가족이 되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네.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 닥터 그레그,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실 시간이 필요한 거야. 우리는 교육을 못 받았을지 몰라도 바보는 아니라네. 우리는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고 또 살아남을 사람들이야." - 그레그에게 일을 빨리 마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계 맺음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하지 알리의 조언 (p219) 

 "..... 전쟁이 벌어지면 기독교고, 유대교고, 이슬람교고 간에 지도자들이 '신은 우리 편'이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듣잖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신은 피난민과 미망인과 고아 편이에요." - 탈레반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아프카니스탄 난민의 실상에 대해 무관심한 백악관과 의회, 유엔 등을 거론하며 그레그 모텐슨이 덧붙인 말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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