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또르 씨의 시간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내 인생은 개 두마리 반이 남았습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리 말하는 사람에게 '왠 미친~'이라는 험한 눈길을 보내지 않을까 합니다. 이 표현은 페르낭이라는 환자가 정신과 의사 엑또르 씨와 상담하면서 자신의 수명을 이야기하는 방식입니다. 개가 보통 14에서 15년을 사니까, 애완견을 키우는 그가 자신의 반려자로 삼을 수 있을 개의 수명으로 자신에게 남아 있는 수명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아쉬움을, 또는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러가는 데서 오는 지루함을 일상에서 표현하며 살아가는데, 이 책은 엑또르 씨가 바로 사람들이 고민하는 시간에 대해서, 즉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또는 너무 더디게 흘러서 고민스러워하는 그 문제에 대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나선 여행 이야기이자, 읽는 사람이 시간에 대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하며 성찰에 이를 수 있는 여유을 가지게 해주는 치료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늦추고 싶어하는 사람, 시간을 앞당기고 싶어하는 사람, 그리고 페르낭처럼 시간에 대해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자신의 진료실에서 대하면서, 시간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같은 범주의 고민에 싸여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엑또르 씨는 그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몇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환자 자신이 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며 스스로 성찰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치료법을 시도하기로 결정합니다. 그가 떠난 시간 여행이란 바로 환자들에게 알려줄 만한 독특한 성찰의 방법을 찾아나서는 여행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여행에 대한 기록은 당연히 '시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직접적인 물음에서부터 시작하여 '시간에 내맡겨진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훨씬 철학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삶의 많은 부분을 건드리며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게 자극하고, 뭔가를 찾게 만드는 방법들에 대한 엑또르 씨의 답변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자신의 진료실에서 시작하여 북극과 어느 항구, 중국의 산골짜기에 이르기까지의 여행은 엑또르 씨 자신이 시간과 인생에 대해서 새로운 자각을 얻어가는 시간이기도 하겠고, 이것은 또한 작가 자신의 성찰의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당신의 수명을 개의 수명으로 계산해보라.' 엑또르 씨의 수첩에 첫번째로 적힌, 시간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제시하는 성찰방법입니다. 자신의 수명이 개 몇마리 정도가 되는지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엽기적(?)인 면이 있는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깨닫는데 도움이 될만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게는 엑또르 씨가 적은 이하 여러 방법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각인된 방법이었던 탓에 더 그리 느껴지는 면이 있겠지만, 그리 한번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내게 남은 시간과 인생을 훨씬 더 진지하게 여기고 바라보게 된다고 할 수 있으니, 어찌 되었든 엑또르 씨의 첫번째 방법이 내게는 제대로 먹혀든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외에도 25가지의 방법과 번호가 없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에 적은 '무위가 아닌 초연을'까지 합친다면 엑또르 씨를 통해서 작가가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방법은 28가지 (24와 24-1을 따로 생각했을 때)가 됩니다. 어느 하나로 말할 수 없는 다양하기도 하고, 기발하기도 하고, 너무 도식적으로 보이는 방법도 있고, 한편으로는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방법도 말하고 있습니다. 삶의 모양이 다양할 독자들에게 어느 순간, 어느 부분에서 마음을 확 뒤집으며 파고들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중 어느 하나는 분명 각각의 독자들에게 어필할 만한 숨은 힘을 지녔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뒤돌아보며 시간이 조금 빠르게 지나간다 싶었던 요즈음이었는데, 이 소설을 통해 만난 엑또르 씨를 통해 시간의 흐름 속에 묻혀있는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내 삶과 그와 연관된 많은 것들의 의미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 한편으로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던가 하는 반성에서 시작하여 어찌 마음을 추스리고 살아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한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엑또르 씨의 첫번째 방법이 나태해지려는 내게 신선한 자극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신의 인생에 개 몇마리가 남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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