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1반 34번 - 종잡을 수 없는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잡아주는 이야기
언줘 지음, 김하나 옮김 / 명진출판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아이가 자라서 학교에 가게 된다는 것.....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분명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한 아이가 이제는 마냥 어리광을 부리던 철부지에서 어엿한 사회 구성원의 한사람으로서의 몫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즉 규칙을 배우고, 절제를 배우고, 함께 나누고 돕고 또한 경쟁하는 것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 자기만 생각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시절을 지나서 이제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배워야 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마냥 용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규율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이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시작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입장에서 본 시각이겠지요. 마냥 자유롭던 아이의 영혼을 교육이라는 틀에 들여보내 같이 살아갈 사회구성원으로서 길들인다는 것은, 분명 어른들이 원하는 방식에 의한 어른들이 원하는 인간형으로 아이의 영혼을 물들이는 것일테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이는 그런 시간을 어찌 받아들일까요..... 많은 아이들은 아마도 무리없이 그런 교육의 틀안에서 자라갈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자신의 재능을 죽이고, 자신의 꿈을 사그러뜨리며 순응하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는 많은 아이들의 상처와 절망과 고뇌가 가득하다는 것 또한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심한 아이들은 그러한 상처와 절망과 고뇌 속에서 영영 헤어나지 못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다행인 것은 많은 아이들이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정말 훌륭한 어른이 된다는 사실이 아닐는지...... 이 책은 바로 유난히 어려운 시절을 보낸 아이가 훌륭한 어른, 정말 어른이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제도와 규칙 안에서 자신의 자유로운 영혼을 주체하지 못해서 방황하던 한 어린 영혼의 이야기, 그리고 그 어린 영혼이 쓰러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고 마음이 조금씩 자라서 어엿한 어른이 된 이야기.... 마지막으로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 영혼을 괴롭히지도 억압하지도 말고 그가 수렁에서 헤맬 때면 조용히 손 내밀어 붙들어 주고..... 그가 잘 해 낼 수 있으리라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고백하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1학년 1반 34번. 태양이 엉덩이 끝에 걸터앉을 때까지 잠을 자고, 집 안팎을 무대삼아 모험을 나서던 어린 영혼이 그러한 자유로움을 반납하고, 가방을 매고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서 받게 되는 새로운 이름입니다. 그러고 보면 나의 어린시절에도 선생님이 지적할 때면 이름보다는 몇 번하고 부르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주인공의 이름과 1학년 1반 34번.....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 둘은 같은 아이를 부르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아이는 더이상 이름으로 불리기 보다는 아무 개성도 느낄 수 없는 숫자 34번이라고 불립니다. 이야기 속에서도 아이를 계속 34번이라고 부르는 것은, 학교가 어린 영혼들을 어떻게 천편일률적인 모습으로 물들여 가는지를 은연중에 나타내고자 작가가 의식적으로 그리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학교와 학생이라는 틀 안에서 그에 맞는 역할을 강요당하는 아이는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갈망하지만 매번 34번으로 살기를 강요당합니다. 그리고 그 틀안에서 벗어나 34번이 아닌 한 자유로운 영혼이 될려고 할 때마다 치뤄야 할 대가를 배워갑니다. 어른들이 바라는 바를 외면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장했을 때 받게되는 따돌림과 멸시, 잔소리와 체벌, 소중한 것을 잃고 세상의 한켠으로 밀려나게 되는 과정 속에서 34번은 여전히 자신들의 방식대로 행동하기를 바라고 사랑하기를 바라는 어른들을 원망하고 탓하며 자유를 갈구합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아무도 -올챙이를 보며 친해졌던 친구들도, 그림 솜씨를 칭찬하며 격려하던 선생님도, 그리고 34번의 부모님도- 관심있게 바라보며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봐주지 않는 그러한 어두움 속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자라고..... 그리고 34번은 어른이 됩니다. '그러니 누구 때문에 안 되고 무엇 때문에 못 한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단다. 이제는 누구 탓도 안 돼. 모든 것은 34번 너의 책임이란다.'....는 마음 속의 목소리를 듣고 엄마를 그리워하며 뛰어가는 34번은 정말로 어른이 되기 시작한 거겠지요..... 

 내용과 함께 곁들여진 따뜻한 그림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런대로 학교라는 단체생활을 마치고 어른이 된 이들에게도 대부분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법한 34번의 모습 중 일부분은 분명 과거 어느 땐가 자신의 모습을 생생하게 닮아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어른들은 자신이 34번이 대하며 절망하던 어른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싫을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 나 자신도 솔직히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솔직해지면.....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이 나의 방식대로 아이가 살아주기를 바라는 욕심의 표현은 아니었는지, 내 삶속에 그런 이기적인 욕심이 다분히 숨겨져 있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쑥쓰러움이 생깁니다. 34번이 원하던 것처럼 아이를 그냥 사랑해 주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못하고 아무 의심도 없이 내 자신의 방식대로 아이를 사랑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고나 할까요..... 다행인 것은 그래도 아이들의 영혼은 맑고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탓인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어엿하게 자라곤 하는 것 같습니다. 34번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조금 더 적게 말하고 조용히 손 내밀어 잡아 주는, 그리고 조용히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조금 더 기다려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 이것이 자신의 34번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나같은 어른들이 배워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지 않을까 합니다. 작가가 말하는 완전한 어른,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